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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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이누이트’가 살고 있었네

G7 재무장관회의·동계올림픽 개최로 세계인 시선 집중

  • 밴쿠버=황용복 통신원 facebok@hotmail.com

    입력2009-12-29 1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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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에 ‘이누이트’가 살고 있었네

    (좌) 이눅슈크 앞에 서 있는 이누이트. (우) 에스키모는 현지어로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란 뜻이다.

    가장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사는 이들로 흔히 사막지대의 유목민과 북극권의 원주민을 꼽는다. 그중에서도 ‘에스키모’라 불리는 15만여 명의 북극권 원주민은 시베리아 북부, 알래스카, 캐나다 북부, 그린란드에 걸쳐 산다. 상당수는 전통적 생계수단인 수렵을 여전히 주업으로 삼고 있지만, 소수는 현대문명의 문화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피폐하게 살고 있다. 세계 주류문화의 관점에서 소외집단으로 불리는 이들 에스키모에 대한 관심을 ‘반짝’ 유도해낼 만한 두 가지 이벤트가 내년 2월에 열린다.

    G7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내년 2월5일부터 이틀간 이칼루이트(Iqaluit)에서 재무장관회의를 갖는 것이 첫 번째 이벤트다. 캐나다의 동북쪽 배핀 섬의 남단에 자리한 작은 마을 이칼루이트는 7000여 명이 교통신호등조차 없이 궁벽하게 사는 곳이지만, 캐나다 북극권 원주민의 자치구인 누나부트 테리토리(Nunavut Territory)의 수도다. 혹한의 땅 이칼루이트에서도 연중 2월은 가장 매서운 추위가 찾아오는 때. 최저기온이 평균 영하 32℃인데, 영하 40℃ 밑으로 떨어지는 날도 드물지 않다.

    이칼루이트 재무장관회의의 호스트인 짐 플래허티 캐나다 재무장관은 회의의 의제가 북극권과 관계없는데도 캐나다의 참맛을 보여주기 위해 이곳을 개최지로 정했다고 한다. 그 자신이 이칼루이트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의 원시 자연이 기막힌 장관이었다며, 특급 호텔에서 열리는 판에 박힌 회의에 질린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겠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비교적 만족해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이눅슈크’

    이칼루이트는 숲과 같은 풍성한 생태계가 형성될 수 없는 곳이다. 시가지가 맵시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겨울에는 몇몇 빌딩과 단층주택, 눈보라 휘날리는 앞바다가 경관의 전부이다시피 하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원시의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그것은 황량과 삭막이 주는 역설적 아름다움 혹은 비장미(悲壯美)일 것으로 짐작된다.



    에스키모 사람들을 상기시킬 또 하나의 국제 이벤트는 2월12일 막이 오르는 동계올림픽이다. 개최지 밴쿠버는 북극권과 멀리 떨어진 캐나다 남서부의 도시지만, 이번 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는 에스키모 문화의 일부인 이눅슈크(inukshuk)다. 이눅슈크는 사람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형상의 돌 조형물로 현지어로는 ‘사람 돌’이라는 뜻이다. 이눅슈크는 캐나다의 북극권, 나아가 캐나다 전체의 상징물 중 하나인 데다, 동계올림픽이라는 행사가 북극의 이미지와 연관되기 때문에 마스코트로 정해졌다.

    북극권은 키 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툰드라 지대다. 여름엔 작은 풀이 짧게나마 땅을 덮긴 하지만 대부분 눈으로 덮여 있어 눈에 띄는 지형지물이 적다. 사냥을 위해 떠돌아다녀야 하는 에스키모인들이 인공적 랜드마크로 이눅슈크를 세운 것은 이 때문이다.

    이눅슈크는 방향표지판이기도 하고, 사냥 수확물을 임시로 저장한 곳이나 물고기와 사냥동물이 잘 잡히는 목을 알리는 간판이기도 하다. 더러는 성스러운 장소에 세워지기도 한다. 방향표지판으로 쓰일 경우 벌린 팔이 가리키는 쪽이 진행 방향이 되는데 작은 이눅슈크는 사람의 실물 크기이고, 큰 것은 이것의 몇 배다.

    캐나다에 ‘이누이트’가 살고 있었네

    이칼루이트는 캐나다 북극권 원주민의 자치구인 누나부트 테리토리의 수도로, 매서운 추위로 유명하다.

    사실 캐나다에선 북극권 원주민을 지칭하는 용어로 ‘에스키모’를 쓰는 경우가 드물다. 1970년대 캐나다의 북극권 사람들이 이 용어에 경멸적 의미가 담겨 있으니 자신들을 이누이트로 불러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북극권 원주민은 언어와 문화를 기준으로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그 하나가 유픽(Yupik)인이고 다른 하나가 이누이트(Inuit)인이다. 전자의 터전은 시베리아에서부터 알래스카에 걸쳐 있고, 후자는 알래스카에서 캐나다를 거쳐 그린란드까지 분포돼 있다). ‘에스키모’는 캐나다 남쪽의 일반 원주민을 가리키는데, 이 말은 인디언들이 ‘날고기를 먹는 사람’이란 뜻으로 자신들을 호칭한 데서 유래했다는 것. 현재 캐나다에서는 이 나라 북쪽 원주민을 이누이트라 부르고, 경우에 따라 각국의 북극권 원주민이라고 한다. 요즘엔 유엔도 과거에 쓰던 에스키모 대신 이누이트란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알래스카에는 이누이트와 유픽이 공존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이들을 통틀어 에스키모라고 부른다.

    5만여 명의 캐나다 이누이트 중 상당수는 지금까지도 사냥과 낚시를 위해 거주지를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생활자원의 대부분을 순록, 물개, 고래, 물고기 등에서 조달하고 여름이면 야생식물을 채취한다. 운송수단을 개썰매와 카약에서 스노모빌과 모터보트로 바꿨을 뿐이다. 겨울에는 다져진 눈을 벽돌처럼 잘라 돔 형태로 지은 이글루에 살고, 여름에는 원뿔형 나무 뼈대에 짐승가죽을 입혀 만든 천막에서 산다.

    전통적인 삶 포기, 방황하는 ‘이누이트’

    캐나다 연방정부는 이누이트를 포함한 원주민 동화정책을 고민하다 19세기 중반, 기숙학교제도를 도입했다. 원주민의 자녀를 부모에게서 분리해 서양식 교육을 제공하고자 한 것. 그렇지만 선의에서 출발한 정책이 세월이 가면서 많은 부작용을 낳아 20세기 후반에 완전히 철폐됐다. 기숙학교들은 원주민 언어 사용을 금지하고 토착신앙을 야만시했으며, 원주민 학생들은 체벌과 성적 학대 등으로 괴로워했다. 그 뒤로 당국은 이누이트를 주류문화에 흡수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자치적 삶을 돕는 견지에서 1999년 이누이트의 터전에 원주민 자치구인 누나부트 테리토리를 설정했다.

    자연스레 이누이트만의 도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과거에는 이누이트가 가족 단위로 이동하며 살았기에 이들을 통치할 기구가 존재할 수 없었고, 중심도시 같은 집단주거지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주류문화로의 동화가 시도된 20세기 중반부터 전통적 삶을 포기하는 이누이트가 생기면서 시장경제와 임금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들이 탄생했다.

    이칼루이트도 그중 하나로, 가장 많은 이누이트가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다. 이칼루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유럽을 오가는 공군기들의 중간급유 기지로 설정했는데, 당시 이곳에 취업하기 위한 이누이트들 때문에 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도회지의 이누이트들은 부모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인생관과 외부세계의 가치관의 괴리로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실업률은 50%를 넘나들며, 자살률과 범죄율, 알코올과 마약 중독 비율 등이 캐나다 평균치보다 훨씬 높은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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