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원’의 신화도 ‘안전대국’의 전설도 해일에 휩쓸려 사라졌다. ‘준비된 나라’의 이미지도 원자로의 격납용기처럼 녹아내렸다. 전 일본이 망연자실했고, 전 세계가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최악의 시나리오’성 보도가 신문 지면과 TV 화면을 난타하는 가운데 ‘주간동아’ 779호의 커버스토리는 ‘일본이 이럴진대 우리는 어떨까?’ 하는 자기 성찰적 의문을 제기하는 차분함을 과시했다.
경쟁지들이 아직 동일본 대지진에 관한 종합분석 기획의 윤곽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을 시점이었는데도 이웃나라의 참사로 우리 마음속에 똬리를 틀기 시작한 불안을 잘 대변했으며 ‘준비 안 된 (우리)나라’에 경각심을 요구했다. 대책 부재부터 대지진 발생 가능성까지 불안요소 하나하나에 대한 치밀한 지적과 순발력이 돋보인 기사였다. 티가 없지는 않았다. 일본과 다른 한국의 가압경수로형 원자로의 냉각수가 어떻게 ‘자연 순환’된다는 것인지 여러 번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르포 기사에 나오는 일본인명 ‘간노 게사(管野子)’의 우리말 표기도 바른 것 같지 않았다.
스페셜 ‘新고부관계’는 만혼이 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고부갈등 양상을 알기 쉽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다만 사회 풍속도가 변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으레 제시하는 “(대화를 통해) 바로바로 풀어라”든지 “다양한 취미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라”는 등의 고식(姑息)적인 충고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편이 더 ‘쿨’하지 않았을까? ‘쿨한 신세대 고부’에게 한 세대 전의 해법을 설파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779호는 유달리 기사 꼭지 수가 많아 보이는데 연재와 에세이를 포함해 고정코너가 많이 늘어난 때문으로 보인다.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산만해 보일 수도 있으므로 균형감 있는 편집방식을 궁리해야 할 것 같다. 커버스토리와 스페셜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사가 1~2쪽인데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기사도 있었다. 소설가 김진명과의 인터뷰는 진행 중간에 갑자기 끝난 듯한 느낌을 줬다. 긴 호흡과 느긋한 마음자세로 한 주의 사건을 되돌아보려 했던 독자였다면 779호를 넘기면서 숨이 가팔라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경쟁지들이 아직 동일본 대지진에 관한 종합분석 기획의 윤곽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을 시점이었는데도 이웃나라의 참사로 우리 마음속에 똬리를 틀기 시작한 불안을 잘 대변했으며 ‘준비 안 된 (우리)나라’에 경각심을 요구했다. 대책 부재부터 대지진 발생 가능성까지 불안요소 하나하나에 대한 치밀한 지적과 순발력이 돋보인 기사였다. 티가 없지는 않았다. 일본과 다른 한국의 가압경수로형 원자로의 냉각수가 어떻게 ‘자연 순환’된다는 것인지 여러 번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르포 기사에 나오는 일본인명 ‘간노 게사(管野子)’의 우리말 표기도 바른 것 같지 않았다.
스페셜 ‘新고부관계’는 만혼이 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고부갈등 양상을 알기 쉽고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다만 사회 풍속도가 변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 으레 제시하는 “(대화를 통해) 바로바로 풀어라”든지 “다양한 취미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라”는 등의 고식(姑息)적인 충고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편이 더 ‘쿨’하지 않았을까? ‘쿨한 신세대 고부’에게 한 세대 전의 해법을 설파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779호는 유달리 기사 꼭지 수가 많아 보이는데 연재와 에세이를 포함해 고정코너가 많이 늘어난 때문으로 보인다.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산만해 보일 수도 있으므로 균형감 있는 편집방식을 궁리해야 할 것 같다. 커버스토리와 스페셜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사가 1~2쪽인데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기사도 있었다. 소설가 김진명과의 인터뷰는 진행 중간에 갑자기 끝난 듯한 느낌을 줬다. 긴 호흡과 느긋한 마음자세로 한 주의 사건을 되돌아보려 했던 독자였다면 779호를 넘기면서 숨이 가팔라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