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출간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의 책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은 최근 경제관료들의 필독서로 떠올랐다.
그는 여느 경제관료와 달리 ‘사유(思惟)하는 인간’이다. 사유의 바탕엔 박람강기(博覽强記)한 재능, 풍부한 문학적 감수성, 삶에 대한 경건한 자세 등이 깔려 있다. 성장률, 국제수지, 물가 따위의 경제지표만 따지는 전형적인 경제관료와는 다르다.
그의 경제철학이 오롯이 담긴 저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그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면서 슬금슬금 판매량이 늘더니 장관 내정자로 발표된 후엔 가속도가 붙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 된 후 판매량 늘더니 장관 내정 후 가속도
2005년 5월 첫 출간된 이 책은 그해 7500권이 팔렸다. 회고록 형식의 경제서적으로서는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은 것. 2006년엔 1100권이 판매됐으나 지난해엔 판매 열기가 식어 300권에 그쳤다. 올 1월엔 260권, 2월엔 450권이 나갔다. 책을 출판한 삼성경제연구소의 임진택 출판팀장은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등 대형서점에서 대량 주문이 들어오고 예스24 알라딘 등 인터넷서점을 통해서도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며 “증쇄를 검토해야겠다”고 말했다.
주독자층은 과천의 경제관료다. 경제정책의 새 사령탑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알기 위해 그의 저서를 읽는 것이다. 과천 정부종합청사 후생관 서점에서 근무하는 박영천 씨는 “단체로 몇십 권씩 구입해 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재계와 금융계에서도 강 내정자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단체로 구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강 내정자의 아호는 청설(聽雪)이다. 그는 “영혼의 귀로 눈(雪)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공직생활 28년을 되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궁형(宮刑)을 받은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쓰듯 비장한 각오로 집필했다. 고위공무원 출신이 즐기는 대필 저술이 아니라 토씨 하나까지 직접 썼다.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을 집어들면 먼저 두툼한 볼륨감에 손맛이 느껴진다. 593쪽 분량이다. ‘부가가치세에서 IMF까지’란 부제가 붙어 있듯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경제정책 결정과정에서 일어난 갖가지 영욕의 역사가 기술돼 있다. 흔히 고위공직자가 쓴 책을 보면 재임 당시의 연설문과 공문서를 짜깁기해놓은 것이 많다.
이 저서는 그런 ‘종이 낭비형’ 서적과는 다르다. 사료로서의 가치와 함께 고백록, 일화집 등 종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두껍지만 군더더기가 없어 ‘종이 절약형’이라 할 수 있겠다. 자화자찬류 회고록과는 달리 이 책엔 곳곳에 회한(悔恨)과 반성이 있다.
머리말과 프롤로그부터 눈길을 끈다. 경주세무서 총무과장으로 공직을 시작한 20대 젊은이가 느낀 당혹감과 고뇌는 개발연대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달 하숙비가 1만8000원인데 사무관 봉급이 2만원이라니…. 첫 월급날 친구와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었는데 봉급을 다 털어넣고도 돈이 모자라 친구가 나머지 술값을 냈단다. 자장면 한 그릇 값이 140원이었는데 하루 출장비가 150원 정도였고 전화료, 우편요금, 고지서용지 구입비 등을 모두 담당자가 알아서 마련해야 했다. 프롤로그 첫 부분을 옮겨보자.
‘1970년 늦은 가을, 석양이 내리는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로 갔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트럭을 타고 먼지를 뽀얗게 덮어쓰고 도회지라고는 처음으로 가본 곳이 경주였다. 공직생활을 이곳에서 시작하게 되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1월 대통령직인수위 재경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오른쪽에서 세 번째).
해질녘 경주세무서에 당도하여 지프에서 내리니 직원들이 나와 반겨주었다. 총무과장 자리에는 하얀 커버가 씌워진 커다란 구식 회전의자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맞는 상황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앉기가 거북하여 엉거주춤하게 있다가 날이 저물어 퇴근했다. 총무과 계장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세무서 옆 고도여관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곤한 잠을 깨기도 전에 문을 두드리며 마흔이 넘은 행정계장이 아침 문안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공직은 시작되었다.’
이 책은 크게 1부 재정, 2부 금융, 3부 국제금융, 4부 1997 경제위기 등으로 구성됐다. 각 부는 소주제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1970년대 부가가치세(VAT) 도입의 실무지휘자였던 저자의 심경과 작업과정이 소상히 나타나 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세제(稅制)였다. 안정적인 세수 확보를 위해 납세의무자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거기에 세금을 물리는 원리다. 납세자의 저항이 만만찮았다.
2부에서 저자는 재무부 이재국장 시절의 고뇌를 고백했다. 고전의 연속이었단다. 가을 체육대회 때 축구에서 우승한 것이 가장 보람되고 기억하고픈 일이라고…. 이재국장 발령을 받은 직후 어느 지인이 “이재국장 전화는 항상 감청당하니 중요한 일은 감청을 피하기 위해 교환전화로 하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3부에서 저자는 주미대사관 재무관, 국제금융국장 시절을 회고했다. 한국 증권의 뉴욕증시 상장, 뉴욕 금융시장 동향 파악, 현지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과 감독, 외채의 조기상환 등이 주요 업무였다.
4부인 ‘1997 경제위기’엔 긴장감이 흐른다. 부도 위기에 몰린 한국경제에 관한 저자의 절실한 체험담이 담겼다. 위기가 닥치기 전년도인 1996년만 해도 정책당국자들은 안일함에 빠져 있었다. 저자는 “우리의 행적을 추적해보면 행동과 리더십은 실종되고 헛소리와 헛발질이 난무한 빗나간 정책들의 행진이었다. 눈앞에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랬다”고 반성했다. 1997년 3월 저자는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부임했다. 그해 말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온몸으로 막으려 했지만 도도한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저자는 외환위기의 원인을 한보철강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의 연이은 부도, 제2 금융권의 무차별적인 자금 회수, 부실채권의 급증과 대외신인도 급락, 외국 금융기관의 급속한 자금 회수, 총체적 리더십 결여 등으로 꼽았다. 이 책의 에필로그 일부를 음미해보자.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하염없이 창밖을 내다보다가 강가에 갔다.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중략) 출근시간에 집을 나왔고 퇴근시간에 들어갔다. 아무도 그런 고독과 고뇌를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할 때는 거꾸로 가슴에 비수가 되었다. 진실을 통해 역사의 교훈을 전하기 위한 명상록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 경제정책을 다루는 후배들과 경제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중심으로 살아 있는 경제학을 말하기 위해 썼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