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정우열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526쪽/ 2만3000원
정성일은 평론가를 넘어선 영화평론가다. 1990년대 중반 영화잡지 ‘키노(KINO)’의 수장으로 영화 비평의 흐름을 주도했고, ‘정은임의 영화음악’에서 들려주던 그의 이야기는 새벽녘 영화 강의로 통했다. 그런 그가 최근 처음으로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와 ‘필사의 탐독’. 전자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고, 후자는 2000년대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 10여 편에 대한 평론이다. 책을 논하기에 앞서 ‘첫’이라는 단어에 의문이 든다. 28년간 영화 비평을 써왔는데 저서가 없었던 것은 왜일까. 서문에 쓴 답변에는 염결함을 넘어선 결벽이 묻어난다.
“책이란 일종의 이정표와 같다. 그래서 그 책을 낼 때 그 사람에게 무언가 정지를 요구하게 된다. 끔찍한 일이다. 생각이 어딘가에 멈추는 것은 죽음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책을 내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그만 약속을 한 것이다. 영화를 찍게 되면 책을 내겠다고 말해버렸는데, 지난겨울 나는 ‘카페 느와르’라는 영화를 찍은 것이다.”
책에는 그간 써온 글 40여 편이 담겼다. 영화에 대한 추억, 영화 비평, 비평 담론 등 영화에 대한 사유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내용보다 감동을 주는 부분은 행간마다 읽히는 그의 열정. 영화에 대한 그의 곡진한 사랑은 열 살 무렵부터 시작됐다.
어린 시절 정성일은 ‘조금 이상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고 두 달 내리 낙타만 그렸고, 호금전의 ‘용문객잔’을 본 뒤 일주일간 극장에서 살았다. 하지만 당시 영화는 지금처럼 도처에 널린 대중문화가 아니었다. TV 속 주말의 명화와 간간이 극장에 걸리는 작품으로 영화에 대한 허기를 달랬다. 그런 와중 고교 1학년 때 만난 프랑스문화원은 그에게 오아시스와 같았다.
“프랑스문화원에서 나는 장 르누아르, 1930년대 시적 리얼리즘, 로베르 브레송, 자크 타티, 막스 오퓔스, 사샤 기트리 등을 보았다. 그런 다음 친구들을 만났다.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왕따의 길’이었던 당시, 나는 처음으로 나와 같은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에는 영화 비평이 나아갈 길에 대한 질책도 담겼다. 오늘날 비평은 널리 읽히지 않을뿐더러 찾는 이도 드물다. 정성일은 이를 스스로 대중과 거리를 넓힌 비평의 자가당착이라고 꼬집는다. 대중과 괴리된 채 전문성의 틀에 집착한 결과 비평의 기능을 잃었다는 것. 그는 “비평이라는 것은 만드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대화의 활동이다. …우리는 재판관이 아니며, 해부학을 하는 의사들은 더더욱 아니다. 결국 영화평이란 홍상수를 ‘홍상수’라고, 박찬욱을 ‘박찬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자아비판 한다.
이 책에는 정성일의 친구인 말하는 강아지도 등장한다. 만화가 정우열의 페르소나인 세상에서 영화를 제일 사랑하는 강아지 ‘올드 독’이다. 정우열은 정성일을 영화적 아버지로 모시는 인연으로 이번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이 영특한 강아지는 호흡이 깊고 긴 글을 말풍선 안에 간결하게 요약해낸다. 만화 삽입은 머리가 지칠 때쯤 기분전환을 하라는 편집자의 배려로 느껴지기도 한다.
셈하지 않고 온몸으로 그것에 돌진하는 순수함은 오늘날 보기 드문 미덕이다. 그래서 무언가에 ‘들린’ 사람은 아름답다. 영화에 ‘들린’ 정성일의 궤적을 고스란히 글로 옮긴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영화 장인의 휴먼 스토리로도 읽힌다. “모든 영화는 아무나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걸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는 그의 말은, 영화뿐 아니라 쉽고 행복한 것에 ‘들린’ 현대인 모두가 귀 기울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