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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 사임 막전막후

“옐친 중국방문 때부터 이상했다”

평소와 달리 현지음식 먹으며 돌출행동 … 사임하자마자 푸틴에게 “핵가방 자네가 맡게”

“옐친 중국방문 때부터 이상했다”

“옐친 중국방문 때부터 이상했다”
20세기 마지막 날 전격적인 사임으로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보리스 옐친 전러시아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임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고 앞으로 그가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또 부패와 국정 농단 시비에 휩싸여온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등 옐친과 그 주변을 둘러싼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있다. 또 재임 기간 중에는 언론에 공개되지 못했던 비화며 말 그대로 ‘크렘린’ 같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러시아 최고지도자의 이모저모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관심거리는 남달리 권력욕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옐친이 사임한 진짜 이유. 옐친은 “새 세기를 맞아 러시아의 미래를 새로운 지도자에게 맡기기 위해서”라고 주장해 왔다.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가족을 비롯해 후계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권한대행 등에게까지 발표 몇 시간 전에야 ‘통보’했을 정도로 고독하게 내린 결단이라는 것이다.

푸틴은 99년 12월31일 아침 예년처럼 새해를 고향인 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내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하려다가 호출을 받고 크렘린에 들어와서야 사실을 알았다. 주요 각료들도 발표 한 시간 전에야 통보받았다고 한다.

부인 나이나 여사와 이미지담당 보좌관이던 둘째딸 타티아나 디야첸코도 당일에야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이나는 “물러나겠다”는 남편의 말을 처음에는 잘 알아듣지도 못했다고 한다. 옐친의 맏손자인 보리스가 방송을 보고 할아버지에게 항의했을 정도였다는 것이 가족의 설명.



타티아나는 옐친이 지난해 12월 중국방문 동안 사임결심을 굳힌 것 같다고 회고했다. 베이징에서의 옐친은 평소와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는 것.

타티아나에 따르면, 옐친은 해외를 방문해도 절대로 현지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 당시 일정이 끝난 뒤 숙소에서 나이나와 타티아나가 밤참으로 베이징식 오리고기요리를 먹으려고 하자 “나도 같이 먹자”며 끼여들었다는 것. 그같은 몇몇 일들로 타티아나는 “아버지가 이상해졌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옐친의 ‘고독한 결단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설득력이 약해지고 있다. 푸틴은 ORT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사실은 발표 10일 전 쯤 옐친이 귀띔을 했다고 실토했다. 게다가 옐친이 자의로 사임을 결심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압력에 의해 물러난 것이라는 ‘외압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은 러시아 민영 NTV와 이탈리아 일간 라 스탐파와의 회견에서 옐친은 딸 타티아나 등 측근들의 강요에 의해서 사임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옐친 일가의 장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푸틴의 당선을 돕기 위해서 조기사임이라는 ‘깜짝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옐친측은 푸틴과 조기 사임의 대가로 사후보장을 약속 받는 비밀거래를 한 것이 된다. 푸틴은 자신의 인기가 절정에 오른 때 권한대행이 돼 3월 대선을 치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대통령 권한이양이 너무나 신속하게 진행됐던 것도 ‘준비된 사임’이라는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옐친은 사임을 발표하자마자 러시아군의 핵 통제권이 담긴 핵 가방을 푸틴에게 넘겨주었다. 옐친은 8년여 재임 기간에 두 차례의 심장수술을 받을 때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당시 총리에게 잠시 맡겼던 것을 제외하고는 권력의 상징인 핵 통제권을 누구에게도 넘겨준 적이 없었다.

옐친은 이날 푸틴을 크렘린궁 안의 원로원 1동에 있는 대통령집무실로 직접 안내해 “여기가 이제부터 자네 방이네”라고 말하고는 모스크바 근교의 별장인 ‘고리키9’로 떠났다.

푸틴은 권한대행이 되자마자 ‘전임 대통령 가족의 안전보장에 대한 포고령’에 서명해 옐친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등 보답했다. 크렘린측은 옐친을 전대통령이라고 부르지 말고 초대 대통령으로 호칭하도록 언론에 주문하는 등 최대한의 예우를 하고 있다.

퇴임 후 옐친은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고 해외여행을 하면서 여유있는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하지만 앞으로 옐친을 두고두고 괴롭힐 원죄가 있다. 소련 해체와 10월 사태가 그것이다.

91년 12월 당시 소련 15개 공화국 중 하나였던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던 옐친은 벨로루시 우크라이나와 함께 일방적으로 소련 해체를 선언했다. 옐친은 “소련 해체가 역사적 사명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대통령을 크렘린궁에서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꾸민 음모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또 93년 10월에는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던 최고회의(의회)가 반(反)개혁적이라는 이유로 탱크를 동원해 강제 해산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아직까지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다.

국민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린 옐친은 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희생자 유족들은 사건 이후 지금까지 당시 의회청사 근처에서 농성하며 진상조사와 ‘옐친 처단’을 요구하고 있다. 공산당은 옐친의 면책특권 박탈을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타티아나 등 가족이 부패의혹에 시달리고 있어 옐친 일가의 노후가 바람처럼 평안할지는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러시아의 김현철’ 옐친 둘째딸

거액 리베이트 등 국정농단 … 맏딸은 호화판 쇼핑 구설수


옐친의 부인 나이나는 지난해 10월 언론과의 인터뷰를 자청해 “우리 가족은 해외에 비밀계좌도, 저택도, 호화요트도 없다”며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계속되는 부패 스캔들로 여론이 험악해지자 가족 중 가장 이미지가 좋은 나이나가 직접 나선 것이다.

옐친은 딸만 둘인데, 특히 둘째딸 타티아나가 가장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95년 대선에서 옐친의 선거운동에 뛰어들면서 정치에 입문한 타티아나는 아버지의 이미지담당 보좌관을 지내면서 국정을 농단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크렘린궁의 내부수리를 맡기는 대가로 스위스 건설회사인 마베텍스로부터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스위스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라있는 상태.

타티아나의 남편 레오니드는 사업가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니지만 사실은 별다르게 하는 일이 없는 건달. 그러나 지난해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뉴욕은행을 통한 거액의 러시아 자금 세탁사건에 관련돼 미국 법원의 소환을 받았다. 물론 레오니드는 이 소환장을 무시하고 있다.

타티아나의 언니 옐레나 오쿨로바는 마베텍스에서 만들어준 크레디트 카드로 외유 때마다 호화판 쇼핑을 즐겼다는 구설수에 올랐다. 남편 발레리는 장인 덕분에 러시아 최대 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사장이 되었지만 이 회사 해외지사를 통한 외화유출 혐의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 옐친 부부가 부패혐의와 관련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자식들 때문에 퇴임 후가 불안한 상태다.




주간동아 2000.01.20 218호 (p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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