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참패의 후유증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모양이다. 1월11일 대통합민주신당(이하 신당)이 손학규 대표 체제로 개편된 지 20여 일이 지난 지금도 당을 떠나는 의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손 대표 취임 초기 이해찬 유시민 의원 등 친노(親盧) 진영 의원들에 이어, 최근엔 충청권 의원들이 탈당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정적(政敵) 정동영 전 장관 측 의원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명분이야 어떻든 그들이 탈당을 고려하는 속내는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당의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당의 현재와 미래는 어쩌면 탄생 때부터 예견됐던 일인지도 모른다. 대선을 앞두고 시민사회 진영과 열린우리당 탈당파, 그리고 민주당 일부 세력이 결합해 급조한 ‘뿌리 없는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대선 패배 역시 예정된 절차는 아니었을까.
지난해 8월5일 신당 창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됐던 오충일(68·사진) 전 대표가 손 대표에게 자리를 물려주기까지 당을 이끈 기간은 160일. 30여 년간 목회자이자 시민사회운동계의 대표적 인물로 꼽혀온 그는 진보진영 단일화를 위해 그동안 여러 차례 정치권과 손잡았다. 하지만 그가 직접 정치권에 뛰어들어 당 대표를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그가 느낀 현실 정치는 남달랐을 터. 참패로 끝난 지난 대선에 대한 소회도 있을 법하다.
오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정치인들과의 만남을 자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별렀던 해외 순례를 떠나기에 앞서 건강검진을 받던 중 치아에 문제가 발견돼 임플란트 8개를 한꺼번에 심는 ‘대공사’를 하는 중이다.
“하루도 편한 날 없던 160일 … 전세계 종교순례 나설 것”
1월2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자택에서 만난 오 전 대표는 불편한 몸에도 그가 당 대표로서 겪은 지난 160일간의 뒷이야기와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정치비사를 4시간 넘도록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았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은 신랄했다.
질문은 자연스레 순례 이야기로 시작했다. 당 대표직을 내놓자마자 갑작스레 순례를 떠난다니.
“사실 18년 전부터 벼르던 일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km 정도 되는 길이 있다. 출발점이 아마 생장피드포르라고 하던가? 그곳에 다녀와서 총선을 끝내고 나면 본격적으로 전 세계 종교순례를 시작할 생각이다.”
-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뜻인가?
“일반인이든 종교인이든, 정치적 관심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정치가 잘못되면 모든 게 잘못된다. 어린아이의 영혼까지 잘못된다. 정치는 기독교적 신앙에 의해 마땅히 해야 할 미션이라 생각한다. 보수진영 쪽에선 정치목사, 심지어 깡패목사라고도 한다는데, 어떤 종교든 짖지 못하는 개처럼 존재한다면 용도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신당을 만드는 데 참여한 이유도 그런 차원에서다. 이제 어느 정도 할 일을 했으니 본령으로 돌아가려 한다. 다시 말하는데, 그렇다고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당 대표를 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정치적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다만 배지를 다는 정치가 아닐 뿐이다.”
- 대선기간에 당 대표를 맡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앞으론 대선을 코앞에 두고 당이 생기고 없어지는 일이 사라졌으면 한다. 선거를 앞두고 이합집산하다 보니 정치인 스스로도 정당정치를 가볍게 여기고, 국민도 정당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게 아닐까 싶다.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만든 이른바 민주세력도 현 정부에 대해 엄청난 실망감에 빠져 있다. 하지만 그 정치세력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정치적 대안과 구심점이 필요했다. 실제로 국민 중에는 아직도 민주개혁과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힘을 합쳐 대선까지 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 지난 대선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한 가장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현 정부는 저소득계층과 실업자, 일자리 창출 등의 문제를 사실상 방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25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공약에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게 완전히 사기다. 그때 내가 전국실업극복연대 이사장 아니었나. 그 이야기를 듣고 반가워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로 달려갔지만, 당선인은 없고 신계륜 당선인 비서실장만 있더라. 그래서 자료를 좀 보자고 했더니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누가 만든 안(案)이냐고 물으니 영국에서 공부하고 온 박·#52059;·#52059; 박사가 만들었다고 했다. 곧바로 그 박사에게 연락해 세실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그런데 서울대 출신의 한 젊은 박사를 데리고 나왔다. 그 두 사람한테 내용을 좀 보자고 하니까 아무것도 내놓지 못했다. 완전 백지 상태였다. 정말 충격이었다. 그 사람들 말이, 25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 정도였다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들에게 들은 바는 하나도 없고, 오히려 내가 유럽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얘기해줬더니 적어갔다. 그래서 이거 안 되겠구나 싶었다.”
- 노무현 정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올해 1월4일 청와대 신년 하례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말로 덕담을 대신했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는 화광은 했지만 동진은 못했다고 했다. 평화와 개혁 등 거대담론은 어느 정도 이뤘지만 백성과 함께 가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하려고 시도했다가 안 된 것과 아예 안 한 것은 많이 다르다. 국민도 안다. 내가 보기에 노무현 정부는 (백성과 함께 가려고) 별로 노력하지 않았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서민들이 기름값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럽게 지내는가. 화훼단지는 기름값이 없어 연탄을 가져다 쓰느라 난리다. 그런데 정부는 그냥 손놓고 있었다. 택시기사들이 사용하는 면세유도 없애버렸다. 집 하나 가지고 강남에서 20년 넘게 살던 사람에겐 어느 날 갑자기 800만원 넘는 세금을 매겼다. 그 사람은 이사 안 다닌 죄밖에 없다. 그런데 거기다 세금폭탄 발언을 하면서 약을 올릴 대로 올렸다. 이번 대선 때 표를 달라고 돌아다녀 보니 귀싸대기 안 맞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 노무현 정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면서 나중에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데….
“정부나 집권 여당이나 국가 민족 국민을 위해 노력하려는 의지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자기들이 계획하고 생각한 바를 실현하려 했던 것뿐이지, 국민이 원하고 요구하는 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말이 비슷한 것 같지만, 뜻은 분명히 다르다. 국민을 위해 뭘 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이 원하는 바를 하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참여정부라면서 참여가 안 됐던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너무 훌륭해 앞서서 가고 국민은 알지 못한다는 식의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오만했던 것이다.”
- 역대 대선 중 가장 큰 표차로 패배했다. 만일 손 대표가 대선 후보로 나왔다면 결과가 어땠을 것 같은가?
“손 대표는 개인적으로도 잘 아는 사이다. 정말 진보적인 사람이다.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진보와 보수가 뭔지를 배웠다. 장관, 국회의원,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하며 행정과 비즈니스를 골고루 경험했다. 그동안 배운 것이나 경력 등 여러 측면을 보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한나라당에 오래 있지만 않았어도 범민주세력의 지지를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 당내 경선 때 정동영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룰을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1000m 경주에서 정 후보가 200m 정도 앞에서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근본적으로 지난해 당내 경선은 언페어(unfair)했다. 손 대표가 내게 전화한 적이 있다. ‘목사님, 저 이제 절망했습니다. 오라고 해서 왔는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라고 하더라.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손 대표는 경선에서 진 이후 싹 털고 정 후보를 열심히 도왔다. 너무 열심히 하다가 목이 다 터져서 입원까지 했다. 그런데 이해찬 의원이 이제 와서 당이 의심스럽다며 갑자기 탈당한 것은 내가 보기에 너무 소아적이다. 큰 것을 봐야지, 자기가 개인적으로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결국 자신에게도 이롭지 않을 것이다.”
- 신당 창당 목표는 진보세력 대통합이었다.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보나?
“사실 우리는 문국현 후보를 지원했다. 가끔 전화해서 지지율이 몇 %포인트 올랐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지지율이 10%가 넘으면 창당하라고 그랬다. 합치려면 그 방법이 제일 나았다. 그런데 문 후보는 범여권이나 민주화세력과 생각이 달랐다. 처음부터 합칠 생각이 없었다. 그 사람의 생각은 새로운 씨앗을 뿌린다는 거였다. 지금 복기(復棋)해보면 참 아쉬운데, 공을 무척 들였다. 신당에 있던 시민사회단체 사람들과 문 후보는 다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다. 당 지도부도 문 후보와 늘 대화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 그를 우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적은 아니었지만, 우군도 아니었다. 그래서 모두 실망했다. 문 후보가 시민사회 진영의 단일화 요구를 거부하면서 그나마 주변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다 떠났다. 이제는 상당히 어렵게 됐다. 그는 현실 정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이번 대선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사람은 문 후보일 것이다.”
- 공천문제로 당내가 벌써 시끄럽다. 총선에 대한 전망은?
“솔직히 어렵다. 하지만 총선에 패배하더라도 당은 결코 흩어져선 안 된다. 철저하게 깨지는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반성하고 새롭게 쓰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민주세력을 대통합한 진정한 신당의 모습을 갖췄으면 좋겠다. 국민은 벌써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를 보면 수도권에서는 70%, 서울에서는 50% 이상이 견제세력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 걱정은 국민은 준비가 됐는데 야당은 준비가 안 됐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잘못을 반성하고 하루빨리 국민 곁으로 찾아가야 한다.”
- 앞으로 신당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분위기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상당한 발전이 있을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한두 분야에서 성과를 거둘 순 있지만 더 많은 분야에서 실패할 것 같다. 문제는 실패하는 부분이다. 과거 정권이 이룩해놓은 부분을 후퇴시키거나 축소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당은 단순한 견제야당이 아니라 수권야당이 돼야 한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는 어느덧 정치인의 틀을 벗어던지고 순수한 목회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다. 그래서 마지막 순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준비하는 순례의 길은 전 세계 모든 종교가 한자리에 모이는 ‘종교 올림픽’을 향한 길이다.
손 대표 취임 초기 이해찬 유시민 의원 등 친노(親盧) 진영 의원들에 이어, 최근엔 충청권 의원들이 탈당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정적(政敵) 정동영 전 장관 측 의원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명분이야 어떻든 그들이 탈당을 고려하는 속내는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당의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당의 현재와 미래는 어쩌면 탄생 때부터 예견됐던 일인지도 모른다. 대선을 앞두고 시민사회 진영과 열린우리당 탈당파, 그리고 민주당 일부 세력이 결합해 급조한 ‘뿌리 없는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대선 패배 역시 예정된 절차는 아니었을까.
지난해 8월5일 신당 창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됐던 오충일(68·사진) 전 대표가 손 대표에게 자리를 물려주기까지 당을 이끈 기간은 160일. 30여 년간 목회자이자 시민사회운동계의 대표적 인물로 꼽혀온 그는 진보진영 단일화를 위해 그동안 여러 차례 정치권과 손잡았다. 하지만 그가 직접 정치권에 뛰어들어 당 대표를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그가 느낀 현실 정치는 남달랐을 터. 참패로 끝난 지난 대선에 대한 소회도 있을 법하다.
오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정치인들과의 만남을 자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별렀던 해외 순례를 떠나기에 앞서 건강검진을 받던 중 치아에 문제가 발견돼 임플란트 8개를 한꺼번에 심는 ‘대공사’를 하는 중이다.
“하루도 편한 날 없던 160일 … 전세계 종교순례 나설 것”
1월26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자택에서 만난 오 전 대표는 불편한 몸에도 그가 당 대표로서 겪은 지난 160일간의 뒷이야기와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정치비사를 4시간 넘도록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았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은 신랄했다.
질문은 자연스레 순례 이야기로 시작했다. 당 대표직을 내놓자마자 갑작스레 순례를 떠난다니.
“사실 18년 전부터 벼르던 일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km 정도 되는 길이 있다. 출발점이 아마 생장피드포르라고 하던가? 그곳에 다녀와서 총선을 끝내고 나면 본격적으로 전 세계 종교순례를 시작할 생각이다.”
- 정치를 그만두겠다는 뜻인가?
대통합민주신당 오충일 전 대표가 1월11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당사에서 열린 대표 이취임식에서 당직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손학규 대표와 포옹하고 있다.
- 대선기간에 당 대표를 맡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앞으론 대선을 코앞에 두고 당이 생기고 없어지는 일이 사라졌으면 한다. 선거를 앞두고 이합집산하다 보니 정치인 스스로도 정당정치를 가볍게 여기고, 국민도 정당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게 아닐까 싶다. 이번엔 어쩔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만든 이른바 민주세력도 현 정부에 대해 엄청난 실망감에 빠져 있다. 하지만 그 정치세력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정치적 대안과 구심점이 필요했다. 실제로 국민 중에는 아직도 민주개혁과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힘을 합쳐 대선까지 가는 게 좋겠다 싶었다.”
- 지난 대선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한 가장 근본적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현 정부는 저소득계층과 실업자, 일자리 창출 등의 문제를 사실상 방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25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공약에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게 완전히 사기다. 그때 내가 전국실업극복연대 이사장 아니었나. 그 이야기를 듣고 반가워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로 달려갔지만, 당선인은 없고 신계륜 당선인 비서실장만 있더라. 그래서 자료를 좀 보자고 했더니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누가 만든 안(案)이냐고 물으니 영국에서 공부하고 온 박·#52059;·#52059; 박사가 만들었다고 했다. 곧바로 그 박사에게 연락해 세실레스토랑에서 만났다. 그런데 서울대 출신의 한 젊은 박사를 데리고 나왔다. 그 두 사람한테 내용을 좀 보자고 하니까 아무것도 내놓지 못했다. 완전 백지 상태였다. 정말 충격이었다. 그 사람들 말이, 25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 정도였다는 것이다. 결국 그 사람들에게 들은 바는 하나도 없고, 오히려 내가 유럽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얘기해줬더니 적어갔다. 그래서 이거 안 되겠구나 싶었다.”
- 노무현 정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올해 1월4일 청와대 신년 하례에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말로 덕담을 대신했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는 화광은 했지만 동진은 못했다고 했다. 평화와 개혁 등 거대담론은 어느 정도 이뤘지만 백성과 함께 가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하려고 시도했다가 안 된 것과 아예 안 한 것은 많이 다르다. 국민도 안다. 내가 보기에 노무현 정부는 (백성과 함께 가려고) 별로 노력하지 않았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서민들이 기름값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럽게 지내는가. 화훼단지는 기름값이 없어 연탄을 가져다 쓰느라 난리다. 그런데 정부는 그냥 손놓고 있었다. 택시기사들이 사용하는 면세유도 없애버렸다. 집 하나 가지고 강남에서 20년 넘게 살던 사람에겐 어느 날 갑자기 800만원 넘는 세금을 매겼다. 그 사람은 이사 안 다닌 죄밖에 없다. 그런데 거기다 세금폭탄 발언을 하면서 약을 올릴 대로 올렸다. 이번 대선 때 표를 달라고 돌아다녀 보니 귀싸대기 안 맞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 노무현 정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면서 나중에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데….
“정부나 집권 여당이나 국가 민족 국민을 위해 노력하려는 의지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자기들이 계획하고 생각한 바를 실현하려 했던 것뿐이지, 국민이 원하고 요구하는 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말이 비슷한 것 같지만, 뜻은 분명히 다르다. 국민을 위해 뭘 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국민이 원하는 바를 하고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참여정부라면서 참여가 안 됐던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이 너무 훌륭해 앞서서 가고 국민은 알지 못한다는 식의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오만했던 것이다.”
- 역대 대선 중 가장 큰 표차로 패배했다. 만일 손 대표가 대선 후보로 나왔다면 결과가 어땠을 것 같은가?
“손 대표는 개인적으로도 잘 아는 사이다. 정말 진보적인 사람이다.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진보와 보수가 뭔지를 배웠다. 장관, 국회의원,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하며 행정과 비즈니스를 골고루 경험했다. 그동안 배운 것이나 경력 등 여러 측면을 보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한나라당에 오래 있지만 않았어도 범민주세력의 지지를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 당내 경선 때 정동영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룰을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1000m 경주에서 정 후보가 200m 정도 앞에서 시작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근본적으로 지난해 당내 경선은 언페어(unfair)했다. 손 대표가 내게 전화한 적이 있다. ‘목사님, 저 이제 절망했습니다. 오라고 해서 왔는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라고 하더라.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도 손 대표는 경선에서 진 이후 싹 털고 정 후보를 열심히 도왔다. 너무 열심히 하다가 목이 다 터져서 입원까지 했다. 그런데 이해찬 의원이 이제 와서 당이 의심스럽다며 갑자기 탈당한 것은 내가 보기에 너무 소아적이다. 큰 것을 봐야지, 자기가 개인적으로 다르면 얼마나 다르다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결국 자신에게도 이롭지 않을 것이다.”
- 신당 창당 목표는 진보세력 대통합이었다.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보나?
“사실 우리는 문국현 후보를 지원했다. 가끔 전화해서 지지율이 몇 %포인트 올랐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지지율이 10%가 넘으면 창당하라고 그랬다. 합치려면 그 방법이 제일 나았다. 그런데 문 후보는 범여권이나 민주화세력과 생각이 달랐다. 처음부터 합칠 생각이 없었다. 그 사람의 생각은 새로운 씨앗을 뿌린다는 거였다. 지금 복기(復棋)해보면 참 아쉬운데, 공을 무척 들였다. 신당에 있던 시민사회단체 사람들과 문 후보는 다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다. 당 지도부도 문 후보와 늘 대화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 그를 우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적은 아니었지만, 우군도 아니었다. 그래서 모두 실망했다. 문 후보가 시민사회 진영의 단일화 요구를 거부하면서 그나마 주변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다 떠났다. 이제는 상당히 어렵게 됐다. 그는 현실 정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이번 대선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사람은 문 후보일 것이다.”
- 공천문제로 당내가 벌써 시끄럽다. 총선에 대한 전망은?
“솔직히 어렵다. 하지만 총선에 패배하더라도 당은 결코 흩어져선 안 된다. 철저하게 깨지는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반성하고 새롭게 쓰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민주세력을 대통합한 진정한 신당의 모습을 갖췄으면 좋겠다. 국민은 벌써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한 설문조사를 보면 수도권에서는 70%, 서울에서는 50% 이상이 견제세력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 걱정은 국민은 준비가 됐는데 야당은 준비가 안 됐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잘못을 반성하고 하루빨리 국민 곁으로 찾아가야 한다.”
- 앞으로 신당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분위기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상당한 발전이 있을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한두 분야에서 성과를 거둘 순 있지만 더 많은 분야에서 실패할 것 같다. 문제는 실패하는 부분이다. 과거 정권이 이룩해놓은 부분을 후퇴시키거나 축소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당은 단순한 견제야당이 아니라 수권야당이 돼야 한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는 어느덧 정치인의 틀을 벗어던지고 순수한 목회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다. 그래서 마지막 순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준비하는 순례의 길은 전 세계 모든 종교가 한자리에 모이는 ‘종교 올림픽’을 향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