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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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과 끈기’를 누가 따르랴

  • 이종현/ 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입력2004-04-22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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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주가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에서 3위에 오른 것에 대해 일부 언론은 월드컵 4강 진출에 빗대면서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해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오픈서 한때 선두에까지 나서며 파란을 일으켰던 허석호 역시 세계 골프팬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한국 남자 선수들의 메이저 대회 상위권 진입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특히 한국 골퍼의 미국 PGA(프로골프협회) 진출은 2010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게 일반적 평가였다.

    농사꾼의 아들 최경주는 10대 중반까지 골프클럽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던 소년이었다. 전남 완도에서 경운기를 타고 대처로 나올 때 그의 아버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괜한 고생 하지 말고 여기서 농사나 짓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경주는 성공하기 전에는 절대 내려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연습장에서 먹고 자면서 곁눈질로 골프를 배웠다. 그의 유일한 스승은 골프 비디오테이프였다. 훌륭한 선수들의 스윙을 비디오를 통해 본 뒤 연습장이 문을 닫은 밤늦게야 비로소 연습을 시작했다.

    허석호 역시 골프를 그만둘 뻔한 위기가 있었다.



    국가대표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손쉽게 프로에 데뷔하며 팬텀오픈서 3위에 오르는 등 순탄한 출발을 보였다. 그러다 그는 군대에 갔고 제대 뒤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명이 끝날 위기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암 선고를 받아 허석호는 집안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 되었다.

    당시 그는 필자에게 골프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필자는 그를 강력히 말렸다.

    “조금만 참으면 무릎은 낫지 않겠느냐. 그리고 집안일은 잠시 잊어라….”

    만일 최경주나 허석호가 어려운 상황에서 의지가 꺾였다면 지금의 영광은 없었을 테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였을 것이다.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국가가 어렵고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실력은 더욱 빛을 낸다. 이는 한국인 특유의 강한 정신력 때문일 것이다.

    한국 골프의 원동력은 한국인 특유의 강한 정신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1970, 80년대엔 이것을 헝그리 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외국 언론들은 한국인이 유난히 은근과 끈기를 보이는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고 평한다.

    시골길을 빠져나오며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였다면 프로골퍼 최경주는 지금 여기 없다. 무릎 부상과 어머니의 병 때문에 레슨 프로로 전향했다면 지금의 허석호는 없다.

    누구나 어려운 시절을 겪게 마련이다. 훌륭한 선수는 위기가 닥쳤을 때 강한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최경주와 허석호 같은 선수들이 계속해서 세계 그린을 호령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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