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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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비 냄새와 자유로움

아트서커스 ‘레인’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1-07-04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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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그 비 냄새와 자유로움
    “빗속에서 놀아본 적 있나요?”

    아트서커스 ‘레인’(다니엘 핀지 파스카 연출)의 첫 부분에서 해설을 맡은 배우가 관객에게 묻는 말이다. 이 작품의 주제가 자유롭게 뛰놀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그중에서도 ‘비’와 관계된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대에 주야장천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다. 비가 내리는 설정은 마지막 10분가량의 장면과 커튼콜 부분뿐이다. 그렇지만 ‘레인’이라는 제목이 상징하듯, 극은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물을 벗 삼아 뛰놀던 동심의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아트서커스는 위험천만한 기교나 동물 쇼 등 볼거리에만 치중한 기존의 서커스와 다르다. 연극, 뮤지컬, 무용,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흡수해 미학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둔 예술이다. 그렇지만 줄거리 짜임새가 돋보이는 연극이나 뮤지컬과도 다르다. 이야기가 느슨하게 이어지긴 하지만, 줄거리보다는 작품을 이끌어가는 중심 주제와 이를 표현하는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서크 엘루아즈’ 극단의 ‘레인’은 시적 대사, 연주, 노래, 연기, 그리고 서커스가 조화를 이루며 관객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태양의 서커스’ 극단의 작품보다 스케일이 크거나 도발적 이미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한 장면이 이끌어가는 호흡도 길지 않다. 그러나 소박하고 진정성 있는 아날로그 정서로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어릴 때 골목에서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던 놀이를 떠올리게 하고, 장난스럽고 익살스러운 소극(笑劇)으로 미소 짓게 한다. 물론 봉 돌리기, 평균대, 공중그네, 공중 곡예를 비롯한 난이도 높은 기술을 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줄거리를 찾고자 애쓰게 마련인 관객을 고려해 대사를 곁들이기도 한다. 작품 배경은 서커스 리허설 중인 극단으로 설정돼 있는데, 출연자 가운데 한 명이 작품 줄거리를 알 수 없으니 설명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자 또 다른 배우가 나와서 잠재의식을 탐색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는 아트서커스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기도 하다.



    그때 그 비 냄새와 자유로움

    아트서커스 ‘레인’은 연극, 뮤지컬, 무용,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미학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마치 고전동화를 읽을 때처럼 상반되는 감성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아름답지만 음울하고, 익살스럽지만 슬프며, 따뜻하지만 외로운 느낌을 준다. 이는 의식뿐 아니라 그 아래 잠재된 무의식을 들춰내 이미지화하기 때문이다. 이때 관객은 억압하고 있던 감성을 회복하면서 기존 삶에 대해 반추하고, 감수성과 생명력을 되찾는 기회를 얻는다.

    서커스 특유의 거리음악뿐 아니라, 3박자의 춤곡, 보사노바와 살사 리듬의 재즈, 민속적인 현악기곡, 푸가 형식의 피아노곡, 다양한 창법의 노래 등이 각 장면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무채색 이미지에 포인트가 되는 붉은색 소품을 대조시키는 등 세련되고 상징적인 무대도 보여준다.

    많지 않은 대사가 시적 여운을 남긴다. “항상 그해의 첫 폭우를 기억해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눈시울을 적시는 이유는 그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들 때문일 터. ‘레인’은 그때 그 시절의 비 냄새와 자유로움을 잠깐이나마 떠올리게 하는 즐거움을 준다. 7월 10일까지, LG아트센터, 문의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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