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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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3억 보통사람들의 힘겨운 삶

  •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www.gong.co.kr

    입력2007-12-12 17: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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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13억 보통사람들의 힘겨운 삶

    <b>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b><br>서명수 지음/ 아르테 펴냄/ 312쪽/ 1만5000원

    중국의 보통사람들, 즉 서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흔히 중국의 서민을 ‘라오바이싱(老百姓)’이라 부르는데 개혁개방으로 인한 중국 사회의 계층분화 이전만 해도 중국 사회는 공산당원, 군인, 라오바이싱으로 구성된 계급사회였다. 물론 개혁개방 이후 중산층이 생겨나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신사회 계층’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중국 사회의 중심에는 라오바이싱들이 있으며, 이들은 13억명이나 된다.

    지금까지 출간된 중국 관련 서적들은 대부분 중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지금 소개하는 서명수의 ‘인민복을 벗은 라오바이싱’은 기존의 중국 관련 서적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권력자들이 아닌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중국 사회를 조망한 책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발로 뛴 중국 사회의 현장 리포트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단순히 스쳐 지나가듯 그린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에 머물면서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와 보고 들은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한 중국인 친구의 이야기가 집필 단서가 됐다고 말한다. 유난히 중국 정부와 공산당을 불신했던 그 친구는 “돈을 벌어야 한다. 쩡치엔! 쭈안치엔!(돈을 벌어라!) 그것이 내 인생 목표다”라고 털어놓는다. 왜냐하면 당과 정부는 늘 라오바이싱 위에 군림하는 믿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국인은 타인의 말을 믿지 않는 불신이 강하지만 이 친구는 정도가 더했다. 그는 “세상에 믿을 것은 자신밖에 없다. 길을 가다 강도를 당해도 당이나 공안이 구해주지 않는다. 내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자신의 믿음을 털어놓는다.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됐는데, 1부는 중국 보통사람들의 생생한 생활상이 정리돼 있다. 이렇게 실명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공개하면 행여 그들에게 불이익은 없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실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친구가 된 ‘지붕 위의 예술가 장지엔화’, ‘삼륜차 아저씨 티엔 선생’ 그리고 우리말로 첩에 해당하는 다산저를 지원하는 젊은 아가씨들, 문화대혁명(문혁)을 넘어 살아남은 위자오핑 교수 내외 등의 이야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중국 정치·경제·사회·역사의 면면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서민의 애환과 중국 사회의 치부를 작품 소재로 삼아 명성을 쌓은 장지엔화는 중국의 관리와 평민 관계를 즐겨 다뤄왔다. 그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는 미술평론가 슈양은 “한나라 때는 8000명의 평민이 한 명의 관리를 먹여 살렸고 당나라 때는 3000명, 청나라 때는 1000명이 먹여 살렸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40명의 라오바이싱이 한 명의 공무원을 부양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여전히 중국 사회는 공무원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사회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허난성 농민의 아들인 장지엔화의 개인적 애환은 중국 농민들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2006년 농민 1인당 순수입은 3255위안(약 40만원)으로, 도시 주민의 가처분소득인 1만493위안(약 125만원)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월 300위안도 벌지 못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농민들은 막노동 자리라도 잡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1억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흔히 ‘농민공’이라 부른다. 농민공이 되면 최소한 농촌 수입의 3배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삼륜차를 이용하면서 만나게 된 티엔 씨는 도시 서민의 실생활을 더욱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중국에는 다른 나라들에서 볼 수 없는, 도시와 농촌을 철두철미하게 분리하는 ‘후커우(戶口) 제도’라는 게 있다. 1958년 제정된 호구등기 조례에 따라 농촌과 도시 주민을 구분하고, 농촌 주민의 도시 이주를 금지하는 제도다. 도시 주민과 농촌 주민을 차별하기 위한 이 제도는 일종의 현대판 신분제도라고 보면 된다. 얼마 전 국내에 소개된 하진 보스턴대 교수의 소설 ‘광인’이나 2006년 개봉돼 인기를 끈 영화 ‘런짜이 베이징(人才北京)’도 베이징 후커우를 가진 사람과 이방인의 간격을 그리고 있다.

    저자가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노부부 교수는 문혁이 한 부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혁이 일어나기 한 해 전 대학에 몸담고 있던 위자오핑 할아버지와 탕샤오츠 할머니의 결혼은 ‘중국 최고의 엘리트 커플’로 사람들의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1966년 시작된 문혁이란 광란은 그들의 삶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겼다. 77년 마오쩌둥 주석이 사망하면서 그들은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하방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지식인들에 대한 형벌은 “내가 살아 있는 것은 정말 우연입니다”라는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을 정도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중국 서민들의 내밀한 부분을 엿볼 수 있다. 화려한 성장이란 외관 아래 덮여 있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사회와 중국인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책읽기를 끝낼 즈음이면 그래도 이 땅에서 이 시대에 나서 살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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