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된 나무 위의 집’. 내부가 수족관처럼 이어진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국내에서도 공공미술을 실천하는 예술가가 늘어나면서 생활 속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안양예술공원이다. 그곳에는 일상의 묵은 때를 벗겨줄 기발한 작품이 모여 있다. 작품 하나하나가 그동안 쓰지 않던 ‘상상력 근육’을 자극한다. 그래서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머리가 시원해질 정도다.
1.8km 산책로 곳곳에 세계적 작품이…
봄기운을 가득 안은 안양예술공원은 자연도 아름답지만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모범이 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안양예술공원 터는 예전에 안양유원지였던 자리. 안양시는 APAP(Anyang Public Art Project)라는 안양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이곳의 이름을 안양예술공원으로 바꾸고 시민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예술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산 산책로를 따라 전시된 작품은 50여 점. 일반 시설물과 경계가 모호해 알아보기 쉽지 않지만 세계적 작가들이 만든 작품이 호기심과 향연, 예술, 순례, 놀이, 순환, 쉼 등 10개의 큰 스토리로 나뉘어 배치돼 있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설마 이것도 작품일까?’ 하는 의문이 떠오르는 것도 있다. 이 경우 십중팔구는 작품이다. 주차장부터 벤치는 물론 놀이터까지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심지어는 잠시 앉아서 쉬는 정자와 표지판도 작품이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제목에 반해버린 작품이 벨기에 작가 호노레도의 ‘물고기의 눈물이 호수로 떨어지다’. 2개의 거대한 바위 위로 얇은 물고기처럼 생긴 조형물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 14개의 노즐에서 번갈아가며 물고기의 눈물이 떨어진다. 이 작품에는 사연이 있다. 1977년 안양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산에서 거대한 돌덩어리 2개가 굴러 떨어져 지금의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작가는 그 바람에 살 곳을 잃었을 물고기를 떠올렸다는 것. 그래서 2개의 큰 바위 위에 물고기 조형물을 만들고 거기에 스프링클러를 설치, 스스로 살기 위해 물을 뿜어내는 물고기 작품을 탄생시켰다. 시시각각 여러 방향으로 바뀌는 물줄기는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기도 하지만, 환경파괴 속에 살아가는 물고기의 안타까움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제목이 신선한 또 다른 작품은 ‘잔디밭은 휴가 중’이다.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제목 앞에 서서 한참 웃었다. 이것은 일본 도쿄대의 피크닉 연구 모임인 ‘도쿄 피크닉 클럽’의 작품으로, 안양예술공원으로 휴가 온 안양종합운동장 앞 잔디밭을 보여준 것이다. 작가는 잔디에게 말한다. 도시 속에서 사람들에게 푸르름을 선사하느라 수고했으니, 이제는 공원에 와서 잠시 쉬라고. 실제로 종합운동장 앞에 가면 비행기 모양으로 잔디가 없어진 곳이 있다고 한다. 그곳의 잔디가 안양예술공원의 그늘 좋은 자리에 ‘이륙’해 쉬고 있다는 것이다.
상상력 자극하는 포토제닉한 작품들
<b>1</b>‘물고기의 눈물이 호수로 떨어지다’ <b>2</b>‘빛의 집’ 내부 <b>3</b>등고선 모양의 전망대 <b>4</b> ‘잔디밭은 휴가 중’
전망대와 함께 안양예술공원을 대표하는 작품은 주차장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차장에 있는 ‘선으로 된 나무 위의 집’이다. 이 작품은 20세기 실험예술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미국의 ‘비토 아콘치’가 만든 것으로, 뱀처럼 생긴 기다란 통로가 기둥 위로 연결돼 있다.
수족관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주는 파란색의 터널과 물결치는 파도를 연상시키는 멋진 공연장은 여기서도 가장 ‘포토제닉’한 곳이다. 언제 가더라도 가족이나 친구들의 사진을 찍거나 작품 활동 중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안양예술공원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는 ‘빛의 집’. 음료수 박스를 거대하게 쌓아놓은 것으로, 겉에서 보면 대형 마트의 창고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빛이 스며들면 내부의 공간이 놀랍게 변신하기 때문이다. 그저 박스를 블록으로 쌓아놓았을 뿐인데 말이다.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덴마크 작가 에페 하인의 ‘거울 미로’라는 작품도 인기가 많다. 108개의 거울이 겹겹이 삼중원을 이루는 작품에 들어가면, 아무리 균형감각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누가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주변과 대상의 구분이 모호하고 블랙홀에 빠진 기분이 든다. 신비한 체험이다.
힘들면 작품 ‘낮잠 데크’에서 쉬면 되고…
신나게 산책을 하다 보니 지친다고? 그렇다면 ‘낮잠 데크’라는 작품 위에서 잠시 쉬어보자. 이것은 등받이가 수직인 여느 벤치와 달리, 등받이를 유연한 곡선으로 만들어 나무의자인데도 앉으면 무척 편안하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낮잠 데크’에 기대면, 시원한 산을 배경으로 앞에는 하천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것이 자연과 인간이 교감할 수 있는 중요한 길이라 믿는 작가가 그 길을 내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놀이터 ‘미로언덕’, 머리에 선풍기 팬을 단 ‘춤추는 부처’, 흰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드래곤 벤치’, 2가지의 생물이 섞여 있는 ‘신종생물’, 인도네시아 대나무가 2겹으로 싸여 아늑한 ‘안양사원’까지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 사람들을 기다린다. 안양예술공원을 둘러보고 나니, 이제 라데팡스나 구엘 공원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한 번의 산책으로 공원에 있는 작품을 모두 봐야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우리는 숙제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산책을 하러 나온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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