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자리에 거대한 철골이 들어섰다. 2013년 개관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ongdamun Design Plaze·이하 DDP)다. 지상 4층, 지하 3층으로 지어질 이 건물에는 디자인 전문 전시관, 디자인 체험관, 컨벤션홀 등이 들어서 국제 디자인 전시 및 회의 등이 열릴 예정. 서울디자인재단 심재진 대표는 “주변 건물들도 DDP에 맞춰 내·외부 디자인을 감각적으로 바꾸고 있다. 지역 상권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헛돈 쓴다”는 인식이 가장 섭섭
서울디자인재단은 서울특별시 디자인산업 발전을 위해 모인 디자인 전문가 그룹. DDP를 기반으로 서울 디자인 산업 진흥 및 디자인 문화 확산에 필요한 각종 사업을 맡는다. 심 대표는 1978년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금성사 디자인연구소(현 LG전자)에 입사해 LG전자 유럽디자인센터 법인장, 디자인경영센터 상무 등을 거쳤다. 디자인코리아 2007과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2007 준비위원으로 뛰었으며 2005년부터는 국제산업디자인총회(ICSID) 집행위원·이사 등을 맡고 있다. 그리고 2009년 3월 서울디자인재단 출범 직후 대표이사직에 취임했다.
서울시에서 ‘디자인’을 내세운 것은 2005년 전후. 청계천변 간판 일원화, 한강대교와 신호등 교체 등 공공시설 디자인으로 시작해 2008년 산업으로서의 디자인 육성을 본격화했다. 현재 디자인 산업은 서울시 6대 신성장동력산업 중 하나. 하지만 재단이 출범한 직후부터 “예산 낭비” “전시 행정”이라는 뭇매를 맞았다. 특히 6·2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디자인 서울’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달했다.
“디자인 산업은 가시적인 성과가 한참 후에야 나오는 특성 때문에 ‘헛돈 쓴다’는 이미지가 강하죠. 디자인 산업에 투자하는 예산은 서울시 복지 예산의 1%뿐인데 회계 감사는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 정도로 정치적으로,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은 거죠.”
심 대표는 “먹고살기 힘든데 왜 디자인인가라고 반문할 것이 아니라, 이 정도라도 먹고살게 됐으니 이제는 디자인이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자인은 성능, 가격과 함께 상품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요소라는 것.
“디자인과 이벤트를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이벤트는 일시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지만 디자인은 돈을 버는 전략입니다. 도시 디자인을 통해 우리 도시에 관광 오는 사람이 늘어나고, 시민이 느끼는 삶의 품격이 높아진다면 물건 팔아 돈 버는 것과 같은 이익을 얻는 겁니다.”
서울시가 처음 ‘디자인’을 들고 일어섰을 때 ‘설마’ 하던 디자인 업계들도 지금은 반응이 좋다. 9월 2일 열린 ‘2010년 디자인서울 시민 대토론회’에 참석한 한 신인 디자이너는 “서울시가 상암 DMC에 작업용 오피스텔을 무료로 임대해주고 카운슬링 프로그램을 제공해준 덕에 연매출이 2억~3억 원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이외에도 신인 디자이너의 우수디자인을 제품화하도록 도와주고 마포·홍대지구, 구로디지털단지, 강남 신사동지구, DDP 지구 등 서울시 4대 디자인 클러스터를 만들어 각 지구 특성에 맞는 지원을 하고 있다.
2009년 서울디자인올림픽에 총 300만 명이 방문했다(왼쪽). 심재진 대표는 “DDP가 완성되면 세계 디자인 메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은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World Design Capital·이하 WDC)다. 올해 첫 시행된 WDC 사업은 2년마다 국제 경쟁을 통해 디자인 측면에서 모범이 될 만한 도시를 선정하는 것이다. 2007년 선정 당시 서울시는 “1년간 디자인수도 지위를 부여받아 7조 원대의 디자인시장이 15조 원대로 성장하고 디자인 전문 기업도 1500여 개에서 2500여 개로 늘어나 2만4000여 명의 고용 효과를 낼 것”이라고 추산했다. WDC 사업 일환으로 서울시는 2008년부터 3년간 ‘서울디자인한마당’(이전 명칭 서울디자인올림픽)을 열었다.
디자인한마당 시민 디자인 인식 제고
올해도 9월 17일부터 한 달간 ‘Design For All’이란 주제로 ‘서울디자인한마당 2010’을 열 예정이다. 잠실종합운동장과 4대 디자인 클러스터에서 서울디자인마켓, 해외디자인산업전, 디자인서울 국제 컨퍼런스 등을 연다. 작년 방문자는 약 300만 명. 재단 측은 올해는 그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심 대표는 “이 행사를 통해 시민들의 디자인 인식과 눈높이를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디자인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외국 인재를 유치하고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수한 패션 피플이 모인 밀라노, 런던, 뉴욕 등이 패션 선도 도시인 것처럼, 우리나라도 앞서나가는 제품디자인 등을 공부하고자 하는 외국 인재를 데려와 교육시키면 제품디자인 선도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것. 심 대표는 “그러려면 디자인 분야 특성화 대학인 홍익대, 국민대 등이 전문대학원을 세워 우수 인재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서울의 디자인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2007년 세계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에서 대한민국 디자인 수준은 세계 9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심 대표는 “패션, 가전제품 등에서는 대한민국 디자인이 세계 1위지만 디자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품격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2013년 DDP가 완공돼 시민들의 디자인 이해도가 향상되고 중소기업 디자인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다면 2015년 세계 5위권 진입도 문제없다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