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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정치

“가자! 필드로” 골프정치 티샷

JP 이회창 권노갑 이인제 등 잇단 ‘골프 행보’...“무슨 얘기 오갔을까” 관심

  • 윤승모/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smo@donga.com

“가자! 필드로” 골프정치 티샷

골프장에서는 직전 홀에서 타수가 가장 적은 사람, 즉 1위자를 흔히 ‘오너’라고 부른다. 오너를 그 홀 게임의 주관자(owner)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honor to shot first’ 즉,‘먼저 치는 영광’이란 뜻이다. 전(前)홀에서 1위를 한 사람에게 동료들이 “당신이 ‘먼저 치는’ 것을 보는 ‘영광’을 베풀어 달라”고 할 때 쓰는, 최상의 찬사이다.

김종필국무총리는 지금도 매주 토-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골프장에 나가는 골프 애호가다. 구력 40년의 싱글 핸디캡 골퍼로, 올해 최고 기록은 76타.

DJ “골프는 더이상 특권층 전용 아니다”

김총리는 매 주말마다 대여섯팀씩 사람들을 이끌고 골프장에 간다. 10월17일 상록골프장에선 대전충남북의 기관장 및 자민련의원들을 13팀(한팀은 보통 4명으로 구성된다)이나 이끌고 골프를 즐겼다. 관직이나 경력 면에서 김총리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없었을 테니,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김총리가 이런 식으로 주말에 골프장을 전세내다시피 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일부 골프장에서는 회원들로부터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하는 원성을 사기도 하지만 별반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골프에 관한 한 김총리는 그만큼 당당하다.

그러나 정치에 관한 한 김총리는 골프와는 정 반대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남에 대한 겸양과 찬사에 익숙하다. 고 박정희대통령에서부터 노태우-김영삼전대통령 김대중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김총리는 ‘오너’(영광)를 외쳐 왔다.



국민회의 권노갑고문도 김총리만큼이나 골프에 탐닉해 있는 사람이다. 수십년간 ‘모셔 온’ 김대통령이 당선되는 순간을 영어의 몸으로 지켜봐야 했던 권고문은 그후 신체의 자유는 얻었다지만 여전히 정치 전면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지없이 답답한 심사를 권고문은 골프로 달래는 듯하다. 지난 10월21일엔 정몽준의원 조승형 전헌법재판관 등과 함께 바이코리아컵대회에 출전 중인 ‘슈퍼 땅콩’ 김미현선수와 시범라운딩을 하는 ‘행운’도 누렸다.

10월9일에는 국민회의 이인제당무위원 이석형변호사 등과 함께 오크밸리에서 1박2일간 골프를 했다. 역시 정치 2선에 물러나 있는 처지의 이인제위원에게 권고문은 자신과 김대통령의 ‘무한한 애정’을 전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증언이다. 향후 정국구도와 관련해 깊은 얘기를 나눴을지도 모른다. 권고문의 골프는 그렇게 단순히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다독이고 친교를 맺는 정치행위이기도 하다.

권고문은 김대통령 몰래 골프를 배우다 중단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3년전 본격적으로 골프를 재개한 케이스다. 그런데도 요즘 골프 실력이 부쩍 늘어 지난 9월에는 두번이나 싱글을 기록할 만큼 수준급 골퍼가 됐다. 그러나 심리상태에 따라 기복이 심하다고 한다. 재미삼아 소액을 걸고 하는 ‘내기 골프’에 특히 약하다고 한다. 국민회의에선 권노갑 김영배고문, 안동선지도위의장 등의 내기 골프 회동이 회자되기도 한다. 권고문이 계속 잃기만 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나중에 전혀 배려해 주지 않아 한때 감정을 상할 정도였다나…. 권고문의 한 측근에 따르면 싱글패를 받은 지금도 그 ‘악동 멤버’들과 골프를 하면 스코어가 100을 넘어가기도 한다는 것.

잠시, 김대통령의 골프 얘기로 말길을 돌려보자. 김미현선수의 LPGA(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투어 승전보가 날아든 10월11일 김대통령은 “골프는 이제 더이상 특권층의 스포츠가 아니며, 중산층이나 서민 가릴 것 없이 국민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골프 대중화를 선언했다. 김대통령은 97년 대통령선거 때도 골프의 대중화를 얘기한 일이 있다. 이에 대해 ‘골퍼’들의 표를 의식한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대중화됐다고 하지만 서민들에게 골프는 아직도 거리가 먼, 부유층 중심의 운동이다. 그리고 그 ‘부유층’ 골퍼들의 상당수는 김대통령에 대해 정치적으로 비우호적이어서, 좀처럼 마음을 주지 않는다.

요즘 골퍼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는 ‘마지막 라운드’라는 책의 저자 제임스 도드슨은 암 선고를 받아 죽음을 눈앞에 둔 아버지와 마지막 골프여행을 하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13세 때 처음으로 골프를 배워 무작정 달려드는 나에게 아버지는 ‘골프 게임의 묘한 점은 필사적으로 달려들수록 원하는 것은 오히려 멀리 달아난다는 점이지’라고 말했다.”

제임스 도드슨의 이 회고는 모든 골퍼들이 알고는 있는(비록 실천은 못할지언정) ‘기본 계율’이다. 만일 김대통령이 골프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골퍼들에 대해 그처럼 적극적으로 달려들기보다는 다른 방식을 취했을지 모른다.

골프와 인연이 멀기는 김영삼전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영화 ‘틴 컵’의 주인공 케빈 코스트너는 오기를 부리며 7, 8차례나 연거퍼 홀인원에 도전한 끝에 결국은 성공했지만, YS는 한번 ‘실패’한 뒤 아예 골프를 끊었다. YS가 90년 당시 민정 민주 공화당 3당합당의 주역인 노태우대통령 김종필공화당총재와 함께 골프하다가 무리한 스윙 탓에 스스로 엉덩방아를 찧은 사건은 정치권에서 유명한 일화다. 사건 이후 YS는 골프를 중단해 버렸지만, 정치에서의 ‘욕심’은 성공해 92년 대권 승리로 이어졌다.

명예총재인 김총리가 골프에 빠져 있는 탓인지, 자민련에는 어느 당보다 골프화제가 무성하다. 김총리 스스로 수많은 골프 일화를 갖고 있다. 5·16 직후 최고회의가 지금의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있던 국내 유일의 민간 골프장을 사치시설로 규정해 콩밭으로 갈아엎기로 결정한 것을 김총리가 박정희최고회의 의장에게 건의해 번복시킨 일이 있었다. 그리고는 상공인들에게 안심하고 골프를 치라고 했으나, 아무도 선뜻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김총리가 직접 시범을 보이기로 하고 무작정 골프장에 다닌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그렇게 현장에서 막 배운 골프이기 때문에 김총리는 지금도 자세가 엉망이다.‘장작 패는 수준’이다. 기본이 안된 탓에 드라이버 샷의 비거리가 짧다. 하지만 스푼으로 치는 세컨드 샷이 정확해 점수관리가 남못지 않다는 얘기다. 골프에서도 ‘세컨드’가 전문이라니….

이긍규의원과 조영장총재비서실장은 자민련 뿐 아니라 국회 전체에서도 내로라 하는 골프 전문가로, 핸디캡 제로 수준이다.

나쁜 매너로 말하면, 우리 정치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이다. 그는 골프를 ‘수금기회’로 활용했는데, 캐디와 짜고 홀인원을 연출하는가 하면 상대방이 친 공을 감추는 등의 방법으로 돈을 따먹었다고 한다. 어쩌다 자신이 불리하게 되면 비서들로 하여금 골프 도중 전화를 걸게 해 “대통령이 찾는다”며 자리를 떴다는 것.

한나라당에선 이기택전의원이 가장 골프를 자주 치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태광골프장에 자주 다니는 이전의원의 골프도 대부분 스트레스 해소용이다. 과거 여당 시절 계보의원들과의 잦은 골프회동 등으로 ‘골프 정치’시대를 만개시켰던 김윤환의원의 경우 야당 비주류로 위상이 변한 이후에는 골프도 정치도 전만 같지 못한 느낌이다. 그는 10월23일 이한동의원과 오랜만에 골프회동을 했다.

이회창총재는 골프 정치를 본격화한 듯한 느낌이다. 이총재는 10월10일 서청원 강재섭의원 등과, 10월23일엔 신상우 김영구 이세기 박희태 김동욱 김정수의원 등과 골프를 쳤다. 당내 비주류 껴안기라 할 수 있다. 보기플레이어인 이총재의 골프는 마치 권투의 스트레이트 펀치를 보는 듯한 자세라고 한다.



주간동아 207호 (p22~23)

윤승모/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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