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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

간호사 사회 만연한 ‘괴롭힘’ 문화…가해자는 선배, 원인은 인력 부족·수업과 현장의 괴리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

2013년 기준 신규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전체 간호사 평균 이직률의 2배에 달한다. 동아일보

간호사 사회에는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말에서 유래한 ‘태움’이라는 은어가 널리 퍼져 있다. ‘태움’은 선후배 간 교육 차원의 훈계를 넘어선 언어, 신체적 폭력이나 따돌림 등을 뜻한다. ‘태움’에 시달리다 만성질환을 얻거나 유산하거나 병원을 그만두는 경우도 다반사다. 간호사 사회에서 이 같은 악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3년 말 병원간호사회 조사에 따르면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13.9%였다. 200병상 미만인 중소병원에서의 간호사 평균 이직률은 28.8%로 가장 높았고, 1000병상 이상인 대형병원에서의 이직률은 10%였다. 직위별 간호사 이직률은 일반 간호사가 93.5%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특히 신규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전체 간호사 평균 이직률의 2배에 달했는데, 2013년 신규 간호사 1만6205명 중 이직자는 4694명(29%)이었다. 이직 사유는 ‘타 병원 이직’이 1676명(19%)으로 가장 많았고 ‘결혼·출산·육아’ 1362명(15.4%), ‘업무 부적응’ 1095명(12.4%), ‘진학 및 유학’ 808명(9.1%) 순이었다.

생명과 직결, 작은 실수도 용납 안 돼

2013년 6월 ‘정신간호학회지’에 발표된 ‘병원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과 직무 스트레스가 이직 의도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근무 기간 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경우는 60.9%였고, 이 중 괴롭힘을 경험한 시기는 근무 경력 1년 이내가 58.1%를 차지했다. 입사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경험하는 경우도 14.0%에 달했다. 가해자의 반수 이상은 선배나 선임 간호사 또는 관리자였다.
간호사의 높은 이직률은 남은 동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업무량을 증가시켜 환자 간호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국내 병원에서 근무하는 3년 차 간호사 A씨는 “내가 아는 간호사들은 잘하건 못하건 태움을 당했다. 실수한 걸 혼내면서 ‘너는 머리가 있느냐’와 같이 필요 없는 얘기를 덧붙이거나, 일부러 여러 사람 앞에서 대놓고 면박을 줬다. 심할 때는 ‘쟤 인사도 받아주지 마라’며 따돌리기도 했다. 수간호사가 작정하면 아래 간호사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현 상태에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놓고 해결할 때까지 집에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내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B씨는 “혼잣말을 한다거나, 지나치게 긍정적이라는 이유로 태움을 당했다. 태움은 병원이 어디냐보다 선배가 누구냐에 따라 당할 수도 있고, 안 당할 수도 있다. 선배가 되면 태움을 당해봐야 제대로,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후배들을 태운다. 친절하게 설명해주면 긴장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태우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많은 간호사가 환자 생명과 직결된 일을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인력 부족을 태움이 심화되는 원인으로 꼽았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간호사 인당 환자 수가 5.4명이고, 일본은 인당 7명꼴이다. 호주와 캐나다는 각각 간호사 인당 환자 수 4명에 보조인력까지 따라붙는다. 국내에서는 간호사 1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2~3배 많은데, 평균적으로 인당 환자 15~20명을 돌보는 셈이다. 보건복지부가 간호사 확충을 위한 간호등급 가산제(7등급)를 통해 간호사를 적게 고용하는 병원에 페널티를 주고 있지만, 중소병원의 경우 6등급이 안 되는 병원이 전체의 75% 가까이 된다.
교대 근무의 특성상 오전 근무에서 잘못된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오후 근무자가, 그리고 오후 근무자가 마무리하지 못한 일은 야간 근무자가 떠안게 된다. 간호학과 재학시절에는 선후배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던 간호사 C씨는 병원에 가니 상황이 달라졌다고 했다. C씨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다른 직업에 비해 실수에 더욱 예민하고 주의할 수밖에 없다. 태움은 관습적으로 이어져온 것일 수 있지만, 간호사들의 업무량이 너무 많아 발생하기도 한다. 날마다 교대 근무를 하면서 업무를 인수인계해야 하는 현 구조상 앞 근무 간호사가 맡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면 교대하는 간호사의 업무량은 더 많아진다”고 말했다.
신규 시절 태움을 당했으나 지금은 태우는 처지가 된 7년 차 간호사 D씨는 “간호사 사회도 군대만큼 폐쇄적이고 계급을 중시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런 문화가 싫었는데, 병원 일이 힘들고 후배 간호사가 일을 잘하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안 좋은 모습이 나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간호사 E씨는 “국내에서 간호사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내 안위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과정에서 태움도 심해진다. 실수는 혼나도 되지만, 인격적인 모독은 줄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대놓고 태움 못 해

간호사는 힘든 직업이다. 약을 잘못 쓰거나 주사를 잘못 놓는 실수는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의사에 대한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불만이 간호사에게로 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진상’ 환자라도 만나는 날은 화장실에라도 가서 울고 싶지만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없다. 하루 종일 서서 밥도 굶어가며 일하지만 보람을 느낄 시간이 없다며 자조하는 게 간호사들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태움’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미국 대형병원에서 2년째 근무하는 간호사 F씨는 “미국 간호사라고 다를 건 없지만, 국내처럼 대놓고 후보 간호사들을 태우지는 않는다. 미국 사회는 개인주의적인 데다 고소가 일반화돼 있어 뒤에서 뭐라고 할지는 몰라도 대놓고 폭언하거나 집에 보내지 않는 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라 고소당하기 십상이다. 대놓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병원 핫라인 등을 통해 신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병원에서 일하다 지금은 병원이 아닌 곳으로 이직한 9년 차 간호사 G씨는 “국내 간호사들의 업무 과중은 심각한 상황이다. 내가 소화해야 할 업무량이 넘쳐서 바쁜 와중에도 신규 간호사를 가르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신규 간호사가 실수할 경우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미국은 의료수가가 높아 간호사 인당 환자 수가 우리보다 적지만, 우리는 의료수수가 낮아 인력을 많이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직률도 2~3년 차에 가장 높고, 평균 근속기간도 짧다”고 말했다. 해외처럼 내부적으로 괴롭힘을 신고하거나 상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지 묻자 “국내 간호사들은 그런 생각을 전혀 못 할 것이다. 다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쩌겠느냐는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내 태움을 없애려면 대학교육과 실전의 괴리를 해소하고 신규 간호사들이 병원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간호사 국가시험 합격자 수는 2011년 1만2519명에서 2015년 1만5742명으로 증가했다. 2016년에는 2만여 명의 신규 간호사가 배출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병원마다 시스템이 각기 다른 우리와 달리 외국 병원은 시스템이 표준화돼 있어 간호사의 실전 적응이 한결 수월한 편이다. 국내에서는 간호대가 의과대와 달리 자연계열로 묶여 있다 보니 이론 위주로 교육받은 학생이 현장에 투입됐을 때 현장감이 부족해 적응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태움을 겪게 된다. 경력이 단절된 간호사들이 재취업하는 과정에서 태움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11월 30일 국회에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돼 2016년 하반기부터 의료인을 양성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은 평가와 인증을 의무적으로 받게 됐다. 간호대에서도 관찰 위주의 실습에서 벗어나 시뮬레이션 랩실을 만들고 임상강사를 의무적으로 두는 등 실습 과정 개선이 이뤄진다면 수업과 현장의 괴리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주간동아 2015.12.23 1018호 (p26~27)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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