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동주택에 대한 수식어로 ‘친환경’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때는 일명 브랜드 아파트붐이 일어난 2000년대 초반이다. 각 건설사는 자사 아파트의 브랜드 차별화를 위해 대리석 등 최고급 마감재를 쓰면서 입주민의 건강 향상을 목적으로 기능성 건축 자재를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입주 초기부터 울창한 녹지를 조성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친환경 자재 기준 객관적 평가 필요
이후 10년간 고급 아파트를 짓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진정한 친환경 주택 건설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태다. 공동주택의 실내 공기 질을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는 한편, 건축 자재의 유해성을 규제하는 각종 법과 제도를 정비해왔음에도 실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성 질환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아토피, 비염, 천식 등 3개 환경성 질환 진료자 수는 2003년 570만 명에서 2008년 710만 명으로 5년간 약 25% 증가했다. 이 기간 중 진료비는 4531억 원에서 6343억 원으로 40%나 증가했다(그래프 참조). 그 결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증가한 것은 물론이고, 국가의 건강보험 재정도 악화됐다.
온 국민이 ‘새집증후군’에 민감했던 2004년 이후 지금까지 많은 제도를 정비했으며, 각 건설사가 자사의 명예를 걸고 친환경 주택 경쟁을 벌였음에도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환경성 질환 증가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가정할 수 있다. 주택의 실내 공기 질이 국가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더라도 특별히 환경성 질환에 취약한 특정인이 있을 수 있고, 국가가 기준을 정해 관리하지 않는 다른 오염물질이 존재할 수 있으며, 아토피가 원래부터 실내 공기 질과는 무관하게 발생하는 질환일 수 있다는 점이다.
4월경 한국주택토지공사(이하 LH공사)는 임대주택 입주자의 지원을 받아 식물 등 자연 소재로 만든 벽지 및 바닥재를 시공한 후 실내 유해물질 농도를 분석했다. 아울러 아토피 피부염(이하 아토피) 개선 상황을 6개월 동안 확인하는 ‘청정주택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심한 아토피 환자인 경우 실내 환경 개선이 환경성 질환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프로젝트에서는 폴리염화비닐(PVC) 자재가 아토피 발병에 영향을 미치며, 실재 공기 질이 국가 기준을 만족할 때도 아토피 환자가 발생할 수 있지만 포름알데히드 외 여타 유해물질 농도 변화와는 큰 유의성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결과는 20여 가구가 임상시험에 참가해 얻은 것으로 시험집단 수가 적긴 하지만, 그동안 국내 친환경 주택의 근간이 된 각종 법과 제도에 몇 가지 개선점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먼저 유해물질의 사용 제한 기준을 방출량이 아닌 함유량으로 정하도록 개념을 바꿔야 한다. 현재 네잎클로버 표시로 등급을 표시하는 친환경 인증 자재 중 대부분은 유해물질 함유량이 상당한데도 방출량이 관리등급의 기준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밀폐된 공간에서는 미량이라도 장기간 방출되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설령 자재 단가가 높아지고 생산성이 떨어진다 해도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많은 중소업체가 여러 종류의 친환경 자재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를 지원하는 국가 체계를 완비하지 못한 상황이다. 친환경 자재 생산이 활성화하려면 기술력 있는 생산업체가 발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공공기관이 친환경 자재 기준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
또한 사업 규모에 관계없이 수요자가 필요에 따라 친환경 자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2010년 12월 1일 시행한 ‘청정건강 주택 건설 기준’은 그동안 운용해온 실내 공기 질 관련 법제도에 친환경 자재, 환기, 시공 등의 기준을 종합적으로 정비한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1000가구 이상의 신축 주택단지에만 적용하는 탓에 이보다 규모가 작은 주택단지는 제외될 수 있다. 900가구 규모 단지의 입주민은 청정건강 주택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1000가구 규모 단지만 국가 기준으로 적용하는 혜택을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감재 수준 떨어지는 임대주택 예산 지원을
마감재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임대주택에 대해선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의 임대료 산정 제도에서는 친환경 자재 사용에 따른 공사비 상승분을 입주자의 임대료로 전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사업 시행자가 부담 없이 청정 주거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예산 지원을 활성화해야 한다. 매년 적정 예산을 편성해 건강 주거 인프라를 늘려갈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투입 자재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최저가 입찰제도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공공주택의 평균 낙찰률은 70% 정도다. 건설사의 원가 및 시공관리 기술에 의지해 거품을 줄이려는 제도의 본래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정상가격을 받아야 하는 친환경 자재를 건설사 차원에서 70%로 책정하고, 하도급업체가 구매할 때 또다시 할인해 반값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입주자의 건강과 직결된 자재는 품질에 상응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일본은 쓰나미로 인한 원전 사고로 심각한 방사능 누출이 발생했다. 지리적으로 상당히 떨어진 한국에서도 방사능 물질 유입을 우려한 국민의 심리적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방사능 누출에는 난리법석이면서 정작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토피는 그리 심각하지 않게 생각한다. 실내 유해물질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인지 실내 환경 오염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분류한 환경성 질환은 일반적인 호흡기, 순환기 질환 외에도 현대인의 주요 사망 원인인 암, 심혈관 질환까지 포함한다. 2011년 1월 미국 미네소타 주는 유해물질 목록에 비스페놀A, 포름알데히드, 부틸벤질프탈레이트(BBP) 등 유해 프탈레이트 3종을 모두 올려놓았다. 이들 유해물질은 태아 및 유아의 발달장애, 암 발병, 내분비계 및 호르몬 시스템 교란, 신경계 및 면역계 손상 같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유해물질이야말로 방사능만큼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가 2012년부터 최소한 유해 프탈레이트 3종은 마감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공산품 유해물질 안전관리 규정’을 개정한 것은 그나마 잘 한 일이다. 정부가 청정주택을 만들려는 친환경 정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길 기대해본다.
친환경 자재 기준 객관적 평가 필요
이후 10년간 고급 아파트를 짓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하지만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진정한 친환경 주택 건설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상태다. 공동주택의 실내 공기 질을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는 한편, 건축 자재의 유해성을 규제하는 각종 법과 제도를 정비해왔음에도 실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성 질환은 지속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아토피, 비염, 천식 등 3개 환경성 질환 진료자 수는 2003년 570만 명에서 2008년 710만 명으로 5년간 약 25% 증가했다. 이 기간 중 진료비는 4531억 원에서 6343억 원으로 40%나 증가했다(그래프 참조). 그 결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증가한 것은 물론이고, 국가의 건강보험 재정도 악화됐다.
온 국민이 ‘새집증후군’에 민감했던 2004년 이후 지금까지 많은 제도를 정비했으며, 각 건설사가 자사의 명예를 걸고 친환경 주택 경쟁을 벌였음에도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환경성 질환 증가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가정할 수 있다. 주택의 실내 공기 질이 국가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더라도 특별히 환경성 질환에 취약한 특정인이 있을 수 있고, 국가가 기준을 정해 관리하지 않는 다른 오염물질이 존재할 수 있으며, 아토피가 원래부터 실내 공기 질과는 무관하게 발생하는 질환일 수 있다는 점이다.
4월경 한국주택토지공사(이하 LH공사)는 임대주택 입주자의 지원을 받아 식물 등 자연 소재로 만든 벽지 및 바닥재를 시공한 후 실내 유해물질 농도를 분석했다. 아울러 아토피 피부염(이하 아토피) 개선 상황을 6개월 동안 확인하는 ‘청정주택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심한 아토피 환자인 경우 실내 환경 개선이 환경성 질환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프로젝트에서는 폴리염화비닐(PVC) 자재가 아토피 발병에 영향을 미치며, 실재 공기 질이 국가 기준을 만족할 때도 아토피 환자가 발생할 수 있지만 포름알데히드 외 여타 유해물질 농도 변화와는 큰 유의성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결과는 20여 가구가 임상시험에 참가해 얻은 것으로 시험집단 수가 적긴 하지만, 그동안 국내 친환경 주택의 근간이 된 각종 법과 제도에 몇 가지 개선점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먼저 유해물질의 사용 제한 기준을 방출량이 아닌 함유량으로 정하도록 개념을 바꿔야 한다. 현재 네잎클로버 표시로 등급을 표시하는 친환경 인증 자재 중 대부분은 유해물질 함유량이 상당한데도 방출량이 관리등급의 기준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밀폐된 공간에서는 미량이라도 장기간 방출되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설령 자재 단가가 높아지고 생산성이 떨어진다 해도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많은 중소업체가 여러 종류의 친환경 자재를 개발하고 있지만, 이를 지원하는 국가 체계를 완비하지 못한 상황이다. 친환경 자재 생산이 활성화하려면 기술력 있는 생산업체가 발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공공기관이 친환경 자재 기준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
또한 사업 규모에 관계없이 수요자가 필요에 따라 친환경 자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2010년 12월 1일 시행한 ‘청정건강 주택 건설 기준’은 그동안 운용해온 실내 공기 질 관련 법제도에 친환경 자재, 환기, 시공 등의 기준을 종합적으로 정비한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1000가구 이상의 신축 주택단지에만 적용하는 탓에 이보다 규모가 작은 주택단지는 제외될 수 있다. 900가구 규모 단지의 입주민은 청정건강 주택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1000가구 규모 단지만 국가 기준으로 적용하는 혜택을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감재 수준 떨어지는 임대주택 예산 지원을
마감재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임대주택에 대해선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의 임대료 산정 제도에서는 친환경 자재 사용에 따른 공사비 상승분을 입주자의 임대료로 전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사업 시행자가 부담 없이 청정 주거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예산 지원을 활성화해야 한다. 매년 적정 예산을 편성해 건강 주거 인프라를 늘려갈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투입 자재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최저가 입찰제도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공공주택의 평균 낙찰률은 70% 정도다. 건설사의 원가 및 시공관리 기술에 의지해 거품을 줄이려는 제도의 본래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정상가격을 받아야 하는 친환경 자재를 건설사 차원에서 70%로 책정하고, 하도급업체가 구매할 때 또다시 할인해 반값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입주자의 건강과 직결된 자재는 품질에 상응하는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일본은 쓰나미로 인한 원전 사고로 심각한 방사능 누출이 발생했다. 지리적으로 상당히 떨어진 한국에서도 방사능 물질 유입을 우려한 국민의 심리적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방사능 누출에는 난리법석이면서 정작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토피는 그리 심각하지 않게 생각한다. 실내 유해물질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인지 실내 환경 오염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분류한 환경성 질환은 일반적인 호흡기, 순환기 질환 외에도 현대인의 주요 사망 원인인 암, 심혈관 질환까지 포함한다. 2011년 1월 미국 미네소타 주는 유해물질 목록에 비스페놀A, 포름알데히드, 부틸벤질프탈레이트(BBP) 등 유해 프탈레이트 3종을 모두 올려놓았다. 이들 유해물질은 태아 및 유아의 발달장애, 암 발병, 내분비계 및 호르몬 시스템 교란, 신경계 및 면역계 손상 같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유해물질이야말로 방사능만큼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가 2012년부터 최소한 유해 프탈레이트 3종은 마감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공산품 유해물질 안전관리 규정’을 개정한 것은 그나마 잘 한 일이다. 정부가 청정주택을 만들려는 친환경 정책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