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책의 성장이 매우 지지부진한데도 2012년 트렌드를 예상하는 책들은 일제히 종이책의 종말 혹은 위기를 언급했다. 종이책은 과연 사라질까. 결단코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책의 우주’(열린책들)에서 “책은 수저나 망치나 바퀴, 또는 가위처럼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그런 물건”이라고 전제하면서 “책은 자신의 효율성을 이미 증명했고, 같은 용도의 물건으로서 책보다 나은 것을 만들어내기는 힘들다. 어쩌면 책을 이루는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변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전자책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은 책 분야가 적지 않다. 웹의 등장으로 사전처럼 잘게 쪼개진 정보를 다룬 책이 위기를 맞고,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의 등장으로 표나 그래프가 중심인 자기계발서와 외국어 학습서가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종이책 자체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이제 웹이나 앱과 차별화된 장점을 찾아 나섰다. 이렇게 책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재매개화(remediation)라고 한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부터 바꾸라고 주장해왔다. 이 이데올로기는 긍정심리학과 결합하면서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때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환자의 경험을 활용한 책을 주로 펴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기계발서는 지배계급의 현실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중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위기에 직면하자 일부 저자는 젊은 시절 겪었던 서투른 연애나 섹스, 이혼, 파산, 해고 같은 처절한 자기경험을 털어놓으며 인생의 지혜를 밝히고자 했다. 하지만 사생활을 ‘까발리는’ 것은 역효과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경험을 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것이 ‘소설처럼’ 쓰는 것이다.
‘소셜 애니멀’(데이비드 브룩스, 흐름출판)은 인간의 삶을 “영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은 상호침투”로 규정하는 매우 탁월한 심리학 개론서다. 이 책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조상과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런 관계가 사람을 창조한다”고 밝힌다. 달리 말하면 “사람의 마음은 오로지 네트워크, 즉 인간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 핵심 주제다. 브룩스는 해럴드와 에리카라는 남녀의 일생을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수많은 심리학 이론을 제시한다. 책은 해럴드가 탄생하는 데서 시작해 세상을 뜨는 것에서 끝난다. 독자는 심리학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담긴 이 책을 소설처럼 읽으며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 부문 대상 수상작인 ‘토요일의 심리 클럽’(김서윤, 창비)은 토요일마다 벌어지는 ‘심리 실험반’에 참여한 다섯 명의 중학생이 최이고 선생님과 함께 다양한 심리실험을 직접 체험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심리학을 이해하는 과정을 소설처럼 전개한다. ‘비합리성’ ‘기억과 공부’ ‘인간관계’ ‘사회’ ‘감각’ ‘진화’를 소재로 총 6장으로 구성했다. 각 장의 차례에는 다양한 심리실험과 이론 이름이 등장하지만 책은 한 권의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책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이 커지면서 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으로 스토리텔링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만화,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세대는 책의 유익함과 재미뿐 아니라 스릴과 서스펜스까지 추구하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모든 책이 스토리텔링을 추구하는 세상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책 편집자는 존재론적 사유를 통해 진정한 책을 만드는 방법론을 찾아내고 있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하지만 전자책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은 책 분야가 적지 않다. 웹의 등장으로 사전처럼 잘게 쪼개진 정보를 다룬 책이 위기를 맞고,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의 등장으로 표나 그래프가 중심인 자기계발서와 외국어 학습서가 힘들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종이책 자체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책은 이제 웹이나 앱과 차별화된 장점을 찾아 나섰다. 이렇게 책이 스스로 변화하는 것을 재매개화(remediation)라고 한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부터 바꾸라고 주장해왔다. 이 이데올로기는 긍정심리학과 결합하면서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때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환자의 경험을 활용한 책을 주로 펴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기계발서는 지배계급의 현실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대중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위기에 직면하자 일부 저자는 젊은 시절 겪었던 서투른 연애나 섹스, 이혼, 파산, 해고 같은 처절한 자기경험을 털어놓으며 인생의 지혜를 밝히고자 했다. 하지만 사생활을 ‘까발리는’ 것은 역효과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경험을 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것이 ‘소설처럼’ 쓰는 것이다.
‘소셜 애니멀’(데이비드 브룩스, 흐름출판)은 인간의 삶을 “영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은 상호침투”로 규정하는 매우 탁월한 심리학 개론서다. 이 책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조상과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런 관계가 사람을 창조한다”고 밝힌다. 달리 말하면 “사람의 마음은 오로지 네트워크, 즉 인간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 핵심 주제다. 브룩스는 해럴드와 에리카라는 남녀의 일생을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수많은 심리학 이론을 제시한다. 책은 해럴드가 탄생하는 데서 시작해 세상을 뜨는 것에서 끝난다. 독자는 심리학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담긴 이 책을 소설처럼 읽으며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교양 부문 대상 수상작인 ‘토요일의 심리 클럽’(김서윤, 창비)은 토요일마다 벌어지는 ‘심리 실험반’에 참여한 다섯 명의 중학생이 최이고 선생님과 함께 다양한 심리실험을 직접 체험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심리학을 이해하는 과정을 소설처럼 전개한다. ‘비합리성’ ‘기억과 공부’ ‘인간관계’ ‘사회’ ‘감각’ ‘진화’를 소재로 총 6장으로 구성했다. 각 장의 차례에는 다양한 심리실험과 이론 이름이 등장하지만 책은 한 권의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책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이 커지면서 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으로 스토리텔링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만화,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세대는 책의 유익함과 재미뿐 아니라 스릴과 서스펜스까지 추구하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모든 책이 스토리텔링을 추구하는 세상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책 편집자는 존재론적 사유를 통해 진정한 책을 만드는 방법론을 찾아내고 있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