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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이 모든 약속에 대해 그 효력을 인정하고 지켜지도록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민법 제103조를 보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반사회질서 조항이 있다. 마약을 사고파는 약속, 불륜을 하기로 하는 약속 등이 지켜지도록 법이 강제할 수는 없다. 그뿐 아니라 민법 제746조에는 불법원인급여 규정이 있어 반사회적 질서에 해당하는 약속이 이행됐다 해도 이행된 것을 다시 되돌려받을 수 없다는 조항이 있다. 윤락의 대가인 화대 지급을 청구하거나 화대 대가인 성관계의 이행을 청구할 수 없다. 지급된 화대에 대한 반환청구를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법원이 불륜녀와 결별한 후 불륜 당시 사준 아파트 값을 돌려달라고 한 유부남의 청구를 받아들여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려 화제가 됐다. 유부남 A씨는 유흥주점에서 만난 여자에게 현금 1억여 원을 지급하고, 고급승용차와 다이아몬드 반지 등을 사줬을 뿐 아니라, 일 때문에 이주하게 되자 함께 가자고 제안하면서 3억5000만 원짜리 아파트를 사줬다. 얼마 후 만남을 거부당한 A씨는 “부모에게 불륜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해 불륜녀로부터 “아파트 처분 대금의 절반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불륜녀는 오히려 다른 남자와 결혼해 그 아파트에 살면서 A씨와의 대금 반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화가 난 A씨는 불륜녀를 상대로 대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의 법률 요건들을 분석해보면 3가지 약속이 있었다. ①A씨가 불륜관계에 있던 여자에게 아파트를 사주기로 한 약속 ②A씨가 이를 이행한 행위, 그리고 ③A씨가 아파트 대금의 절반을 돌려받기로 한 약속이 그것이다. 만일 ①의 약속이 불륜 대가라면 법은 ①과 같은 약속의 이행에는 협조하지 않는다. 그리고 ②의 상태에서 A씨가 이행한 약속은 반사회적 질서에 해당해 무효이며, 따라서 이를 되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해도 패소했을 것이다. 민법 제746조의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A씨는 1심에서 “약혼을 조건으로 아파트를 증여했다”며 “그 조건이 지켜지지 않았으니 증여 계약이 무효”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지만, 재판부는 “유부남의 약혼은 불법이고 증여의 조건이 될 수 없다”며 패소 판결했다. 그러자 A씨는 2심에서 불륜관계가 해소된 상태에서 아파트 값의 절반을 돌려받기로 한 새로운 ③의 약속을 근거로 그 이행을 청구하는 쪽으로 작전을 바꿔 끝내 승소했다. 2심 법원 재판부는 불륜관계가 해소된 후 반환하기로 약속했다면 그 약속은 반사회적 질서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고 본 것이다. 생각해보면, 불륜 대가일망정 이를 반환하기로 한 약속을 무효로 볼 이유도 없다.
얼핏 보면 불륜 대가와 그 반환 문제로 보이지만, 이 소송의 핵심은 단순한 반환 약속의 이행 문제였다. 결국 법원 판결의 취지는 불륜 대가로 받았으니 돌려주라는 것이 아니라, 돌려주기로 약속했으니 이를 지키라는 것이다. 이처럼 약속은 법적으로 중요하며 그만큼 신중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