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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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 쇼크? 나 어떡해!

알아도 무섭고 모르면 더 무서운 별별 알레르기 … 피하는 게 상책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5-08 15: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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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가루 쇼크? 나 어떡해!
    4월18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의 ‘인생극장 Yes or No’ 특집편. 6명의 멤버는 아침식사로 짬뽕과 자장면 중 뭘 먹을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 프로그램은 제작진이 제시한 두 갈래의 길 중 하나를 정해 그 ‘선택’을 따라가는 내용. 국토 최남단 마라도까지 가서 자장면을 먹는 것으로 ‘운명’이 결정된 노홍철과 정형돈은 부산항에서 제주도행 여객선을 기다리다 짬이 나자 내기를 한다.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던 두 사람. 노홍철은 마지막 승부를 가리자며 정형돈에게 새 게임을 제안하는데, 순간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노홍철 : 뭐 할까? 복숭아 먹기? ㅋㅋㅋ
    정형돈 : (손사래를 치며) 안 돼! 복숭아는. 아… 아… 안 돼.

    먹을 것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대식가 정형돈이 사약 받은 장희빈처럼 완강하게 거부하자 제작진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형돈에게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 어릴 때 복숭아를 먹다 어떤 ‘봉변’을 당했는지는 모르지만, ‘복숭아’라는 말만 나와도 ‘무조건 반사’를 하며 기겁한다.

    복숭아,달걀,해산물 등 일부 사람에겐 치명적 물질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유발물질, 즉 알레르겐 중에는 공중 부유 항원, 접촉 항원도 있지만, 이 사례에서 보듯 과일·채소 등 음식물 항원도 많다. 그뿐 아니다. 각종 화학제품, 약품, 금속 등의 특정 성분도 피부나 호흡기 등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물질과는 관계없이 과식을 하면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정형돈의 경우처럼 많은 사람이 즐겨 먹는 복숭아도 일부 사람에겐 치명적인 ‘독성물질’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성분을 빼고 먹을 수도 없으니 피하는 게 상책. 알아도 무섭고, 모르면 더 무서운 기기묘묘한 알레르기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특이 알레르기 중 그래도 흔한 축에 속하는 것이 식품 알레르기다. 복숭아 참외 오이 땅콩 감자 우유 달걀 양배추 오징어 은행 밀가루 닭고기 돼지고기에서부터 과자나 인스턴트식품까지, 사실 과일, 채소류, 해산물, 육류, 제과류 등 거의 모든 식품이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달걀, 우유, 복숭아, 토마토, 게 등이 대표적 식품 알레르겐. 회사원 김용식(32) 씨에겐 게 알레르기가 있다.

    “어릴 때부터 게를 먹으면 목이 따끔거리고 나중엔 숨쉬기도 어려워져 이젠 아예 랍스터 가게나 게를 내오는 횟집에는 얼씬도 안 해요. 주변에 게나 새우 같은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가 의외로 많습니다.”

    복숭아는 먹거나 만질 때 표면의 털이 입 주위와 손, 팔 등에 접촉되면서 발진성 두드러기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해외 토픽으로 종종 소개되는 밀가루와 땅콩 알레르기는 때때로 사람을 쇼크 상태로 몰기도 한다.

    식품 알레르기는 대체로 단백질이 원인인데, 밀가루에 함유된 단백질 성분인 글루텐(글리아딘)은 특히 위험하다. 간혹 혈액순환에 문제가 있거나 항상성 유지 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글루텐 성분이 들어가면 급성 소화장애를 일으키기 때문. 이때 설사 등 다른 증세도 유발해 고통이 크다. 밀가루 알레르기가 글루텐 못 견딤증(Gluten Intolerance)이나 복강병(Coeliac Disease·일종의 소화장애)이라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꽃가루 쇼크? 나 어떡해!
    밀가루 알레르기가 정신분열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덴마크의 한 연구진은 병원에 입원한 7997명의 정신분열증 환자를 대상으로 글루텐 알레르기 병력과 정신분열증의 관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알레르기를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정신분열증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는 영국 의학지 ‘The British Medical Journal’ 2004년 2월21일자에 소개됐다.

    2억3000만명 중 1명꼴, 물 알레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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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물 항원도 많다. 각종 화학제품, 약품, 금속 등의 특정 성분도 피부나 호흡기 등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심지어 쌀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밥을 입에 대기만 하면 갑자기 콧물이 나오거나 심한 경우 구역질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밀, 쌀 등 곡물 알레르기 증상을 진단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 폭식증과 거식증을 동반한 식이장애로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제롬 그루프먼 교수는 2007년 펴낸 ‘닥터스 싱킹’(원제 How Doctors Think)에서 이런 사례를 다뤘다.

    저자는 1989년부터 2004년까지 15년간 음식을 먹고 나면 심한 구역질 증상을 보인 30대 여성 앤 도지가 미국의 내로라하는 의사 30여 명에게서 식이장애, 과민성 대장증후군 진단을 받았지만, 결국 면역장애인 소아지방변증(곡물 주요 성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병)을 앓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알레르기의 오진율이 아직도 높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다.

    “아들이 울어도 눈물을 닦아주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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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알레르기라는 희귀성 질환에 걸린 미첼라 더튼 씨와 세 살 난 아들. 더튼 씨는 피부에 물만 닿아도 사진처럼 발진이 돋는다.

    지난 4월20일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세 살 난 아들을 둔 엄마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했다. 스물한 살인 엄마 미첼라 더튼이 물 알레르기에 걸린 것. 물 알레르기는 보통 2억3000만명 중에 1명꼴로 나타나는 희귀 질환이다. 한국에선 아직 보고된 사례가 없다. 그러나 해외에선 영국 소녀 하이디 칼 코너와 호주의 애슐레이 모리스 씨 등이 물과 접촉하면 온몸에 붉은 게 돋고 운동은 엄두도 못 내는 물 알레르기에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더튼의 상태는 두 사람보다 심하다. 물과 접촉만 하면 발진, 물집 등이 일어나고 붉은색 흉터가 생긴다. 심지어 마시는 물에도 목구멍에 물집이 잡히는 반응이 일어났다. 더튼은 출산 과정에서 호르몬 불균형이 일어나면서 알레르기가 발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염색약 알레르기는 흔히 나타나는 증상인데, 4월16일 영국에서는 염색약 알레르기로 눈과 얼굴이 크게 부은 15세 소녀의 사례가 보도됐다. 염색약에 함유된 PPD(파라페닐렌디아민)가 원인. PPD는 각종 염색제에 들어가는 물질로 염색에 폭넓게 사용된다. 그러나 피부에 직접 접촉될 경우 신장과 간, 피부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어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에선 사용이 금지됐다.

    햇빛에 노출되면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2001년 10월 세계 영화평론가들의 찬사 속에 개봉한 ‘디 아더스’에서 주인공 니콜 키드먼이 맡은 역할이 그것이다. 이 영화에서 니콜 키드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긴 남편을 두 아이와 함께 대저택에서 기다린다. 영국의 작은 섬에 자리한 저택은 늘 어두웠는데, 이유는 두 아이가 햇빛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질식사하는 햇빛 알레르기를 앓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영화 속 이야기지만 실제로 햇빛 알레르기는 간과할 질환이 아니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피부염 증세를 감내해야 한다. 정신적 고통도 말로 하기가 힘들다. 2001년 7월5일 헬무트 콜 독일 전 총리의 부인 한네로레(당시 68세) 여사는 페니실린 주사 부작용으로 얻은 햇빛 알레르기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부 벗겨지는 스티븐존슨 증후군

    감기약 등 약물이나 바이러스, 자가 면역질환에 의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진 스티븐존슨증후군도 희귀 알레르기로 분류된다. 전신 피부, 눈, 구강, 음부, 항문 등에 수포가 생겨나고, 구역질과 고열을 동반한다. 결막염이나 각막염을 일으켜 시력장애를 초래하기도 하는 급성 알레르기 질환의 한 종류다.

    피부의 25% 이상이 벗겨지기도 하는데, 병세가 더 진전되면 피부의 70~80% 이상, 식도와 입안도 벗겨져 호흡곤란까지 이어지는 아찔한 상황에 이른다.

    의료계에선 항경련제 페니실린과 같은 약물, 니켈 코발트 등 화학물질, 살충제 등을 항원으로 인식한 면역세포가 자기 세포를 공격해 발병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는 1만5000여 종의 약품 중 10%가 넘는 1700~1800종이 이 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는 성분을 함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물질과 관계없이 음식 또는 약을 먹거나 곤충에 물린 뒤 숨쉬기 곤란한 상황이 오면 아나필락시스를 의심해볼 수 있다. 심한 저혈압이 오거나 쇼크를 동반하는 수도 있다. 영아가 주사를 맞고 발진 등 신체에 이상증세를 보이는 것도 이 경우다. 주사를 맞고 바늘을 뽑은 지 수분 내에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아나필락시스는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일어나는 알레르기성 과민반응.

    특정 이물질에 한 번 노출돼 아나필락시스가 일어나면, 그 일이 신체에 기억된 뒤 동일한 물질이 소량만 들어와도 폭발적인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난다. 처음엔 입 주위나 얼굴이 따끔따끔하고 열이 나는 듯 느껴지다 저혈압, 부정맥이 심하면 쇼크에 이르러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혈관 수축제인 에피네프린을 맞아야 하는 환자나 아나필락시스 증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 사람은 평소 에피펜 같은 아드레날린 주사약을 휴대하는 게 좋다. 달걀을 먹다 아나필락시스가 온 적이 있는 환자는 인플루엔자나 황열 백신 등 예방 접종을 하다가 다시 이런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와인 한 모금에 발진, 레깅스 두드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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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화를 막기 위해 와인에 첨가한 아황산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서울 창동에 사는 이모(29·여) 씨. 술을 거의 입에 대지 못하는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술을 배워보기로 결심하고 마트에서 큰맘 먹고 와인을 구입했다. ‘어렵게 어렵게’ 마개를 따고 와인 잔에 술을 따라 목으로 넘긴 순간, 숨이 가빠지더니 팔 등에 발진이 생겼다. 진단 결과 와인에 들어 있는 아황산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아황산은 와인을 저장하는 과정에서 변색을 막고 살균과 보존 효과를 높이기 위해 넣는 식품첨가물. 와인 라벨에 ‘무수아황산 이산화항’이라고 적힌 게 바로 이것이다. 보통사람은 섭취해도 무방하지만 천식이나 알레르기 반응에 민감한 사람은 소량에도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여대생 한모(22) 씨는 옷 때문에 황당한 경험을 했다. 다리가 예뻐 치마를 자주 입는 그는 최근 레깅스 패션이 유행하자 미니스커트와 함께 ‘코디’할 생각으로 이를 구입했다. 그런데 레깅스를 입고부터 다리와 허벅지에 두드러기가 돋았다. 생고무, 즉 수많은 단백질로 이뤄진 스판이 유발한 알레르기였다. 그 후 한씨는 레깅스를 거의 입지 않았고, 불가피할 때에 대비해 면 혼방 비율이 높은 레깅스를 구입했다. 골프채 고무 그립을 잡은 손 부위에 알레르기를 호소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또한 생고무 알레르기 환자다.

    특정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발현하는 알레르기도 있다. 특정 음식을 먹고는 별 탈이 없다가 특정 행동을 했을 경우 알레르기 반응이 생기는 것.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2가지 특정 음식물이 체내에 들어가면 반응이 뒤따라오는 종류도 있다. 이른바 ‘듀얼 알레르기’다. 이대목동병원 알레르기 내과 조영주 교수는 “한 여학생이 쇼크 상태로 실려왔는데, 진단해보니 밀가루와 어패류를 먹은 뒤 운동하면 알레르기 쇼크가 오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꽃가루와 과일 알레르기가 동시에 오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기존 알레르겐이 환경적 요인으로 여러 변이과정을 거치고 수도 불어나면서 특이 알레르기 증상도 늘고 있다. 지난 1월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이 발표한 건강보험 및 급여 진료비 자료 분석 결과를 보면 비교적 공기가 맑은 제주도에서 알레르기 질환 발병률이 높다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인구 1만명당 알레르기 환자 수도 1위였다. 언제, 어디서, 어떤 물질과 환경요인이 알레르기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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