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박지성이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수비수 두 명 사이를 돌파하다 걸렸다.
A매치 데뷔전에서 골을 넣으며 ‘황태자’로 등극한 윤빛가람(20·경남)을 비롯해 2009년 열렸던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8강의 주역 조영철(21·알비렉스 니가타), 김영권(20·FC도쿄), 홍정호(21·제주 유나이티드) 등이 1차 선택을 받았다. 이어 이란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석현준(19·아약스)과 김주영(22·경남)이 추가됐다. 이들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 참가했던 해외파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며 차기 주전으로 성장하기 위한 테스트를 받았다. 조 감독은 앞으로도 유망주를 대표팀에 불러들여 잠재력을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기대에 못 미친 2번째 테스트 멤버들
조 감독이 젊고 가능성 있는 선수를 선발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창의력과 기술이다. 점점 빨라지는 세계축구의 흐름을 따라가려면 기술은 기본이고,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대표팀에 선발되는 선수들을 보면 조 감독의 의중이 묻어난다. 윤빛가람은 소속팀 경남에서 뛰어난 패스 능력을 선보였고, 어린 나이가 무색하게 여유 있는 플레이로 K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U-20 대표팀 선수들은 일찌감치 국제무대 경기를 통해 조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검증됐다. 이란전을 앞두고 선발된 김주영과 석현준도 비슷한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조 감독은 두 가지 부분 외에 직접 확인하는 것이 성실성과 근성이다. 아무리 자질이 좋은 선수라도 대표팀에 들어와서 성실성과 근성을 갖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조 감독은 훈련을 지휘하면서 선수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평가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해야만 ‘조광래의 아이들’에 포함될 수 있다. 1차 테스트를 통과한 윤빛가람, 김영권, 조영철, 홍정호 등은 이란전에서도 조 감독의 믿음으로 출전 기회를 잡아 그라운드를 누볐다. 그들은 이미 ‘조광래의 아이들’이다.
조광래호 2기에 합류한 석현준과 김주영은 조 감독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다. 석현준은 후반 33분 교체 출전해 인저리 타임까지 17분 정도 뛰었고, 김주영은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교체 투입된 석현준은 박주영과 투톱을 이뤘지만 공중 볼을 따낸 것 외에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경기가 끝난 뒤 석현준은 “팀에 도움이 되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볼을 많이 만지지 못해 아쉬웠다. 볼을 발로 다루는 기회가 좀 더 있었으면 했지만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중 볼을 다투는 데 좀 더 신경을 써야 했다”라고 자신의 경기를 되돌아봤다.
김주영은 코칭스태프가 A매치의 무게를 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한 듯했다. 김주영은 후반전에 거의 몸을 풀지 않았다. 코칭스태프에서는 스리백 라인 김영권, 이정수, 홍정호가 큰 실수가 없었고, 이란이 강하게 압박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김주영을 출전시킬 수도 없었다.
석현준과 김주영이 첫 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조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당장 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빠른 적응력으로 대표팀에서 자리 잡는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유망주를 선발하고 있다.
2014년 월드컵과 ‘조광래의 아이들’
이란과의 평가전을 앞둔 축구 국가대표팀이 9월3일 파주NFC에 소집됐다. 몸을 풀고 있는 석현준(왼쪽)과 김주영.
조 감독은 내년 1월 열리는 아시안컵을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뛰었던 선수를 주축으로 대비할 생각이다. 때문에 나이지리아전과 이란전 멤버 20명은 동일했다. 2~3명만 바꿔 경기를 치른 셈이다. 이는 아시안컵과 4년 뒤 월드컵을 내다보고 대표선수를 육성하겠다는 조 감독의 의지가 묻어나는 대목이다.
조 감독은 “가능성 있는 선수에게 대표팀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앞으로도 좋은 선수를 대표팀에 합류시켜 그들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겠다”라고 거듭 이야기한다. 한 예로 대표팀 골키퍼는 현재 2명이다. 이운재가 은퇴한 뒤 아직 제3의 골키퍼를 선발하지 못하고 있다. 조 감독은 그 자리에 어린 선수를 기용할 계획이다. 많은 후보가 거론되는 가운데 누가 조광래호 제3의 골키퍼로 선택받을지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조 감독은 데뷔전이었던 나이지리아전에서 짧은 패스와 공격력이라는 확실한 테마를 선보였다. 한 달 뒤 열린 이란과의 경기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경기를 치렀다. 공격 루트를 다양화하기 위해 오른쪽 윙포워드 이청용을 전진 배치하는 점이 새로운 부분이었다. 수비는 포백을 버리고 스리백으로 2경기를 치렀다. 고질적인 수비 불안을 해소하고자 조직적인 수비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기본 포메이션은 3-4-3이지만 수비 때는 5-4-1로 변했다.
조 감독의 2경기 결과는 1승1패다. 드러난 현상만 놓고 어떤 부분은 성공, 어떤 부분은 실패라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시도한 전술에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패를 논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빠르다. 대표팀에 모여 훈련한 시간도 짧았고, 기존 선수와 새로운 선수가 섞이면서 조직력도 완벽하지 않다. 게다가 새로운 전술까지 도입해 전술적인 완성도를 기대하기엔 무리다.
그의 목표는 뚜렷하다. 가깝게는 2011년 아시안컵에서 정상, 멀게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조 감독은 이를 위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태극호를 새롭게 무장시키고 있다. 좀 더 시간을 주고 지켜보면서 아시안컵을 통해 ‘조광래식 축구’를 평가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