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제임스 본드가 싸움닭으로 변한 이유는 범죄조직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본드는 거의 처음으로 여자를 사랑하게 됐는데, 베스퍼라는 이름의 이 여자는 그의 눈앞에서 죽는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에 나오는 더블오세븐(007) 제임스 본드는 굉장히 드라이하고 거친 데다 냉소적인 인물이다. 알고 보면 고독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인물의 매력이 차고 넘친다. 원작이 주는 재미는 거기에 있다. 비견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제이슨 본인데, 이 인물의 창조자는 톰 클랜시와 함께 미국 전쟁첩보 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로버트 러드럼이다. 제이슨 본 시리즈는 안타깝게도 국내에 번역된 것이 없어 영화로만 만날 수 있는데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제임스 본드든 제이슨 본이든 냉전시대의 아이콘으로서 다분히 보수적인 데다 남성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들이지만 캐릭터가 갖고 있는 매력만으로 보면 충분히 하드보일드 문학의 적자들로 평가된다. 레이먼드 챈들러나 대실 해밋, 그리고 존 르 카레 등이 만들었던 인물들, 고전영화에서는 험프리 보가트가 맡았던 필립 말로 같은 캐릭터 혹은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에서 리처드 버튼이 했던 역할 등이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겠다.
이번이 22번째인 007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Quantum of Solace)’는 바로 그렇게 분위기가 하드보일드풍(風)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분위기가 싸하다. 자못 진지하다. 긴장감으로 터질 것 같다. 무엇보다 제임스 본드는 정말 죽자 사자 싸운다. 때문에 007 하면 으레 연상되는 8등신 미녀의 등장이나, 지나칠 정도로 깔끔 떠는 007의 댄디즘, 그럴듯한 첨단 하이테크 무기 등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이번 007 영화는 21번째 작품인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만큼 재미있다.
‘퀀텀 오브 솔러스’는 전작 ‘카지노 로얄’에서 딱 1시간이 경과된 뒤부터 이야기가 진행된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는 아직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가공할 범죄조직으로부터 총격세례를 받으며 자동차 추격전을 벌인다. 그는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해 유력한 용의자를 잡아오지만 영국 정보부인 MI6 내의 배신으로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 단서를 쫓던 제임스 본드는 남미 국가인 볼리비아에까지 가게 되고, 그곳에서 국제범죄조직인 도미닉 그린 일당과 마주치게 된다. 그린 조직은 볼리비아에서의 군사쿠데타를 지원하는 대신 식수권을 차지하려고 한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볼리비아에서 식수는 석유보다 더 큰 이권이 되기 때문이다.
전작들과 달리 이데올로기 버리고 세계평화 위해 동분서주
미국은 중동 쪽 전쟁에 치중하느라 남미를 돌볼 여력이 없다. 미국이 바라는 건 그저 좌파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농민 출신인 에보 모랄레스 좌파 대통령이 집권한 뒤 볼리비아는 미국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등 남미는 (미국이 생각하기에) 좌파정권의 천국이 됐다. 이럴 때 군사쿠데타라니 그 얼마나 황홀한 얘기인가. 미국의 CIA(중앙정보국)는 은밀하게 그린 일당을 돕고 여기에 영국 외무성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나선다. 영국 외무장관은 본드의 직속상관이자 MI6의 수장인 M(주디 덴치)을 불러 영국이 얻게 될 국가적 이익을 생각해 제임스 본드의 경거망동을 제어하라고 요구한다.
“이것 봐요. 이쯤 되면 이 일은 결코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에요. 국가 생존이 걸린 문제란 말이에요.”
하지만 외무장관이든 M이든 아직 모르는 사실은 도미닉 그린 조직이 볼리비아에서 얻으려는 게 석유가 아니라 물이라는 것이다. 그린은 미국에게는 우익 군사정권을 선물로 주고 영국과 러시아 등에는 볼리비아 사막지대에서 석유를 캐내 싼값에 넘겨주겠다며 거짓 음모를 펼친다.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은 바로 제임스 본드뿐이다. 그는 M의 거듭된 소환명령에도 그린 일당과 일대 혈전을 벌인다.
‘퀀텀 오브 솔러스’는 하드보일드풍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 분위기가 싸하다. 자못 진지하다. 긴장감으로 터질 것 같다. 무엇보다 제임스 본드는 정말 죽자 사자 싸운다.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제임스 본드가 불도저 같은 싸움닭으로 변한 이유는 범죄조직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본드는 거의 처음으로 여자를 사랑하게 됐는데, 베스퍼라는 이름의 이 여자(에바 그린. 전작인 ‘카지노 로얄’에 나온다)는 그의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는다. 전편 내용에서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인 이번 영화에서 본드가 계속해서 입을 앙다문 채 화가 나 있는 표정인 것은 그 때문이다. 내 여자를 죽인 놈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다 죽여버리겠다는 수컷의 분노와 자존심을 이마에 쓰고 다닌다. 오죽하면 상관인 M이 개인적인 복수를 하러 다닐 거면 다 그만두고 정보부로 기어 들어오라고 난리를 치겠는가.
007이 국제정치 감각을 갖고 진정으로 세상을 구하려는 히어로가 됐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국제무대에서 이제 정의란 사라진 지 오래다. 미국 부시 정부의 ‘악의 축’ 외교는 8년 동안 전 세계를 전쟁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 와중에 각국의 정치가들은 볼리비아 좌파정권이 무력화되기를 원하는 미국의 욕망에 슬쩍 눈을 감지만 007만큼은 홀로 눈을 부릅뜨고 동분서주 애쓴다. 그에게는 볼리비아 정부가 좌파든 우파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007 영화는 할리우드가 내놓는 작품 가운데 가장 정치성이 강한 영화였다. 말할 나위 없이 우파를 대변하는 영화였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마지막으로 나왔던 영화 ‘007 어나더데이’가 북한을 묘사한 걸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념적으로 너무 강경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단순무식한 태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007은 이제 그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젓는다. 당신이 진정으로 세계평화를 원한다면 이데올로기를 버리라고 충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모두 관념의 똥덩어리일 뿐이다. 제임스 본드가 몸을 아끼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건 그 때문이다. 쓸데없는 이념논쟁 대신 생존을 위해 행동을 선택하는 007의 모습이 신선하다. 이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하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