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은밀하게 이뤄지던 동물학대가 최근 들어 보란 듯이 학대 행위를 과시하는 ‘과시형 범죄’로 진화하고 있다. [GETTYIMAGES]
동물학대 처벌, 법보다 판결이 문제
동물학대 범죄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동물학대’에서 ‘동물’이 얼마든 ‘사람’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중 동물학대 전력이 있는 사람이 적잖습니다. 폭력성이 사람으로 향하기에 앞서 동물을 대상으로 먼저 발현된 거죠. 이처럼 동물학대는 사람을 향한 폭력과도 연관돼 있어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잔인한 동물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흔히 “동물보호법이 약해서 그렇다” “동물보호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동물보호법은 이미 상당히 강화된 상태입니다. 2017년 전에는 동물보호법에 따른 동물학대 처벌 수위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이었으나 지금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입니다. 물론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법상 유기죄, 주거침입죄가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물학대 관련 처벌이 아주 약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점입니다. 동물보호법 자체는 이전에 비해 강해졌지만 사법 처리 수위가 아직 그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2022년 3월까지 동물보호법 위반(동물학대 혐의)으로 접수된 사건 4249건 중 재판에 넘겨진 피의자는 122명(3%)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절반 가까이 불기소됐습니다(46.4%). 기소된다 해도 대다수는 벌금형에 그쳤죠. 2013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동물보호법 위반 관련 판결문 200개를 분석한 결과 기소된 201명 중 165명(82%)은 벌금형을 받았고, 평균 벌금액은 140만 원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차피 동물학대는 벌금형”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경각심을 심어주기엔 형량이 많이 가벼운 거죠.
양형 기준 마련해 일관되게 처벌해야
그런데 최근 의미 있는 판결이 하나 나왔습니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형사1단독 박종현 판사가 5월 11일 경기 양평군에서 개 1256마리를 아사(餓死)시킨 혐의로 구속기소된 60대 A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것입니다. 동물학대 혐의로 기소된 사례 중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이 선고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경기 양평군에서 개 1256마리를 아사(餓死) 시킨 혐의로 구속 기소된 60대 A 씨에게 5월 11일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이 선고됐다. [GETTYIMAGES]
아직 1심 판결이지만, 상급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돼 동물학대 범죄를 엄벌하는 토대가 확립되기를 기대합니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물학대 양형 기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양형 기준이 마련돼 처벌이 일정 수준 이상 일관되게 나온다면 동물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박종현 판사가 A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이유가 담긴 판결문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동물 역시 생명체로서 고통을 느끼는 존재다. 동물에 대한 학대 행위에 동물 역시 소리나 몸짓으로 고통을 호소하는데,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학대 행위를 한다는 것은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식이 미약하거나 결여된 것이다. 동물학대 행위에 대한 적절한 법적 통제가 가해지지 않으면 이들의 생명존중 미약이 언제든 사람을 향할 수 있다. 개, 고양이 등 우리 곁에 살고 있는 반려동물을 사회공동체의 일원에 포함시킨다고 가정하면,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존재다. 동물학대 행위를 용인하거나 위법성을 낮게 평가한다는 것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폭력적 행동까지 간과하거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피고인의 범행은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식이 미약한 상태에서 이뤄진 생명경시 행위로 엄중한 죄책이 부과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