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숭동 흥사단 건물 4층에 ‘한국요리와문화연구소’가 생겼다. 화요일 오전 연구소를 찾아갔더니 ‘전통 반가 음식반’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남자 둘에 여자 넷, 강의는 연구소 소장인 윤옥희 씨가 맡았다. 윤 소장은 서울 쌍문동에서 20년째 요리학원을 운영하다 이번에 전통요리 전문연구소(www.cfnc.co.kr 02-741-5287)를 차렸다. 이날 음식은 낙지전골, 토란병, 숙주채였다.
낙지전골은 음식점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지만 윤 소장이 만드는 낙지전골은 좀 달랐다. 우선 매운 낙지요리가 아니었다. 윤 소장은 “매운맛이 강해지면서 우리 음식 맛이 단조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덜 매우면 맛을 더 낼 수 있다는 얘기다.
튀지 않는 부재료 … 각각의 맛 절묘한 조화
먼저 낙지 4마리를 소금으로 문질러 씻은 뒤 미지근한 물에 담가 껍질을 벗긴다. 낙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는 역시 쇠고기다. 쇠고기는 150g을 채썰어 양념한다. 낙지전골을 만드는데 신선로처럼 다양한 재료가 들어갔다. 해삼은 국물에 풀어지지 않게 말린 것을 불려 사용한다. 해삼 100g, 조개관자 100g, 중새우 5마리는 껍질을 벗겨 잘 씻은 뒤 물기를 제거한다. 그 밖에 양파 300g, 미나리 200g, 다홍고추 10g이 들어간다. 남은 쇠고기는 곱게 다져 양념하고, 두부 30g을 꼭 짜서 으깨 소금, 후춧가루, 참기름으로 양념한 뒤 구슬만하게 완자를 빚어 밀가루와 달걀을 씌워 지진다. 이쯤 되면 낙지전골의 재료가 다 준비된 셈이다.
이제부터는 가장 중요한 국물 내는 절차만 남았다. 국물을 내는 데는 쇠고기 양지가 최고다. 양지를 국간장, 소금, 후춧가루를 넣고 1시간 넘게 끓여 국물을 낸다.
우리 음식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것이 전골과 찌개다. 전골이나 찌개나 한통속인데, 전골은 고급스럽고 덜 매운 느낌이 든다면 찌개는 좀 매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비빔밥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의 하나가 된 것처럼, 전골이나 찌개도 한국의 대표음식이다. 여러 가지 재료의 고유한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생선과 토마토를 넣고 국물 맛을 낸 지중해의 부야베이스에 견줄 일이 아니다.
윤 소장의 낙지전골은 어느 한 재료 맛이 튀지 않게, 낙지를 제외하고는 한 번씩 익혀낸 상태로 전골냄비에 들어간다. 조개관자는 기름 두르지 않은 번철에 살짝 볶고, 새우는 끓는 소금물에 데치고, 미나리도 소금물에 데쳐낸 뒤 색색이, 켜켜이 전골냄비에 넣는다. 완자와 지단을 올린 뒤 양지국물을 붓고 조심스럽게 끓여내면 낙지전골이 완성된다.
국물을 맛보니 그 은근하고 깊은 맛에 숟가락이 입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감탄사가 나온다. 요즘 음식점 요리는 맵고 짜고 달고, 맛이 강해야 맛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윤 소장이 만든 반가(班家)의 음식은 맛이 강하진 않지만 재료의 맛을 찾아내고, 그 맛들이 잘 어울리도록 배치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