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8

2000.01.20

기업 이름에도 ‘첨단’ 바람

인터넷 관련 단어·~콤·~테크 등 붙여 ‘기업 가치’ 올리기… “이제 社運은 社名에 달렸다”

  • 입력2006-06-15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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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이름에도 ‘첨단’ 바람
    지난해 12월15일 한솔PCS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사명을 ‘한솔M.Com’으로 바꾸었다. 우리말로 읽으면 ‘한솔엠다트컴’. 회사명에 인터넷 도메인 주소를 상징하는 ‘.Com’을 넣은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다. 그보다 한 달 전인 11월에는 TV 브라운관 등을 생산하는 삼성전관이 기업명을 ‘삼성SDI’로 교체했다. SDI는 ‘Samsung Display Interface’의 이니셜. 삼성관련 기업 중에는 삼성전기 제일모직 등이 사명 변경을 계획하고 있고, 제일기획 역시 새로운 이름을 모색하고 있다.

    ‘회사 이름을 바꾸면 기업가치도 오른다?’ 최근 들어 회사 이름을 변경하는 기업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런 추세는 대기업보다는 특히 중소기업 사이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한 해 사이 코스닥 상장 기업 중 회사명을 바꾼 곳은 모두 26개. 피혁원단 수출 전문업체 금홍양행이 ‘나자인’으로, 섬유제조업체 대양산업이 ‘하이론코리아’로, 하드보드 전문생산업체 청담물산이 ‘포레스코’로 이름을 바꿨다. 언뜻 이름만 봐서는 섬유업이나 건축자재 생산업체로 여겨지지 않는다.

    회사명의 이니셜만을 따서 개명한 사례도 적잖다. 태봉전자가 ‘TKB전자’로, 일경통산이 ‘IK엔터프라이즈’로, 인터넷 업체 ㈜인터넷 경매가 ㈜auction으로 바뀌었다.

    한 회사가 기업명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 디자인포커스, 인피니트, 인터브랜드 코리아, 메타 브랜딩 같은 유수의 네이밍 회사에서 회사이름을 짓거나 CI(기업이미지 통합작업)을 의뢰할 경우 건당 3000만원 이상이 소요된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사용하던 서식과 제품의 로고타입을 교체하고 소비자들에게 새 이름을 홍보하는데 드는 비용은 그 이상이다. 한솔M.Com의 경우 사명을 바꾼 데 따르는 예상 경비를 300억~4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렇게 회사가 적지 않은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 기존에 쌓아둔 ‘지명도’까지 포기하면서 새 이름을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종 변경이나 기업 통폐합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최근의 이름바꾸기 붐은 기업의 얼굴인 회사 이름에 ‘첨단 이미지’를 담아냄으로써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한 것이다.



    삼성전관의 경우 ‘기존의 TV 브라운관 전문 생산업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2차전지, 뉴 디스플레이 개발 등 첨단산업에도 주력하는 기업으로 인식되기 위해’ 업체명을 바꿨다. “광고회사 ‘제일기획’ 역시 ‘기획’이라는 명칭이 소규모 영세업체를 연상시키는 데다 현재 사용중인 영문표기명과 한글명도 불일치하기 때문에 회사이름을 바꿀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삼성그룹 홍보실 안홍진부장은 말한다.

    이름 변경이란 변수만으로 과연 얼마나 매출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현재 국내에는 회사명 변경 전후의 매출-수익 변동을 비교분석할 수 있는 체계적 도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형편이다. 하지만 네이밍 전문회사 인피니트의 브랜드 자산관리 연구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대략 20~30%의 매출증대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주식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기업의 ‘이름값’은 전에 없이 높아졌다. ‘낙후된’ 느낌을 주는 한자 이름보다는 첨단 이미지의 영문이름이나 이니셜이 주가를 올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과거 70년대에 건설업이 호황을 맞아 건설주가 급등했을 때, 실제는 건설회사가 아니면서도 회사 이름에 ‘건설’자가 들어간 회사의 주가가 무조건 폭등했던 것과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최근 중소기업들이 대거 이름을 바꾼 시기도 코스닥 시장 활황기와 대개 일치한다. 지난해 기업명을 바꾼 26개 회사 중 열두 곳이 코스닥 2차 상승기인 9월 이후 이름을 바꾼 것. 금년 봄 증권거래소시장과 코스닥 이외에 제3시장이 개장되면 이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세련된 이름을 선호하는 기업들 사이에도 특히 인기가 높은 알파벳과 영어 단어는 인터넷이나 정보통신을 상징하는 i, e, a, n, 혹은 ~콤, ~라인 등이다. 첨단 테크놀로지 회사라는 느낌을 주는 ‘~테크’자를 차용한 기업도 많다. ‘드림라인’으로 이름을 바꾼 제일고속통신, ㈜영흥텔레콤으로 개칭한 ㈜영흥기연, ‘지인텍’(G.Intek)으로 개명한 은성디벨롭먼트 등이 그것. 한솔M.Com도 “한솔PCS란 이름으로는 PCS 한 가지 업종에만 국한된 사업체란 인상을 주기 쉬워 무선통신 사업의 이동성을 강조한 M(Mobile)자와 인터넷을 상징한 ‘.Com’을 결합, 새 기업명을 지었다”고 설명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 아닐까 우려하기도 했지만 기업명을 바꾸는 작업은 자주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이왕 바꾸는 김에 과감히 앞서가는 이름을 채택했다”는 게 홍보실 남승현과장의 이야기.

    기업 이름은 아니지만 브랜드 네임에서도 ‘알파벳’ 쟁탈전은 치열하다. 지난 8월 일간지에 같은 날 동시에 ‘n016’ 과 ‘N-Top’ 광고를 실은 한국통신 프리텔과 SK텔레콤의 경쟁이 그 예. 당시 ‘네트 제너레이션’을 뜻하는 ‘N’자의 사용 권한이 어느 회사에 있는지를 놓고 양사가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특정 이름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심리가 그만큼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게 ‘n016’ 광고를 제작한 제일기획 강병구 AE의 얘기다.

    그러나 듣기에 근사한 이름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작명가이자 인터넷 정보 콘텐츠 사업을 운영하는 ‘고우인터넷’ 가우자리 사장은 기업 네이밍시 주의해야 할 사항을 이렇게 설명한다.

    “회사이름과 상표이름은 별개로 등록되기 때문에 좋은 회사이름을 지어 등록을 마치고도 상품에는 동일한 이름을 쓸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또 요즘 회사들은 대개 국제화 시대에 맞춰 영어이름을 짓는데, 두 가지 이상으로 발음이 가능한 모음(이를테면 ‘아이’로도 읽을 수 있고 ‘이’로도 읽을 수 있는 ‘i’자)는 제외하는 게 좋습니다. 또 남미에서는 H자가 묵음이 되기 때문에 ‘호돌이’를 ‘오돌이’로 읽을 수도 있으므로 H자도 피해야 합니다.”

    또한 그는 “인터넷 관련업체(특히 콘텐츠 사업)의 경우 회사명을 도메인 이름과 일치시키는 게 마케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회사명을 짓기 전 같은 도메인 네임이 이미 존재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귀띔한다. 도메인 네이밍은 ‘사이버 스페이스의 부동산 사업’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는 게 인터넷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인터넷에서 도메인 이름이란 기업의 문패이자 선전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기업들은 가급적 회사명을 그대로 도메인 이름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작명하는 추세다.

    “하지만 .com의 경우 이미 웬만한 명사나 형용사는 외국의 기업이나 도메인 스쿼터(장사꾼)에게 선점된 상태입니다. 기업이름을 도메인 이름과 동일하게 짓기가 매우 어렵다는 얘기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기업명에서도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이름보다 도메인 시장에서 아직 선점되지 않은, 기발하고 상식을 뒤엎는 이름이 속출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인피니트 박재현 네이밍팀장의 말처럼 앞으로 갈수록 ‘튀는’ 기업명이 시장을 점거하게 될까. 어쨌든 21세기는 기업의 내실 못잖게 ‘이름’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갈 것만은 분명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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