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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미리 보는 21세기 의학

인공장기-세포조작…수명을 내맘대로?

섹스 없이 2세 낳고 뇌세포 이식도 가능…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계속될 것”

인공장기-세포조작…수명을 내맘대로?

인공장기-세포조작…수명을 내맘대로?
“21세기 인류는 우주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섹스 없이도 아기를 가질 수 있으며, 인공 장기나 노화억제제를 통해 수명을 원하는 만큼 연장할 수 있지만, 스스로의 지적 창조물에 의해 정신세계를 제어당할 것이다.”

최근 출간된 영국 옥스퍼드대 석학 30명의 공동집필서 ‘21세기 예언서’의 핵심내용이다. 조지 오웰의 ‘1984’와 마찬가지로 이 예언서도 다분히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예언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펼 수 있는 키워드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세계 유력 의학 전문지들의 21세기 의학에 대한 전망은 상당히 낙관적이다. 이들은 의료기술 혁신이 진단과 치료의 문제를 극복하고, 예측과 예방 분야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세기에 맞이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상의 세계를 탐험해보자.

유토피아적 환상들

혈압에서부터 실내공기의 질과 박테리아 오염 여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바이오센서에 의해 자동 측정된다. 실제 일본에서는 사람이 변기에 앉기만 하면 체중 혈당 감염여부 등이 측정돼 그 결과가 의사에게 전달되는 장치가 이미 개발됐다.



당뇨병 환자는 피부 밑에 장치된 센서나 ‘팔목시계’로 혈당을 점검하고 체내에 심어놓은 인슐린 저장장치로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만큼의 인슐린을 방출,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어진다. 과민성대장증후군 환자는 장센서로 설사를 미리 예측하고 피부밑에 장치된 약주머니를 눌러 약을 방출, 설사를 막게 된다. 로봇 공학의 발달로 신체 장애자는 모래 위, 자갈길, 오르막길, 계단 등을 첨단 휠체어로 편하게 다닐 수 있다.

각종 장기의 DNA 수리가 어렵다면 쇼핑리스트에서 뽑은 인공장기로 바꿀 수 있다. 인공장기로는 사람의 장기와 가장 유사한 돼지의 장기가 쓰이게 될 것이다. 주사맞기가 귀찮으면 패치를 붙이면 되고, 파킨슨병 등 뇌질환을 앓고 있다면 뇌세포를 이식하면 된다.

지난해 말 유럽종양연구소 피어 지우세페 펠리치 박사가 노화유전자를 발견하면서, 불로장생의 꿈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산소는 호흡에 필수적인 기체지만 체내에 들어가면 세포를 파괴하거나, 유전자 정보를 손상시킬 수 있는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이 부산물에 의한 세포파괴 정도가 심하면 세포는 자동 소멸된다. 이 소멸을 지시하는 유전자를 제거했더니 쥐의 수명이 30%나 연장됐으며, 별다른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구된 노화 방지책들―예컨대 산소에 의한 세포 손상을 가속화시키는 열량 섭취를 줄이거나 세포파괴 단백질의 생성을 방지하는 약품을 피부에 바르는 것 등―을 생각할 때 노화유전자의 발견은 획기적이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1900년 47.3세에서 지난해 말 77세로 연장됐다. 21세기에는 얼마나 늘어날까. 윌리엄 슈워츠 남캘리포니아 의대 교수는 120세, 생명공학기업인 휴먼게놈사이언스의 윌리엄 해즐타인 박사는 150세 정도로 전망한다. 미국 카네기 멜론대의 한스 모라벡 박사는, 인간의 신체는 사라지더라도 그 두뇌를 컴퓨터나 로봇에 복사해 또 다른 분신을 만들어 영원히 살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인류학자들은 인간수명이 100세를 넘어서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한다.

노화시계의 비밀은 게놈(생물이 유전자 속에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 전체) 프로젝트가 쥐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대략 30억쌍에 달하는 인체 염기서열의 암호를 완전 해독하는 것으로, 최근 22번 염색체의 DNA 염기배열지도가 완성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미 텍사스주 사우스메디컬센터의 과학자들이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5년쯤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인간의 세포를 조작해 최고 수명은 200세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20세기 의학의 한계 암

20세기 의학의 한계는 암(癌). 숱한 치료법이 개발됐음에도 암으로 인한 사망은 꾸준히 증가, 지난해에 는 전체 사망률의 22.8%에 달했다. 이번 세기에는 암의 완전정복이 가능할 것인가.

일부 미래학자들의 전망은 매우 희망적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제프리 피셔는 2013년 암의 발생 메커니즘이 규명되고 암의 전이를 막는 효과적인 방법도 개발돼 인류를 암의 고통에서 해방시킬 것이라 예견한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4년 모든 암이 정복될 것’이라 단정하기도 했다. 2020년에는 지금보다 암발병률은 95%, 암사망률은 90%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유전자의 구조를 완전히 규명해내면 유전자 이상에 따른 세포변이로 생기는 각종 암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그러나 암에 대해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지난해 신생혈관억제제 엔지오스타틴과 엔도스타틴을 개발, 마치 암을 정복한 영웅처럼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미 하버드대 의대의 주다 포크만 박사는 그 뒤 매스컴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겨우 동물실험을 끝냈으며, 결과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는 대량생산이 쉽지 않고 실험이 잘 재현되지 않아 임상실험이 보류되고 있고, 과학자들은 새 화합물을 개발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암의 원인은 수백 가지가 넘기 때문에 완전정복을 기대하기보다는 예방과 조기진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암발병 요인 중 70~85%는 환경요인(특히 흡연과 고지방-고단백 식품들)이므로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암발병률이 3분의 1로 줄어들고, 음식조절로 4분의 1이 줄어들 수 있다. 조기진단 방법으로는 불과 몇 개의 세포가 암세포로 변한 단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혈액검사 진단이 꼽힌다. 치료법으로는 암세포 부위로 통하는 혈관만을 선별적으로 차단하는 혈관형성억제제를 투입, 암세포의 증식과 전이를 막는 방법이 개발중이고, 암세포를 무찌를 만큼 인체 면역체계를 훈련시킬 암백신도 개발중이다.

유토피아의 환상을 무너뜨리는 것은 엉뚱하게도 감기로 대표되는 감염질환이 될 수 있다. 미국립보건원 감염질환 및 알레르기연구소 안토니 파우치 소장은 “감염질환은 그 형태가 바뀔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인류가 잠시 이 사실을 망각했을 뿐”이라고 했다. 감염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1%에 불과함에도 선진국들이 부산하게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은 단순히 현재 상태가 아니라 그 추세와 가능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48시간 안에 생명을 앗아가는 치사율이 높은 독종 바이러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첫째는 내성균 문제. 이미 전세계적으로 항생제 치료에 실패하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보여 치료가 불가능한 다제 내성균들이 발견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98년도 연례보고서는 항생제 내성은 지금처럼 항생제를 세균감염증 치료에 쓰는 한 결코 근절될 수 없는 자연현상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기본적인 대책은 항생제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것. 이는 의료계뿐 아니라 소비자 약사 의사 제약업계, 정부가 합심해야 가능한 일이다.

둘째는 바이러스의 세계화 문제다. 문명 교류가 활발해지고 인간의 생활권이 확대됨으로써 세계가 더욱 가까워진 만큼 다른 나라의 바이러스와 만날 기회가 많아지고 있는 것. AP통신은 식품이 국경을 넘어 공급되면서 전염병이 확산될 것이며, 30년 안에 세계를 휩쓸 치명적 독감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간을 공격하는 바이러스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 중에는 아직 인간들과 만나지 못한 것들도 적지 않다. 바이러스들은 인간과의 전쟁에서 인간집단이 적절한 숫자로 유지되도록 ‘절충식 관계’를 가지면서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이는 곧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끝이 없다는 뜻도 된다.

풀리지 않는 뇌질환

20세기가 암이나 에이즈에 대항해 싸우는 시대였다면 이번 세기는 인류가 치매와 같은 뇌질환과 싸우는 시대가 될 전망. 이는 신약개발의 세계적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의 올해 연구개발비 책정 명세를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미국 제약업계는 올해 총 연구개발비로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240억달러를 쏟아부을 예정이다. 이중 가장 많이 투자되는 분야가 알츠하이머형 치매, 정신분열증, 우울증, 간질, 파킨슨병 등 뇌신경계 질환이다(26%).

지난 세기 많은 신체기관의 비밀이 베일을 벗었지만 뇌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알려지지 않았다. 제프리 피셔에 따르면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2012년에 발병 메커니즘이 완전히 밝혀지고, 2015년에 치매발병유전자의 작동원리가 알려지며, 2020년에는 먹는 약으로 간단히 치료할 수 있고, 2021년에는 치료율이 95%에 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의 예견대로라면 앞으로 20년 뒤에는 평생 쌓아온 학식과 덕망을 순식간에 잃는 치매를 퇴치할 수 있을 것이다. 뇌졸중, 파킨슨병, 헌팅턴무도병 등의 뇌질환도 상당부분 치유될 것으로 점쳐진다.

일부 학자들은 효과적인 면역억제제 개발로 장기이식이 일반화된다면 뇌세포 이식도 일반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음이 심장에 있지 않고 뇌에 있다는 사실을 안지 얼마 안되는 인류가 뇌의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을지, 다른 사람의 뇌세포를 이식했을 때의 정체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가 과제로 남을 것이다.

새 천년은 실버시대다. 100세 이상의 노인들이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고 평균수명이 200세로 늘어날 경우, 80세에서 100세 정도면 중년에 해당하는 나이다. 유전자조작으로 거의 모든 병이 원천봉쇄될 것이며, 장수식품과 의약품은 비타민이나 아스피린처럼 흔해지고, 각종 장수 호르몬들 이 젊음 유지를 도울 것이다. 덕분에 섹스는 더 이상 젊은이들의 특권이 아니다. 세계의 성의학 전문가들은 이때쯤이면 70세 이상 노인도 한달에 1~5회의 섹스가 가능할 것이라 자신한다. 미국 성의학회 피터 스톡턴 박사는 인류가 나이 구분 없이 자식을 낳게 될 것이라 전망한다.

출산과 임신의 고통은 시험관 아기나 복제기술이 본격화되면서 인류생활에서 사라지고, 쾌락으로서의 성이 가상현실을 통해 시간과 공간마저 초월한 즐거운 오락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통신망을 통해 오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옷을 입고, 가상의 인간을 원하는 섹스파트너에게 보내 접속이 되면 대화방에서 대화하듯 섹스방에서 성을 즐기게 될 것이다.

행복한 마음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까. 육체와 정신은 실과 바늘처럼 늘 함께한다. 행복한 사람의 뇌세포를 자기 뇌에 이식한다거나, 행복한 정서를 가진 컴퓨터칩을 내장하거나, 혹은 세로토닌 농도를 적정수준으로 유지시키는 기계 따위를 뇌에 심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든 적어도 지금은 마음을 성형수술할 수 있는 해피메이커가 있다. 이미 한국에서도 시판되는 해피메이커들에는 일라이 릴리의 프로작(prozac), 파이저의 조로프트(zoloft), 한국의 제약회사에서 시판하는 생약 성분 스마엘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해피메이커로 뇌를 자극해 얻은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까. 과학 및 의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생활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지만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고 왜곡할 수도 있다.“다가오는 모든 재앙의 근원은 바로 인간이다. 우리는 우리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있다.”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겪은 인류에게 1959년 카를 융(Carl G. Jung)이 한 말이다. 새 세기를 맞는 인류가 지난 세기보다 얼마나 더 현명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간동아 2000.01.20 218호 (p7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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