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1

2016.06.08

경제

경영 시험대 오른 신세계 정유경

오빠 정용진 부회장과 지분 맞교환…유통업계는 분리 경영 효과에 의구심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6-03 17:22:34

  • 글자크기 설정 닫기
    4월 말 신세계그룹 오너 일가인 정용진(49)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여동생 정유경(45) 신세계 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이 각자 보유한 주요 계열사 주식을 맞바꿔 업계 관심을 모았다. 정 부회장의 신세계 지분(약 72만 주·7.3%)과 정 총괄사장의 이마트 지분(약 70만 주·2.51%)을 맞교환한 것.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은 이마트 지분(9.83%)만,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 지분(9.83%)만 보유하게 됐다. 신세계그룹은 이미 지난해 말 조직 개편을 통해 ‘이마트 부문’과 ‘신세계 부문’으로 그룹을 나눈 바 있다.

    두 남매가 지분 교환까지 마치고 본격적인 독립 경영체제에 돌입하자 일각에서는 경영권 승계구도가 확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규모가 큰 이마트는 정 부회장, 백화점은 정 총괄사장 몫으로 돌아갔다는 것. 실제로 매출 규모로만 따지면 이마트 부문은 연간 11조 원이고, 백화점 부문은 2조5000억 원에 불과하다. 대내외적인 존재감도 오빠인 정 부회장이 월등히 높다.

    현재로서는 이마트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훗날 경영 성적표는 누가 어떻게 받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펼쳐질 정용진-정유경 남매의 경쟁에 업계 이목이 집중된다. 더욱이 남매의 어머니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여전히 그룹 최대주주인 만큼 훗날 이 회장이 아들과 딸 가운데 누구 손을 들어줄지 모를 일이다.

    이에 대해 신세계그룹 측은 “경영 승계는 아직 논할 단계가 아니다”고 했다. 신세계그룹 홍보 관계자는 “이명희 회장이 두 자녀에게 책임 경영을 주문했을 뿐이다. 이제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 모두 나이가 40대 중·후반인 만큼 더 늦기 전 자녀들에게 경영 기회를 주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 경영 후에도 남매 사이 여전히 돈독

    특히 지난해 부사장 꼬리표를 떼고 승진한 정 총괄사장은 이번 일로 그룹의 양대 경영자로서 의미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정 남매의 독립 경영 선포 이후 정 부회장보다 정 총괄사장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더 큰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정 총괄사장은 본격적인 ‘경영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신세계그룹 내부에서도 “이명희 회장이 정유경 총괄사장의 실력을 테스트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1996년 4월 조선호텔 이사로 경영에 입문한 정 총괄사장은 2003년 조선호텔 프로젝트 실장(상무)을 거쳐 2009년 신세계그룹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의 2세 체제 구축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동안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생활도 일절 공개하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정 총괄사장은 올해부터 사장단 회의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 회장 주제 하에 정 부회장이 각 계열사 사장을 소집해 회의를 진행했지만, 조직 개편 후에는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 사장단 회의가 따로 열리고 백화점 부문 회의에는 정 부회장이 더는 참석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남매 사이에서 심상치 않은 경쟁 기류가 느껴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평소 두 사람은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우애 좋은 남매’로 소문이 났으나 이제 경영 승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신세계그룹 한 관계자는 “남매 사이가 안 좋아질 이유가 없다. 각자 맡고 있는 사업을 얼마나 성장시키느냐가 관건이지, 누구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 부문 책임자인 동시에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백화점이 잘돼야 그룹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남매간 경쟁은 괜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유통업계 내에서는 신세계그룹의 분리 경영을 두고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이마트와 백화점은 같은 유통업으로 ‘협업’이 가장 중요한데 두 업체를 분리한 데 대한 의문인 것. 한 유통업 관계자는 ‘바잉 파워(Buying Power)’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바잉 파워란 말 그대로 납품업체로부터 물건을 사올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데, 구매 개수에 따라 마진율도 달라지기 때문에 회사가 둘로 쪼개질 경우 납품업체와 계약 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이 관계자는 “마트에서 파는 물건을 백화점에서도 판다. 다만 백화점은 마트에 비해 훨씬 고급스러움을 강조할 뿐인데, 소비자가 느끼는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결국 의류나 명품 브랜드를 빼고는 마트와 다를 바 없어 두 계열사가 경쟁 구도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신세계그룹 측은 “이마트와 백화점은 업태가 전혀 달라 문제될 게 없다. 이마트는 전형적인 유통업에 속하지만 백화점은 입점 브랜드로부터 점포 수수료를 받아 운영하는 만큼 부동산업에 더 가깝다”고 해명했다.



    백화점업계 2년 연속 역성장, 오히려 투자 확대 

    현재로서는 주식 맞교환이 양측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 남매의 지분 교환이 이뤄진 4월 29일부터 5월 10일까지 이마트 주식은 우상향, 신세계(신세계백화점) 주식은 우하향 곡선을 그리긴 했지만, 이는 단발적인 이슈 발표 때문이지 장기적인 가치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이에 대해 임동근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남매의 지분구조가 명확해졌다고 비즈니스 모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올해 신세계그룹은 사상 최대 규모인 4조1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만큼, 이마트든 신세계백화점이든 누가 얼마나 공격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경영을 이어가느냐에 따라 향후 주가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 총괄사장이 통과해야 할 첫 번째 시험 관문은 단연 백화점 경영이다. 백화점업계가 2년 연속 역성장 늪에 빠진 가운데 정 총괄사장은 투자를 늘리는 역발상 전략을 선택했다. 이는 이 회장이 외환위기로 나라 전체가 어렵던 1990년대 후반 공격적인 투자로 미래 고객 선점에 나선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말까지 6개 신규 프로젝트(서울 강남점 증축, 부산 센텀시티몰 오픈, 김해점·하남점·대구점 개점)를 진행할 예정이다.

    5월 18일 처음 시작한 면세점사업 또한 정 총괄사장의 경영 능력을 평가받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모이는 서울 명동에 자리 잡았지만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등 이른바 3대 명품을 하나도 입점시키지 못해 모객에 어려움을 겪으리란 전망도 나온다. 더욱이 하반기 서울 시내에 추가로 4개 면세점이 생긴다는 점을 들어 출혈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동안 경영과 관련해 대외 활동에 소극적이던 정 총괄사장의 행보가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어지리란 예측이 나온다. 이를 두고 신세계그룹 내부에서는 “정 총괄사장의 롤모델은 바로 어머니 이명희 회장이다. 이 회장이 경영과 관련해 철저히 자신을 숨겨온 것처럼 정 총괄사장도 막중한 임무를 맡긴 했지만 그럴수록 뒤에서 더 조용히 ‘그림자 경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