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1

2023.05.26

부동산시장 달군 전세폐기론 전말

[황재성의 부동산 맥락] 전세제도 수명 다했다던 원희룡 장관 “전세 안 없애… 무리한 갭투자 손볼 것”

  • 황재성 동아일보 기자

    jsonhng@donga.com

    입력2023-05-2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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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1]

    [뉴스1]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이 5월 23일(현지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출장길에서 동행한 기자들에게 이같이 발언해 화제가 됐다. 그가 일주일 전인 5월 16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진행한 국토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전세제도가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고 발언한 것과는 상반된 의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원 장관의 5월 16일 발언은 시장에서 ‘전세무용론’ ‘전세폐기론’ 등으로 해석됐고, 이후 ‘전세제도 폐기론’에 대한 찬반양론이 쏟아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세제도가 수명을 다했다는 장관의 발언은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한 전세사기 등과 연계해 현행 전세제도는 위험성이 노출돼 그대로 가기 어렵다는 취지였고, 전세제도를 없애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며 “폴란드 발언은 이를 제대로 잡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즉 전세제도 무용론이나 전세제도 폐기론으로 불거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으로 봐달라는 것이다.

    전세폐기론 시작은 취임 1주년 출입기자 간담회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5월 23일(현지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세제도 개편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5월 23일(현지 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세제도 개편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하지만 원 장관의 해명이 있기까지 일주일간 국내 언론을 도배한 ‘전세제도 논란’은 시장에 적잖은 고민거리를 남겼다. 무엇보다 1970년대 전세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됐을 당시와는 크게 달라진 현 상황에서 전세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원 장관의 잇단 발언과 국내에서 펼쳐진 전세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통해 현행 전세제도의 문제점과 해법들을 짚어본다.

    5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전세 관련 발언은 채널A 출입기자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국토부가 제공한 녹취록에 따르면, 기자는 “시장을 바로잡겠다고 했는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매매가를 왜곡하는 문제를 일으키는 전세제도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며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원 장관은 이 질문에 전세제도를 임대인이 세입자로부터 목돈을 빌리는 일이라고 정의한 뒤 “(현 시장에서는) 들어올 사람이 없어 못 돌려준다거나, 다음 전세보증금이 현재보다 적으니 어쩌란 말이냐며 갚을 생각을 안 한다”면서 “황당한 얘기”라고 진단했다. 또 “전세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었지만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어떤 분은 전세제도를 금융에 묶어두라 하고, 에스크로(Escrow: 결제대금예치제도)나 거래소까지 얘기한다”며 “여러 가지를 다 손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금처럼 갭(gap) 투자를 통해 돌려줄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투자 차익만 노리고 빠져나갈 구멍이 열려 있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며 “큰 틀에서 임대차 3법 개정을 포함해 전세제도가 사기에 악용되거나 주거 약자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가급적 빠르면 좋겠지만 올해 하반기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며 작업 일정도 공개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원희룡, 전세제도 수명 다했다… 제도 전면 손볼 듯’ ‘전세제도 대수술 예고’ 같은 제목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이후 후속 보도 과정에서 이날 발언은 ‘전세무용론’이나 ‘전세폐기론’으로 확대 재생산됐고, 마침내 ‘전세폐지론’이 정부 방침으로 굳어진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는 국토부가 지난해 9월부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다. 국토연구원이 진행하는 연구용역 결과는 내년 1월 이후 나올 예정이다. 국토부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임대차 3법을 비롯해 전세제도 전반을 손질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다.

    당연한 수순으로 전세제도 운명이 시험대에 올랐다며 전문가들의 찬반양론이 쏟아졌다. 찬성 측은 전세제도의 취약한 구조 탓에 집값이 등락할 때마다 세입자와 집주인이 모두 피해자가 되고, 정부가 매번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 반복되는 구조를 깨뜨릴 기회라고 봤다. 대표적인 전문가가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다.

    쏟아진 전세폐기 찬반론

    최 교수는 “미국 기준금리 급등에 따른 집값 급락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미국, 호주, 뉴질랜드, 유럽 여러 나라 등 선진국에서도 발생하는 현상”이라면서 “이들 국가에선 별다른 주택 대책은 물론 사회적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전세제도가 구조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전세를 ‘주거 사다리’라고 평가하지만 그만큼 좋은 부동산금융시스템이라면 한국만 이용하고 다른 나라는 따라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며 “전세제도에 대한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대 측은 “전세사기 피해가 있다고 전세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정부의 인위적인 전세폐기 정책이 불러올 주택시장 혼란을 우려했다. 전세 거주자가 2020년 기준으로 국민의 15.5%(약 325만2000가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세시장이 천문학적 규모라는 점도 우려를 키웠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전세금은 총 1058조 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집계한 지난해 말 가계부채(1853조 원)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전세 수요가 여전히 높다는 점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로 지적됐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비중은 지난해 12월 47.3%로 줄었다가 올해 3월 61.5%로 다시 증가했다. 다세대·연립주택 전세 비중도 올해 들어 1월 50.3%, 2월 52.9%, 3월 56.8%로 꾸준히 높아졌다.

    전세폐기 반대를 밝힌 전문가 중에는 국토부 산하기관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이한준 사장도 포함돼 있다. 그는 원 장관의 발언이 있고 이틀 뒤인 5월 18일 경남 진주 LH 본사에서 열린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전세라는 게 한국에서 주거 사다리의 중요한 지름길이었는데 그 자체가 붕괴된다면 소위 말해 내 집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제도를 인위적으로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정부가 약자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폴란드에서 날아온 전세제도 유지 방침

    5월 23일 폴란드 발언은 당시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참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바르샤바를 방문한 원 장관이 취재를 위해 동행한 기자단과 티타임을 갖는 자리에서 나왔다. 취재기자가 “5월 16일 기자간담회 때 나온 전세 관련 발언은 전세 대책 자체를 고치라는 것이냐”고 묻자 원 장관은 “사회에 뿌리내린 제도, 사회에 절로 생긴 제도라는 건 많은 참여자의 여러 이유에서 비롯됐고, 그 행동의 뿌리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면서 “전세를 더 선호하는 참여자들이라든지, 전세가 해왔던 역할 등에 대해 한꺼번에 무시하고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전세제도를 없애려는 시도는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원 장관은 이어 “그 대신 무제한 전세대출을 끼고 갭투자를 해서 어떤 경우에도 경매를 안 하고는 돌려줄 방법이 없는데도 천연덕스럽게 재테크 수단처럼 (전세를) 얘기하는 것은 손을 봐야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를 위해 일정한 횟수 이상 갭투자를 금지 또는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갭투자가 무한히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출받아 집을 사는 경우,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경우에 여러 채를 살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또 “선순위 보증금, 근저당 등 기존 채무가 있는 경우 보증금을 제한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담보가치가 남아 있는 부분의 일정 비율만큼만 전세보증금으로 받도록 한도를 두고, 나머지는 월세를 받게 하자는 것이다. 임차인(세입자)의 보증금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판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원 장관은 답변 과정에서 특히 에스크로 도입은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에스크로는 전자상거래에서 물품 대금을 거래 완료 때까지 제3자에게 예치해두는 것이다. 이는 전세제도의 장점을 없애는 것이라서 정부의 전세폐기 방침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여겨졌다.

    전세제도는 세입자가 맡긴 전세보증금을 집주인(임대인)이 재테크 등 종잣돈(시드머니)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기반을 둔다. 그런데 에스크로가 도입되면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신탁사나 보증기관에 맡겨야 하고, 집주인은 이자에 해당하는 수익 정도만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임대인의 집단 반발 등을 불러왔다.

    원 장관도 이를 의식한 듯 “에스크로에 대해 극단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황당하다고 생각한다는 뉘앙스로 얘기한 것”이라며 “넘겨받은 보증금을 전액 금융기관에 맡긴 채 쓰지 말라고 하면 전세를 하지 말라는 얘기”라면서 “현재까지 검토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임대차제도 개선 방안에) 사회 구성원의 인식도 반영할 것”이라며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국토연구원을 통해 진행 중인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선 방안 연구용역에서 민간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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