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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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오렌지 비극 부른 인종차별

남부 로자르노에서 이주노동자와 주민 간 충돌, 사회문제화

  • 로마 = 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10-01-27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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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탈리아는 한창 오렌지 수확철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최남단 칼라브리아 주의 로자르노에서는 오렌지가 썩어가고 있다. 경찰이 폭동을 일으킨 1000여 명의 이주노동자를 타 지역으로 이동시킨 탓에 오렌지를 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1월7일 로자르노의 한 주민이 길을 가던 이주노동자들에게 총을 쏴 그중 불법체류자인 나이지리아인 1명과 정식 거주증을 가진 토고인이 부상을 당했다. 이것이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폭동을 촉발해 사흘간 도심에서 난데없는 전쟁이 벌어졌다. 성난 이주노동자 수백명이 마을로 몰려와 닥치는 대로 부수고 100여 대의 자동차에 불을 질렀다. 이에 이탈리아 주민들도 무력을 행사하며 “아프리카인들은 나가라!”고 외쳤다. 이탈리아 내무부가 데모 진압 특수경찰을 긴급 파견했지만 경찰을 포함해 수십명이 부상하는 대형사고로 이어졌다.

    사태 수습을 위해 경찰은 로자르노의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1128명을 크로토네와 바리 등 불법이민자 임시 수용센터로 이송했다. 정식 거주증이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로자르노를 떠나야 했다.

    ‘레드카드’ 꺼내든 이탈리아 정부

    평소 로자르노의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은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오렌지를 따며 일당 20~35유로를 받았지만, 이 돈을 온전히 손에 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노동력을 관리하는 마피아 난드랑게타 조직이 일감을 주선하고 왕복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대가로 매일 5유로씩 갈취해온 것. 이주노동자들은 또한 철 따라 올리브, 오렌지, 토마토, 포도 등 농산물을 수확하기 위해 시실리에서 칼라브리아로, 풀리아에서 캄파니아로 일거리를 따라 떠돌기 때문에 일정 거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전기, 수도, 난방은 물론 기본적인 위생시설조차 없는 방치된 농가나 공장에서 수백명이 함께 비인간적인 생활을 해왔다. 이탈리아 남부에는 현재 15만명의 불법체류자가 있고 그중 30%가 나이지리아, 가나 등 아프리카 출신이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인종차별 사건이 빈번하다. 프로축구 인터밀란의 공격수 마리오 발로텔리도 엄연히 이탈리아 국민이지만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수모를 당하고 있다. 경기 때마다 심한 인종차별적 구호에 시달렸다. 이에 내무부는 추후 인종차별적 구호가 발생하면 즉각 경기를 종료하는 강경책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로자르노 소요 사태는 인종차별 논란을 확산시키고 있다. 로마, 나폴리, 토리노 등 이탈리아 주요 도시에서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에게 온정을 표하는 시위가 있었고, 바티칸 일간지 ‘오세르바토레 로마노(Osservatore Romano)’는 “인종차별을 하는 이탈리아”라며 비난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또한 “이주노동자들도 똑같은 인간으로 고향, 문화, 전통은 다르지만 권리와 의무를 가진 인격체”라고 강조하며 관용을 촉구했다.

    한편 로자르노 사태 직후 SWG 여론조사소의 발표에 따르면, ‘안티 이주노동자 인터넷 사이트 400여 개에는 각각 1만명 이상의 회원이 등록’했고, ‘이탈리아인 2명 중 1명이 외국 이민자들의 노동 경쟁력에 위기감을 느낀다’고 한다. 사회학자들은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뺏길까 두려워하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사는 로자르노 사람들은 미디어가 자기 고향을 인종차별 마을로 먹칠했다며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정부가 수십 년간 농업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오렌지 1kg의 원산지 가격이 5센트(85원)도 안 돼 값싼 불법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로자르노 주민의 실업률은 18%에 달하지만 그 일당을 받으면서 하루 종일 오렌지를 따려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와 원주민 간의 갈등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칼라브리아 주에는 이주노동자와 현지민이 평화롭게 사는 마을이 두세 곳 있다. 이주자 적응정책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리아체(Riace) 마을은 지난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 철거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의해 소개된 바 있으며, 독일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편견과 불신의 장벽을 무너뜨린 리아체에 유엔고등난민위원회(UNHCR) 또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다민족사회 이해와 적응 시행착오

    1998년 쿠르드인 300명이 보트로 이요니오 해변에 도착했을 때 리아체 시장 도메니코 루카노는 이들의 임시숙소를 마련하기 위해 전화 수화기를 놓지 않았다. 수십 년 전 가난을 피해 호주, 미국, 캐나다 등으로 이민 간 리아체 교포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그 결과 이민자의 설움을 몸소 겪은 이들이 수십 년간 방치된 고향 집을 쿠르드인에게 내줬다. 정착한 쿠르드인들은 음식점을 열고 민박을 차리고 공방도 열면서 관광객의 눈길을 끌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급감한 인구로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마을이 난민들의 정착으로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도메니코 시장은 로자르노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리아체 모델을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긴 이주노동자의 역사를 지닌 영국 독일 프랑스에 반해 이탈리아는 단기간에 외국인이 대거 몰려와 다민족 사회에 대한 이해와 적응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로베르토 마로니 내무장관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는 절대 인종차별 국가가 아니다”라며 “단지 인종차별이란 단어와 개념을 정치적 도구로 남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민법을 보완하고, 합법적으로 정착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자긍심은 물론, 사회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라 스탐파’지(紙)는 이주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몽땅 사라진 이탈리아 사회를 상상한 기사를 게재했다. ‘새벽 2시부터 빵 반죽을 하던 모로코인이 안 나와 빵가게 오븐은 켜지지 않고, 루마니아 운전기사가 없어져 일간지 배달이 어그러지고…. 페루 도우미가 사라져 거동이 불편한 팔순 아버지 수발은 누가 하지? 없으니까 너무 답답해! 이주노동자들이여, 여길 떠나지 말아줘(제발 이탈리아인끼리만 남겨두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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