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왜 오를까. ‘거기 산이 있어서’라는 게 아마도 가장 유명한 답일 것이다. 영화 ‘히말라야’에는 ‘산쟁이’라는 은어가 등장한다. 산을 좋아하다 못해 산에 미쳐 생애 전부를 걸 수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런 식이다.
“산쟁이는 산을 정복한다는 말을 쓰지 않아. 산이 허락하는 대로 잠깐 그 정상을 빌릴 수 있을 뿐이지.”
‘히말라야’는 산에 대한 이런 경외심의 유무에 따라 감동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이다. 산을 경외한다면 감동적이지만, 반대로 ‘대체 산에 왜 가지’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에겐 다소 낯선 감정을 요구한다. 여러모로 ‘히말라야’는 이 영화를 연출한 이석훈 감독보다 제작한 윤제균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황정민이 이번에도 주인공으로 출연해서만은 아니다. 배우보다 더 ‘윤제균다운’ 것은 바로 웃음과 눈물의 배합이다. ‘히말라야’ 전반부는 박무택(정우 분)이 팀 막내로 들어오기까지 과정과 엄홍길 대장(황정민 분)과 박무택의 우정으로 이뤄져 있다.
‘히말라야’는 잘 알려졌다시피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누군가 히말라야에서 목숨을 잃었고, 산을 떠났던 엄홍길 대장이 그 시신을 수습하고자 장비를 챙겨 아픈 몸을 이끌고 히말라야로 떠난다. 이 사실은 모든 관객이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히말라야’의 웃음은 울기 위한 몸풀기에 가깝다.
고집만 앞세우는 대구 촌놈 박무택이 팀원이 되는 과정은 예상하다시피 코미디다. 박무택의 꾸밈없는 성격 자체가 훈훈한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산행 연습 과정이나 약혼녀와의 에피소드도 전형적인 윤제균식 웃음 코드를 따라간다. 이후는 눈물이다. 박무택이 목숨을 잃고, 엄홍길 대장 팀이 시신을 수습하고자 어렵사리 산을 오른다.
문제는 관객이 ‘JK’사단에 기대하는 영화 문법이 무난한 대중성이라는 사실이다. 윤제균 감독이 연출하거나 제작한 영화에 대해 관객은 원만한 해피엔딩을 바란다. 약간의 희생이 따를지언정 우리가 몰입하는 주인공에게만큼은 성공과 행복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국제시장’의 덕수가 아버지를 잃고 어렵게 자라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에게 “저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라고 할 만한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히말라야’는 실패를 전제로 한 이야기다. 엄홍길 대장은 박무택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히말라야로 가지만 결국 시신을 묻어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신을 수습하겠다고 사람들이 산에 오른 전례는 없다. 그 자체로 감동적이고 숭고하다. 하지만 120억 원이 든 대형 상업영화의 이 결말에 대중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도대체 왜 발가락, 손가락 다 잃어가면서까지 산에 가야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산에 왜 가야 하는지 설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산에서 눈을 감은 그를 왜 데려와야 하는지를 설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댄싱퀸’에서 감각을 선보이고 ‘해적’에서 흥행 맛을 본 이석훈 감독은 이번엔 대중의 환심보다 진심을 얻고 싶었던 듯싶다. 하지만 진심을 전하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다큐멘터리의 감동이 픽션으로 극화됐을 때 관객이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사실 확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쟁이는 산을 정복한다는 말을 쓰지 않아. 산이 허락하는 대로 잠깐 그 정상을 빌릴 수 있을 뿐이지.”
‘히말라야’는 산에 대한 이런 경외심의 유무에 따라 감동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이다. 산을 경외한다면 감동적이지만, 반대로 ‘대체 산에 왜 가지’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에겐 다소 낯선 감정을 요구한다. 여러모로 ‘히말라야’는 이 영화를 연출한 이석훈 감독보다 제작한 윤제균 감독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황정민이 이번에도 주인공으로 출연해서만은 아니다. 배우보다 더 ‘윤제균다운’ 것은 바로 웃음과 눈물의 배합이다. ‘히말라야’ 전반부는 박무택(정우 분)이 팀 막내로 들어오기까지 과정과 엄홍길 대장(황정민 분)과 박무택의 우정으로 이뤄져 있다.
‘히말라야’는 잘 알려졌다시피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누군가 히말라야에서 목숨을 잃었고, 산을 떠났던 엄홍길 대장이 그 시신을 수습하고자 장비를 챙겨 아픈 몸을 이끌고 히말라야로 떠난다. 이 사실은 모든 관객이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히말라야’의 웃음은 울기 위한 몸풀기에 가깝다.
고집만 앞세우는 대구 촌놈 박무택이 팀원이 되는 과정은 예상하다시피 코미디다. 박무택의 꾸밈없는 성격 자체가 훈훈한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산행 연습 과정이나 약혼녀와의 에피소드도 전형적인 윤제균식 웃음 코드를 따라간다. 이후는 눈물이다. 박무택이 목숨을 잃고, 엄홍길 대장 팀이 시신을 수습하고자 어렵사리 산을 오른다.
문제는 관객이 ‘JK’사단에 기대하는 영화 문법이 무난한 대중성이라는 사실이다. 윤제균 감독이 연출하거나 제작한 영화에 대해 관객은 원만한 해피엔딩을 바란다. 약간의 희생이 따를지언정 우리가 몰입하는 주인공에게만큼은 성공과 행복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국제시장’의 덕수가 아버지를 잃고 어렵게 자라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에게 “저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라고 할 만한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히말라야’는 실패를 전제로 한 이야기다. 엄홍길 대장은 박무택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히말라야로 가지만 결국 시신을 묻어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신을 수습하겠다고 사람들이 산에 오른 전례는 없다. 그 자체로 감동적이고 숭고하다. 하지만 120억 원이 든 대형 상업영화의 이 결말에 대중이 얼마나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도대체 왜 발가락, 손가락 다 잃어가면서까지 산에 가야 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산에 왜 가야 하는지 설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산에서 눈을 감은 그를 왜 데려와야 하는지를 설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댄싱퀸’에서 감각을 선보이고 ‘해적’에서 흥행 맛을 본 이석훈 감독은 이번엔 대중의 환심보다 진심을 얻고 싶었던 듯싶다. 하지만 진심을 전하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다큐멘터리의 감동이 픽션으로 극화됐을 때 관객이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사실 확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