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9

2002.06.20

‘히틀러의 화신’ 엘도라도를 가다

  •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입력2004-10-14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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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의 화신’ 엘도라도를 가다
    세계 영화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사건들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그 세계사적 출발점은 언제나 한 나라의 영화운동으로부터 촉발됐다.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이 그랬고, 프랑스의 누벨바그가 그랬다.

    대략 10여년을 주기로 형성되는 새로운 영화의 물결은 70년대 들어 독일에서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독일 영화, 즉 ‘뉴 저먼 시네마’가 바로 그것이었다.

    1950년대 독일 영화는 침체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도 큰 요인이었다. 전후의 혼란 속에서 현실도피적인 상업영화들만 판치고 있었다. 그러다 일군의 젊은 영화인들이 오버하우젠에 모여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독일 영화의 서막을 알리는 이른바 ‘오버하우젠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오랜 결실로 나타난 것이 바로 뉴 저먼 시네마였다.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는 기수들은 늘 있게 마련이었다. 독일식 멜로물의 대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로드무비의 새 장을 연 빔 벤더스, 알렉산더 클루게, 그리고 베르너 헤르초크가 그 중심에 선 인물들이다.

    ‘히틀러의 화신’ 엘도라도를 가다
    이들 가운데 헤르초크는 좀 유별난 데가 있다. 동료 감독들이 눈앞에 펼쳐진 독일 현실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에 비해, 헤르초크는 팬터지와 신화 속에서 역으로 당대의 문제점을 반추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1973년에 공개된 ‘아귀레, 신의 분노’(‘백두대간’의 49번째 예술영화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다)는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영화는 원정에 관한 영화다. 남미의 어딘가에 있다는 황금의 이상향 엘도라도(El Dorado)를 찾아 떠나는 스페인 원정대의 처절한 사투가 영화의 중심 얼개를 이룬다.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은 원정대는 원주민을 노예로 삼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계곡과 강 하류를 따라 탐험을 계속하지만 워낙 악조건이라 대오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부관인 아귀레(클라우스 킨스키)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대원들을 지배하며 황금의 영토를 찾아 강행군을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미지의 신비로운 풍광은 대원들을 압도해 반미치광이로 만든다. 아귀레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상향이라는 목적지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내적인 신념은 점점 확고해진다.

    ‘히틀러의 화신’ 엘도라도를 가다
    영화의 라스트 시퀀스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결국 좌절해 가는 아귀레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겨우 뗏목 하나에 의지해 목적지를 향해 가던 원정대는 인디언의 공격을 받아 하나하나씩 쓰러져 간다.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른 채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온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는 아귀레는 다음과 같이 절규한다.

    “나는 신의 분노다. 나는 딸과 결혼해 순수한 왕국을 건설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신대륙을 지배할 것이다. 나 말고 누가 있겠느냐. 나는 신의 분노다.”

    하지만 이런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내로 삼고자 했던 딸은 절명하고 만다. 자신을 신적 존재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그의 욕망도 부질없는 것으로 드러났음은 물론이다. 스스로 역사를 만들고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한 정복자의 헛된 야망이었다.

    여기서 헤르초크 감독은 지극히 영화적인 수단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대원 중 한 명인 신부는 화살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이것은 화살이 아니다”고 부정한다. 그들은 또한 나무 꼭대기에 걸려 난파한 거선을 보고 경악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사실 이 장면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관객들마저도 그 배의 존재를 팬터지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그 배가 걸려 있는 나무 꼭대기에까지 물이 차 있어야 한다는 것을 누가 감히 생각이라도 했겠는가? 나는 그 장면을 보고 헤르초크의 영화적 상상력에 경탄했다. 그것은 일종의 지적 충격이었다. 거함이 두 동강 나는 ‘타이타닉’의 장관도 실상은 완벽한 컴퓨터그래픽을 통한 기술의 개가일 뿐,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를 발동할 여지를 남기지는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헤르초크는 아귀레의 모험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사실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그리 심오한 것은 아니다. 우매한 대중을 파국으로 몰고 간 오만과 독선에 찬 정복자의 말로를 신화라는 모티프를 이용해 형상화한 것이니까 말이다. 아귀레는 세계 정복이라는 망상에 빠졌던 히틀러의 화신이라고 할까.

    영화는 단순한 프로파간다가 아니므로 정복자의 말로를 다룬다 해도 그것을 얼마나 미학적으로 완성도 있게 변형하느냐는 점이 중요하다. 베르초크는 독일 표현주의의 위대한 전통에 충실하게도 ‘아귀레, 신의 분노’를 과대망상적이고 편집광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대서사 신화로 만들어놓았다.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 자체가 마치 극중 원정대의 사투와 같았다는 후일담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이제 관객의 동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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