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2

2023.03.24

중국·러시아·이란, 反美 패권 연대 ‘추축국(Axis Powers)’ 형성하나

제2차 세계대전 일으킨 獨·伊·日 연상 행보… “미국에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03-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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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월 21일 정상회담 후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크렘린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월 21일 정상회담 후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크렘린궁]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이란의 거대한 연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서로의 고충을 보완하는 ‘반(反)패권 연대’일 것이다.”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저명한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1997년 출간한 저서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에서 탈냉전 이후 미국 패권을 가장 위협하는 시나리오로 제시한 내용이다.

    철권통치·미국 제재 공통점 지닌 3국

    중국·러시아·이란이 브레진스키의 26년 전 예측대로 힘을 합쳐 미국 등 서방에 대항하고 있다. 이들의 도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聯合國·Allied Powers)에 맞서 싸운 독일·이탈리아·일본이 맺은 추축국(樞軸國·Axis Powers) 연대를 연상케 한다. 독일·이탈리아·일본은 1940년 9월 27일 3국 군사동맹(Tripartite Pact)을 체결하고 어느 한 나라가 어떤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모든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이를 격퇴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최근 들어 중국·러시아·이란이 반미·반서방을 고리로 ‘새로운 폭정의 추축국(New Axis Of Tyrannies)’ 연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와 에너지 등 전방위적으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이들 3국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독재자가 무소불위 권력으로 나라를 철권통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3권을 장악한 사회주의 국가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국가주석 3연임을 확정하고 당·정·군을 모두 장악하며 명실공히 1인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옛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건국 후 지금까지 통합러시아당이 연방 상하원, 지방 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한 권위주의 국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00년 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대통령보다 실세인 총리를 역임한 것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에 성공한 후 성직자가 통치하는 신정(神政)체제 국가가 됐다. 1989년 초대 라흐바르(국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사망한 이후 후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지금까지 통치하고 있다. 임기가 종신인 라흐바르는 국가원수로서 정부 수반에 불과한 대통령보다 높은 지위에 있으며 국가의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 이들 3국에는 국민의 자유와 인권은 물론, 공정한 법과 민주적 제도 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 3국의 또 다른 공통점은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각종 제재 조치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에 대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의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또 서방국가들과 함께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의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아 중국에 각종 제재 조치를 내려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도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다. 핵개발을 추진하고 최근 히잡 착용 반대 시위를 무력 진압한 이란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들 3국은 ‘제국’을 꿈꾼다는 공통점도 있다. 시 주석은 중화제국을, 푸틴 대통령은 유라시아제국을, 하메네이는 이슬람제국을 각각 만들려는 야심을 보여왔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센터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들 3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과 서방 중심 패권 질서에 반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국제질서를 자국과 서방의 민주주의 세력 대 이들 3국의 권위주의 세력 간 대결로 보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중국과 이란 등이 러시아 편에 서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독재 진영이 대결하는 ‘신(新)냉전’ 양상으로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이들 3국은 반미 블록의 핵심 국가”라면서 “이들 3국이 ‘새로운 추축국(New Axis)’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군사, 중국은 경제로 이란 견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022년 7월 테헤란을 방문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국가 최고지도자와 대화하고 있다. [크렘린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2022년 7월 테헤란을 방문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국가 최고지도자와 대화하고 있다. [크렘린궁]

    실제로 이들 3국 정상은 정상회담을 통해 안보·경제 협력을 강화하면서 ‘동맹’처럼 행동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군사를, 중국은 경제를 중점 분야로 설정해 이란을 ‘3국 연대 체제’로 견인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이란 수도 테헤란을 방문해 하메네이와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과 서방의 압박에 맞서 긴밀한 관계를 맺자고 합의했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옛 소련권 이외 지역 가운데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이란이다. 이란은 푸틴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각종 무기를 소진한 러시아에 자폭 드론 샤헤드-136과 탄약, 포탄 등을 대거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시속 185㎞, 최대사거리 1000㎞인 샤헤드-136으로 우크라이나의 전력 시설 등 인프라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올봄 이란에 주력 전투기인 수호이(Su)-35 24대를 제공할 예정이다.

    4.5세대 전투기인 Su-35는 항속거리 3400㎞, 전투 반경 1600㎞, 최대속도 마하 2.35로, 공대공·공대지·공대함 등 각종 미사일과 레이저 유도 폭탄으로 무장하고 있다. 미국 F-15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제작했다는 Su-35는 기동력이 탁월해 공중전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미국은 2018년 중국에 Su-35 24대를 수출한 러시아를 제재하기도 했다. 이란이 외국 전투기를 수입하는 것은 1990년대 러시아로부터 옛 소련제 미그(MiG)-29 전투기 도입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이란은 미국의 강력한 제재 조치로 성능이 뛰어난 전투기를 수입할 수 없었다. 이란 공군의 주력기는 1979년 이슬람혁명 전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F-14다. 하지만 80대나 보유한 F-14는 미국에서 부품은 물론, 유지·보수 기술도 이전해올 수 없어 사실상 ‘고물’이나 마찬가지다.

    이란이 Su-35를 보유하면 공군력이 크게 증강돼 중동지역 군사력 균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러시아는 이란 부셰르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1호기에 이어 2호기와 3호기도 건설하고 있다. 이들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봉은 러시아에서 재처리된다.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과 핵협상을 중단하고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이란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2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과 함께 중국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2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과 함께 중국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중국도 이란을 사실상 동맹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시 주석은 2월 14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외교·군사·경제 등 전방위적인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2021년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이 협정에 따르면 중국은 이란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받고, 이란은 중국으로부터 금융, 통신, 항만, 철도를 비롯한 각 분야에 걸쳐 25년간 4000억 달러(약 523조 원) 규모의 투자를 받기로 했다. 중국은 이란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수출 금지 조치를 받고 있는 이란으로부터 거의 유일하게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다. 이란은 지난해 12월 중국에 역대 최대치인 하루 평균 120만 배럴을 수출하는 등 제재를 회피할 수 있는 위장 배송 시스템을 통해 중국에 석유를 판매하고 있다.

    오만만에서 3국 연합 군사훈련

    중국과 러시아는 그동안 공동전선을 구축해 미국과 서방에 맞서왔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40차례나 정상회담을 갖는 등 밀월관계 이상의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을 계기로 가진 정상회담에서 “양국 우정은 끝이 없다”고 선언한 바도 있다. 시 주석은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러시아를 국빈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특히 시 주석이 국가주석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첫 해외 방문지로 러시아를 선택해 푸틴 대통령을 만난 것은 미국의 압박에 맞서는 ‘반미 전선’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의 뒷배 역할도 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1년간 러시아 원유와 가스를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다. 양국 간 교역도 지난해 전년 대비 34.3%나 급증한 1900억 달러(약 248조4000억 원)에 달하는 등 확대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신호”라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은 ‘성숙하고 강인한 중·러 관계’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의 포괄적 전략적 협력 관계는 태산처럼 안정적”이라면서 “양국 정상의 전략적 지침에 따라 새로운 시대의 중국과 러시아의 포괄적 전략적 협력 관계는 계속해서 더욱 높은 수준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3국은 3월 15일부터 19일까지 닷새간 오만만에서 구축함 등을 동원해 연합 군사훈련인 ‘해상 안전벨트-2023’까지 실시했다. 이들 3국의 연합 군사훈련은 2019년과 2022년에 이어 3번째다. 이란은 지난해 중국과 러시아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항해 출범한 다자간 안보 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에 정식 회원국으로 참여했다. 이런 여러 상황을 종합할 때 이들 3국은 안보·경제 등에서 협력을 더욱 강화해 ‘21세기판 추축국’ 연대를 출범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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