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1

2020.05.29

‘국가안보’ 이유로 ‘황금알 낳는 거위’(홍콩) 죽이려는 中

일국양제의 사망…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vs 미국의 홍콩 인권법 정면충돌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0-05-31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앞줄 가운데)이 
5월 23일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했다. [차이나데일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앞줄 가운데)이 5월 23일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했다. [차이나데일리]

    “중국 공산당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죽음과도 같다. 이런 방식의 홍콩 통치는 홍콩인의 거센 저항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홍콩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우치와이 주석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력하게 비판한 내용이다.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한목소리로 반(反)국가보안법 투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캐나다, 호주 정부 등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고, 23개국 정치 지도자 186명도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은 홍콩의 자율성과 법치, 기본 자유에 대한 포괄적 공격”이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홍콩 주재 마지막 영국 총독이던 크리스 패튼 옥스퍼드대 총장은 “홍콩의 자율성은 일국양제에 따라 보장돼왔다”며 “하지만 중국은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해 이를 파괴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패튼 총장은 1997년 영국이 150년간 홍콩 식민 통치를 마치고 주권을 중국에 넘길 당시 총독을 역임한 인물이다.


    전인대, 국방과 외교 분야 법률 제정 가능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기자회견에서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왼쪽). 
캐리 람 행정장관(앞줄 가운데) 등 홍콩 정부 간부들이 중국공산당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지지하고 있다. [China Daily, govHK]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기자회견에서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왼쪽). 캐리 람 행정장관(앞줄 가운데) 등 홍콩 정부 간부들이 중국공산당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지지하고 있다. [China Daily, govHK]

    중국의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홍콩의 반발과 각국의 비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5월 28일 폐막된 회의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이르면 다음 달 전인대 상무위원회 최종 승인 절차를 거쳐 발효된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애초 홍콩 의회인 입법회를 통해 이 법을 제정할 계획이었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반대로 통과가 어려우리라 보고 직접 제정에 나섰다. 중국 전인대가 홍콩에 대한 법을 직접 제정하는 것은 1997년 홍콩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이래 처음이다. 홍콩 법률은 기본적으로 입법회를 통해 제정된다. 하지만 중국 전인대는 일국양제에 따라 국방과 외교 분야의 법률을 만들어 이를 홍콩 헌법인 기본법에 부칙으로 삽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중국은 영국과 1984년 홍콩 주권 반환 공동선언에서 홍콩에 일국양제를 50년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에게 홍콩에 일국양제를 50년간 보장하겠다고 확약했다. 이에 따라 홍콩은 2047년까지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분야에서 고도의 자치권을 행사한다는 보장을 중국으로부터 받았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이런 약속을 깨고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일국양제에 사망선고를 내린 셈이다. 홍콩 기본법 제18조는 일국양제에서 중국의 주권 영역인 외교와 국방 등에 관련된 중국 본토 법규를 기본법 부칙 제3조에 삽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홍콩 국가보안법은 홍콩의 외교, 국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중국 공산당이 이 법을 제정한 이유는 지난해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 같은 반중(反中) 시위를 더는 묵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해 6월 9일부터 연일 수만 명에서 200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송환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 당시 홍콩 시민들은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을 악용할 수 있다며 법 개정에 반대했다. 결국 홍콩 정부 최고책임자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해 9월 4일 송환법을 철회했다. 당시 시위 사태는 ‘홍콩의 중국화’를 가속화하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산당 지도부의 야심을 저지한 ‘일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홍콩에 대한 전면적인 감독과 통제를 위해 ‘홍콩 국가보안법’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에번 메데이로스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중국 공산당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은 남아 있던 일국양제의 겉치레마저 벗긴 것”이라며 “시간이 갈수록 옛 소련의 베를린 봉쇄로 동서 냉전이 본격화한 1948년처럼 돼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중 시위자, 최장 30년 징역형

    5월 20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국무부에서 중국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DOS]

    5월 20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국무부에서 중국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DOS]

    실제로 이 법에는 국가를 분열하고, 국가 정권을 전복하며, 테러 조직을 결성해 활동하는 행위 등을 강력하게 처벌해 중국 헌법과 홍콩의 헌정 질서를 지키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특히 이 법에는 외국 또는 홍콩 이외 세력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홍콩 내정에 개입하거나 홍콩을 이용해 분열, 전복, 침투, 파괴하려는 활동을 저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홍콩 정치 전문가인 장쿤양 애널리스트는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다면 홍콩 야당과 시민사회는 물론, 인권 및 민주화 운동가들은 탄압을 받아 철저히 파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법에 따라 반중 시위자는 최장 3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같은 대규모 시위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또 이 법에는 중국 정부가 국가안보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필요할 때 국가안보 관련 기관을 홍콩에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중국 정부의 공안기관이 홍콩에 설치되고, 공안요원이 활동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법에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국가안보 교육을 실시한다는 내용도 있다.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중국 정부가 홍콩인을 세뇌 교육시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왕천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은 “홍콩에서 국가안보 위협이 갈수록 커지고 일국양제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도전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며 “홍콩 국가보안법에 따라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행위를 방지, 중단,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이 외교부장도 “홍콩은 중국의 내정으로,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허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환구시보’는 “홍콩 국가보안법은 일국양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일부 반정부 세력이 외부 세력과 결탁해 국가안보를 해치도록 허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구시보가 외부 세력의 개입 방지를 강조한 것은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들이 홍콩의 반중 시위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 공산당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기원 및 확산에 대한 책임 문제로 미국과 중국이 점점 더 대립, 갈등하는 상황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이 양국 충돌의 새로운 뇌관으로 비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홍콩 국가보안법 문제를 매우 강하게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 팔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은 일방적이고 제멋대로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려는 중국을 규탄한다”며 경제·통상 분야에서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카드를 꺼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1992년 제정된 홍콩정책법에 따라 관세,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중국과는 달리 홍콩의 특별지위를 보장해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제정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홍콩인권법)에 따라 홍콩의 자치 수준을 매년 검증해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유지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보복 조치로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할 경우 홍콩은 중국 본토와 같은 최대 25%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아시아 ‘금융 허브’ 역할 상실 우려

    홍콩 시민들이 중국 공산당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홍콩 경찰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고 있다. [HKFP]

    홍콩 시민들이 중국 공산당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왼쪽). 홍콩 경찰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고 있다. [HKFP]

    특히 홍콩은 다국적 투자은행과 기업의 이탈로 아시아 ‘금융 허브’ 역할을 상실할 수 있어 중국에게도 상당한 경제적 타격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자본 거래가 전면적으로는 자유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홍콩 증시와 채권시장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왔다. 이 때문에 홍콩은 그동안 중국 입장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얘기를 들었다. 

    미국 의회도 강경한 대중(對中) 보복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상원에선 민주당 크리스 밴홀런 의원과 공화당 팻 투미 의원이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관여한 중국 관리와 단체를 제재하고, 이들과 거래하는 은행에 대해서도 제3자 제재(secondary boycott)로 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할 계획이다. 이 법안이 통과돼 시행될 경우 중국 지도부의 해외 금융 거래 자체가 막히고 중국 은행들이 제재를 받을 수 있다. 

    홍콩에선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이미 시위를 격렬하게 벌이면서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특히 홍콩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6월 4일과 9일 톈안먼 사태 31주년과 송환법 반대 투쟁 1주년을 맞아 대규모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게다가 7월 1일은 홍콩 주권 반환일이다. 중국 정부가 이를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유혈 진압할 경우 자칫하면 ‘제2 톈안먼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는 “1989년 톈안먼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단기적 경제이익을 희생해서라도 정치적 안정과 권력 장악을 중요시한다”며 홍콩 국가보안법을 강행할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홍콩이 코로나19 사태로 정면대결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뜨거운 전쟁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