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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선배의 음악 취향 변천사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K 선배의 음악 취향 변천사

미국 록밴드 소닉 유스. [SCOTT NEWTON Photography]

미국 록밴드 소닉 유스. [SCOTT NEWTON Photography]

다들 집에만 있으니까 심심했던 걸까. 소셜미디어에 무용담처럼 옛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중년들의 글에서 발견한 공통점 두 가지. 첫째, 1980~1990년대 신촌에서 안 놀아본 사람을 찾기 힘들다. 둘째, 레드 제플린→딥 퍼플→핑크 플로이드로 이어지는 ‘그 시절 3대장’을 들으며 사랑과 인생에 고뇌하던 청춘이 어찌 그리 많은지. 

결말은 대체로 비슷했다. 한국에서 록 유행이 얼터너티브로 바뀌고 젊음의 중심지가 신촌에서 홍대 앞으로 넘어오면서 ‘청춘의 한 시절’과 작별을 고했다는 것. 마치 공룡이 백악기 이후 급격히 멸종의 길로 접어들었듯, 많은 음악 청년은 “이건 록이 아니야!”라며 너바나 이후 음악에 환멸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급격하게 바뀐 환경에 적응한 몇몇 공룡이 조류가 돼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듯, 그때도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록 3대장과 시애틀 4천왕

(왼쪽부터)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핑크 플로이드. [미국 마이클 옥스 아카이브 Michael Ochs Archives, GettyImages, YES24]

(왼쪽부터)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핑크 플로이드. [미국 마이클 옥스 아카이브 Michael Ochs Archives, GettyImages, YES24]

K 선배는 그 대표적 경우였다. 그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 1970년대 하드록, 1980년대 헤비메탈을 음악의 정수라 믿던 평범한 음악청년이었다. 아니, 평범하진 않았다. 서울 청계천을 뒤져 구한 해외 음악잡지에서 중고 음반가게 주소를 알아내고, 국제우편으로 편지를 보내 그 가게의 카탈로그를 받은 후 본인이 구매하고 싶은 음반 목록을 다시 보내고, 입금 방법이 담긴 편지를 받은 후 국제우편환으로 돈을 보낸 끝에 원하는 음반을 손에 넣는, 이 지난한 과정을 기꺼이 감수할 정도의 인내와 열정을 가진 남자였다. 그게 사는 재미의 전부였다. 

그런 K 선배가 28개월의 군 생활을 마치고 만난 세상은 너바나와 펄잼, 앨리스 인 체인스와 사운드가든으로 대변되는 ‘시애틀 4천왕’이 지배하고 있었다. 게다가 옛날에는 평범한 팝 그룹으로 여겼던 U2가 거장 반열에 올랐고, 듣도 보도 못한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밴드가 새로운 록 히어로로 등극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맙소사! 게다가 머리도 안 기르고, 가죽점퍼도 안 입었는데!). 

K 선배는 자신의 컬렉션 앞에서 깊은 회의에 빠졌다. 20대 초반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모은, 1000장 넘는 ‘원판’(해외에서 직수입한 음반). 그 중 이기 팝, 섹스 피스톨스, 더 클래시 등 1990년대 록 사조에 직접 영향을 끼친 밴드가 들어 있었다면 그나마 쉽게 적응했으련만, 선배가 보유한 앨범은 대부분 듣도 보도 못한 아트록이었다. 



나는 그런 선배의 모습을 보며 그 또한 다른 형들과 마찬가지로 옛날 음악만 들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오랜 군 생활이 그를 바꿔놓은 것일까. 유격과 혹한기가 이 엄격한 록 순수주의자에게 유연성을 불어넣은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너바나에게 큰 영향을 끼친 뉴욕 출신 노이즈 록 밴드 소닉 유스의 ‘Goo’ 앨범을 들고 오더니 “나, 요즘 여기 꽂혔다”고 했다. 이것이 1993년, 소닉 유스가 한국에선 아직 낯설 때였다.


커트 코베인 때문에

커트 코베인. [GettyImages]

커트 코베인. [GettyImages]

아트록 앨범을 모을 때와 마찬가지로 선배는 미친 듯이 동시대, 그러니까 1990년대 음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커트 코베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94년 4월 5일 직후 선배는 술에 취해 “내가 군대 있을 때 커트 코베인이야말로 암울한 청춘의 기둥이었어”라며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 앞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우리는 선배가 제대하자마자 “너바나 따위도 음악이냐”라며 화낸 걸 기억하고 있었지만, 선배가 맘에 둔 여자신입생이 너바나 팬임을 알았기에 함께 슬퍼해줬다. 비록 그 후배가 너바나에서 갑자기 힙합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1990년대 키드로 거듭난, 조류로 남는 데 성공한 공룡이 된 K 선배는 졸업 후 음반사에 취직했다. 학점은 1점대였지만 1990년대 음악에 강한 점이 주효했다. 1년도 안 돼 부장과 싸우고 관뒀지만 말이다. 이유를 묻자 만취한 선배는 분개하며 말했다. “그 XX가 술만 마시면 맨날 ‘음악은 70년대’라고 바락바락 우기는 거야. X도 모르는 게.” 우리는 속으로 그게 바로 몇 년 전 K 선배의 모습이라 생각했지만 선배가 사준 비싼 양주만 홀짝였다. 

회사를 관둔 선배는 세계여행을 떠났다. 지미 헨드릭스부터 커트 코베인까지, 요절한 록스타의 묘지 순례였다. “형, 경비는 어쩌려고?” “아, 옛날에 샀던 아트록 앨범들 땡 처리해 마련했어. 이베이가 좋더라고.” 아직 21세기 전이었다. 이베이는커녕 인터넷도 생소해하던 K 선배는 시간을 앞 달려 살고 있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여행. 짐 모리슨과 에디트 피아프가 묻힌 프랑스 파리의 페르라세즈, 미국 멤피스에 있는 엘비스 묘지, 존 레넌을 위해 설치된 뉴욕 센트럴파크의 헌화판 등의 성지를 거쳐 선배는 드디어 미국 시애틀에 도착했다. 지미 헨드릭스의 묘지를 지나 워시카(Wishkah)강으로 향했다. 커트 코베인의 재가 뿌려진 곳. 황혼이 지는 워시카 강둑에서 홀로 너바나의 유작 ‘MTV Unplugged in New York’을 듣던 선배의 눈에 한 여인이 들어왔다. 동양 여자였다. “웨어 아 유 프롬?” “코리아.” 

그녀도 커트 코베인의 열혈 팬이었다. 1994년 너바나의 팬이었다 힙합으로 갈아탄 신입생과의 좌절된 로맨스가 세기말 시애틀에서 다른 상대와 꽃피었다. 그 후 둘은 여행 동반자가 됐고, 록스타 추모고 뭐고 연인이 즐겨 다니는 관광지만 다니다 귀국했다. 그리고 짧은 열애 끝에 결혼했다.


소닉 유스가 좋다고 한 형님

소닉 유스의

소닉 유스의 'Goo' 앨범. [Geffen Records]

몇 년 전 K 선배를 만났다. 수도권 신도시의 번듯한 아파트에 입주했다고 집들이를 했다. 술이 불콰해질 무렵, 옛날이야기를 하던 선배는 갑자기 물었다. “만약 내가 1970년대 음악만 들었다면 인생이 어찌 됐을까.” 우리는 대답 대신 요즘은 무슨 음악 듣느냐고 물었다. “음악은 무슨…. 애 키우느라 바빠서 요즘은 와인이나 마시고 맛집이나 다니지 뭐.” 늦게 생긴 막둥이가 달려왔다. “아빠! 유튜브!” 선배는 스마트 TV로 유튜브를 틀고 녀석이 좋아한다는 ‘아기상어’를 틀었다. 

TV 맞은편 장식장에는 수천 장의 CD가 들어 있었다. 구경하다 소닉 유스의 ‘Goo’를 꺼냈다. 안 들은 지 10년은 됐을 것 같은 느낌. 먼지가 손가락에 그대로 묻어 나왔다. “이거 한 번 들어볼까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았다.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






주간동아 2020.04.10 1234호 (p62~64)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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