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출간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가 우리 출판 역사상 최단기간인 11개월 만에 100만 부를 돌파했다. 이 책 전에 인문서가 밀리언셀러에 오른 것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1980년대의 ‘해방전후사의 인식’(송건호 외/ 한길사)과 ‘철학에세이’(조성오/ 동녘), 1990년대의 ‘반갑다 논리야’ (위기철/ 사계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창비),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 들녘) 등 다섯 종에 불과하다.
1980년대는 인문사회과학의 시대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지식인과 운동권 학생들은 우리 사회체제를 근본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분단이라는 체제가 불러온 주요 모순과 기본모순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을 벌였다. 분단과 통일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갖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을 타고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사회변혁을 철학적으로 논리화한 ‘철학에세이’는 1980년대 내내 인문서 분야 부동의 1위였다. 이 책은 당시 책을 사전 검열하던 문화공보부에서 초판만 판매한다는 조건으로 납본 필증을 내줌에 따라 음성적으로 팔려나갔다. 그래서 베스트셀러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운동권 학생들의 의식화 필수 교재가 되면서 낱권의 인문서로는 최초로 밀리언셀러가 됐다. 처음에 ‘편집부 구성’으로 출발한 이 책은 6월 항쟁으로 민주화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에야 실제 저자의 이름(조성오)을 밝힐 수 있었다.
‘반갑다 논리야’는 처음에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읽을 수 있는 논리학습용 책으로 출간됐다. 그러나 1994년 대학입시에 수학능력시험과 논술시험이 도입되면서 갑자기 논술대비용 책으로 주목받아 300만 부 가까이 팔렸다.
여행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절묘한 시기에 출간된 행운의 책이다. ‘나’에 대한 표현 욕구가 고조되고 자가용이 700만 대를 넘어서면서 가족과 연인 단위의 여행이 증가했으며,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민족주의적 정서가 강하게 표출되는 시기에 출간된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신드롬 현상을 일으키며 250만 부 판매됐다.
국역본이 430권이나 되는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을 한 권으로 축약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윈도95가 출시된 1995년 이후 세계화와 정보화의 거센 물결에 두려움을 느낀 대중이 잠시 힘 있는 ‘영웅’을 찾던 분위기에 편승해 밀리언셀러가 됐다. 이 책은 드라마 ‘용의 눈물’의 성공과도 맞물렸다.
자기계발서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2000년 이후에는 한동안 밀리언셀러가 실종됐는데,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가 등장해 돌풍을 일으켰다. 이 책의 상업적 성공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동아시아에 국한되던 1997년 외환위기와 달리 미국에서 시작해 한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로써 순간적인 위기만 극복하면 다시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기대감은 완전히 꺾여버렸다.
아직 미래 설계도를 그리지 못했음에도 세상의 모든 모순을 뒤집어쓰다시피 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세상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 불황은 늘 여성에게 더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자신과 사회의 미래가 동시에 불안해진 젊은 세대 및 여성에게는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했다.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를 구입한 사람 가운데 20대가 37%, 여성이 55%라는 점은 ‘사회적 약자’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더욱 열망한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등 다수.
1980년대는 인문사회과학의 시대였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지식인과 운동권 학생들은 우리 사회체제를 근본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분단이라는 체제가 불러온 주요 모순과 기본모순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을 벌였다. 분단과 통일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갖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을 타고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사회변혁을 철학적으로 논리화한 ‘철학에세이’는 1980년대 내내 인문서 분야 부동의 1위였다. 이 책은 당시 책을 사전 검열하던 문화공보부에서 초판만 판매한다는 조건으로 납본 필증을 내줌에 따라 음성적으로 팔려나갔다. 그래서 베스트셀러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운동권 학생들의 의식화 필수 교재가 되면서 낱권의 인문서로는 최초로 밀리언셀러가 됐다. 처음에 ‘편집부 구성’으로 출발한 이 책은 6월 항쟁으로 민주화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에야 실제 저자의 이름(조성오)을 밝힐 수 있었다.
‘반갑다 논리야’는 처음에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읽을 수 있는 논리학습용 책으로 출간됐다. 그러나 1994년 대학입시에 수학능력시험과 논술시험이 도입되면서 갑자기 논술대비용 책으로 주목받아 300만 부 가까이 팔렸다.
여행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절묘한 시기에 출간된 행운의 책이다. ‘나’에 대한 표현 욕구가 고조되고 자가용이 700만 대를 넘어서면서 가족과 연인 단위의 여행이 증가했으며,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민족주의적 정서가 강하게 표출되는 시기에 출간된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신드롬 현상을 일으키며 250만 부 판매됐다.
국역본이 430권이나 되는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을 한 권으로 축약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윈도95가 출시된 1995년 이후 세계화와 정보화의 거센 물결에 두려움을 느낀 대중이 잠시 힘 있는 ‘영웅’을 찾던 분위기에 편승해 밀리언셀러가 됐다. 이 책은 드라마 ‘용의 눈물’의 성공과도 맞물렸다.
자기계발서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2000년 이후에는 한동안 밀리언셀러가 실종됐는데,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가 등장해 돌풍을 일으켰다. 이 책의 상업적 성공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동아시아에 국한되던 1997년 외환위기와 달리 미국에서 시작해 한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로써 순간적인 위기만 극복하면 다시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기대감은 완전히 꺾여버렸다.
아직 미래 설계도를 그리지 못했음에도 세상의 모든 모순을 뒤집어쓰다시피 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세상은 전혀 공정하지 않다. 불황은 늘 여성에게 더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 자신과 사회의 미래가 동시에 불안해진 젊은 세대 및 여성에게는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했다.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를 구입한 사람 가운데 20대가 37%, 여성이 55%라는 점은 ‘사회적 약자’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더욱 열망한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