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와 드럼, 단 2인조로 구성됐음에도 여느 풀밴드 못지않은 사운드로 세상을 놀라게 한 팀이 있다. 2014년 데뷔한 영국 밴드 ‘로열 블러드’다. 그들의 데뷔 앨범은 영국 음반상 ‘머큐리 프라이즈’에 이름을 올린 걸 시작으로 2015년 2월 ‘브릿 어워드’에서는 신인, 최우수앨범, 최우수그룹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콜드플레이와 앨트 제이(Alt-J)를 누르고 최우수그룹상을 받았다. 영국에서 1위, 미국을 비롯한 12개국에서 톱20에 오를 만큼 대중적인 사랑도 얻었다. 이 앨범은 최근 3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데뷔 앨범이기도 하다.
마치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듯한 이 행보의 절정은 2015년 레딩 페스티벌이었다. 이제 한 장의 앨범을 냈으며, 그나마도 반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밴드가 메인 스테이지에 선 것이다. 전년도 페스티벌에서 낮시간에 공연했던 걸 생각하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라 할 수밖에 없다.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 EDM(Electronic Dance Music)과 힙합이 지배하는 현 음악계에서 로열 블러드는 2010년대에 데뷔한 팀 가운데 록 본령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가진 채 중원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밴드와도 같았다.
그들의 두 번째 앨범 ‘How Did We Get So Dark?’는 데뷔작의 놀라움을 이어간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녹음한 이 앨범은 확실히 로열 블러드의 세계를 확장했다고 할 만하다. 지난 앨범이 오직 베이스와 드럼만으로 들어찬 광폭하고 황홀한 세계였다면, 새 앨범에서 그들은 부분적으로 다른 요소들을 초대한다. 멤버 마이크 커는 7세 때부터 연주하기 시작한 키보드와 특수효과를 사용해 곡에 풍성함을 더한다. 그리고 지난 앨범에서는 들을 수 없던 보컬 하모니가 쌓인다. 추측건대 더욱 쉽고 강렬한 ‘떼창’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활동 무대가 넓어질수록 가사를 몰라도 관객이 따라 부를 수 있는 허밍 멜로디가 라이브의 필살기 가운데 하나가 되니 말이다.
록의 시대가 끝났다고 개탄하고 있을 이들에게 이 앨범은 충분한 만족과 데뷔 앨범 이상의 호기심을 안겨준다. ‘도대체 어떻게 베이스로 이런 소리를?’이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더욱 업그레이드된 장비와 노하우는 그 질문의 깊이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 데뷔 앨범에 비해 벤 대처의 드럼은 훨씬 정교하고 화려해졌다. 그루브의 중심에는 확실한 쐐기를 박는다. 이렇게 드럼이 다져놓은 기초 공사 터 위에서 커는 그야말로 뛰어논다. 한 번만 들어도 기억할 수 있는 리프들이 곳곳에 포진하는 동시에 연주하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장식적 요소가 꽉꽉 들어차 있다. 전체적인 사운드 다이내믹스도 금기를 부술 기세로 넓어지고 집중된다. 담겨 있는 열한 곡이 다 그렇다.
로열 블러드의 데뷔 앨범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 이들의 라이브가 보고 싶었다.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이 괴물 신인의 무대를 눈으로 보고 싶었다. 일본 공연이라도 하면 항공권을 끊어야지 마음먹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었다. ‘How Did We Get So Dark?’를 듣는 지금, 그 마음이 다시 스멀스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마침 일본에서 8월 19~20일 열리는 록페스티벌 서머소닉에 그들이 참가한다 하니 더욱 그렇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우듯, 록베이스의 개념을 바꾸고 선입견을 파괴하며 혁신한 그들의 라이브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좋은 공연 하나가 신을 바꾸는 일은 음악 역사에서 비일비재하다. 로열 블러드가 한국에 오는 날, 미래 기타리스트를 꿈꾸던 로큰롤 키드들이 그날로 베이스를 잡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넘쳐나는 로열 블러드 카피 밴드들이 고백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