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 [포스코홀딩스 제공]
5월 24일 서울 마포구 한 사무실에서 만난 여상환 전 포스코 부사장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여 전 부사장은 고(故) 박태준 회장과 포항제철(현 포스코) 창립 때부터 함께한 인물이다. 그는 4월 10일 황경로 포스코 2대 회장, 안병화 전 포스코 사장 등 다른 창립 멤버들과 함께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 전 부사장은 기자에게 “지금까지 포스코그룹 원로들은 현 경영진의 리더십에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잘하려다 실수했겠지’ 생각하고 넘겼는데, 지난해를 기점으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껴 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포스코 원로들’이 결정적으로 분노한 계기는 최 회장의 스톡그랜트(주식 무상 지급) 논란이다. 3월 31일 최 회장을 포함한 포스코홀딩스 임원 28명이 자사주 2만7030주를 스톡그랜트로 배당받으면서 불거진 사안이다. 스톡그랜트는 회사 주식을 무상으로 지급하는 인센티브 제도다. 주로 인재 영입을 위한 유인책으로 사용된다. 포스코홀딩스 임원들이 받은 자사주는 지급 당일 처분가로 99억4704만 원에 달한다. 최 회장에게는 이 중 1812주(지급일 기준 6억6682만 원)가 지급됐다.
“스톡그랜트, 직원에게 준다는 줄”
여 전 부사장은 “박태준 전 회장이었다면 침수 소식을 듣자마자 현장에서 숙식하며 직원들에게 감동을 줬을 텐데 (최 회장이 당시)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민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스톡그랜트를 한다기에 침수 대응으로 수고한 직원들에게 보상하는 줄 알고 ‘이제야 제대로 하려는가 보다’ 생각했건만, 도리어 최 회장이 6억7000만 원 상당의 주식을 가져갔더라”며 아쉬워했다. 최 회장은 지난해 행정감사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태풍 힌남노 상륙 일주일 전인 9월 3일 재난대책본부가 가동 중인 상황에서 골프를 쳤다”며 질타받은 바 있다.소방공무원들이 지난해 9월 11일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복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소방청 제공]
포스코홀딩스 측은 스톡그랜트가 ‘책임경영’의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재직 기간에 주식을 의무적으로 보유하게 하는 것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포스코노동조합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스톡그랜트는 2021년 이미 이사회 의결을 마친 상태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포스코그룹 내부에서는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노동자에게는 장갑 한 짝이라도 아끼라며 위기의식과 고통 분담을 강요해놓고 경영진은 스톡그랜트로 셀프 보상했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7월 21일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수요 위축과 비용 상승, 공급망 위기 등 복합적인 경제 충격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지금 즉시 그룹 차원의 비상경영에 돌입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당시 포스코는 안전·환경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비용을 절감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지난해 경영진과 직원 간 임금 인상폭의 차이가 두드러진 점 역시 내부 불만을 키웠다. 금융감독원 전자정보공시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해 28억 9300만 원을 보수로 받았다(그래프 참조). 급여 10억300만 원과 상여 18억8200만 원, 기타근로소득 800만 원을 더한 것으로, 최 회장의 전년 보수(18억2900만 원)에서 58.17% 증가한 액수다. 포스코홀딩스 측은 “지난해 연결 영업이익이 9조2000억 원을 기록하는 등 사상 최대 경영 실적을 실현한 만큼 정량평가와 정성평가에 기반해 성과 연봉을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같은 기간 포스코홀딩스 직원의 연평균 급여는 1억700만 원에서 1억1000만 원으로 2.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1%임을 고려하면 실질임금은 줄어든 셈이다.
10대 그룹 회장 중 홀로…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을 빚은 임원 A 씨 역시 스톡그랜트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더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포스코홀딩스의 A 씨가 직원 여러 명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을 자행했다’는 신고가 3월 말 사측에 접수됐다. 건강검진을 앞둔 여직원에게 회식을 강요하거나, 오랜 시간 공개적으로 한 직원을 무시했다는 것이 주요 피해 내용이다. A 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만성 위염에 걸렸다는 직원도 있었다. 해당 임원은 올해 자사주 약 100주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스톡그랜트의 경우 해당 문제와 별도로 전년도 실적에 근거해 지급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지난해에는 포스코그룹에서 성폭력 문제가 터졌다. 포항제철소 여직원 B 씨가 지난해 6월 직장 상사 4명을 특수유사강간과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다. 피의자 중 1명은 4월 28일 법원으로부터 유사강간, 특수치상 혐의를 인정받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정신적 충격이 심하고 성적 수치심을 느껴 엄한 처벌을 원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이 해당 문제로 사과문을 낸 지 1년도 되지 않아 그룹 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연이어 터진 것이다.
포스코홀딩스 측은 언론 취재가 시작된 후인 4월 25일 A 씨를 대기발령 조치해 ‘늑장 대응’을 지적받기도 했다. 신고 접수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주간동아’ 취재 결과 대기발령 후 한 달이 지난 5월 24일까지 A 씨에 대한 추가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해당 사안을 조사 중”이라며 “절차대로 진행하고 있는 만큼 과오가 있다면 그에 따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꼬리를 물면서 최 회장의 리더십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정권교체가 이뤄진 만큼 최 회장이 중도 사퇴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최 회장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그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그룹 회장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임자였던 권오준 전 회장도 2018년 건강상 이유로 사퇴했으나 “정치권의 압박 때문이 아니냐”는 시각이 많았다. 당시 자원외교 비리 의혹과 송도사옥 헐값 매각 의혹 등으로 검찰수사가 진행된 탓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최 회장은 연일 ‘패싱 논란’을 겪고 있다. 연초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등 순방과 미국 국빈 방문 수행단에 최 회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10대 그룹 회장이 대부분 경제사절단으로 윤 대통령과 동행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포스코그룹은 삼성, SK, LG, 현대자동차 등과 함께 5대 그룹으로 분류된다. 특히 포스코그룹이 최근 리튬 등 2차전지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만큼 미국 국빈 방문 때 동행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잖았다.
포스코그룹 측은 “최 회장이 같은 기간 열리는 세계철강협회 정기총회 참석 문제로 방미 경제사절단에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최 회장은 세계철강협회 회장을 지내고 있는 만큼 관련 일정에서 빠지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4월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 최 회장이 불참하면서 패싱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 자리에는 최 회장을 제외한 10대 그룹 회장 전원이 참석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홀딩스 측은 “지난해 힌남노 사태 당시 핵심부품을 공급해 준 인도의 JSW사 회장과 철강 및 2차전지 협업 등에 대한 인도방문이 상당기간 전부터 잡혀있었다”고 설명했다.
尹 측근이 포스코로 모이는 까닭
5월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 윤석열 대통령(앞줄 가운데)과 주요 기업 회장들이 참석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이날 참석하지 않았다. [뉴시스]
재계 관계자는 “이들 변호사는 최 회장이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울타리’를 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며 “비상경영체제라면서 고액의 보수를 지급해야 하는 변호사 영입에 신경 쓰는 모습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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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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