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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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족집게이거나 여론 왜곡하거나

대선 기간 중 여론조사에 너무 의존 … 전화면접 표본 오용과 남용 위험 커

  • 허명회 고려대 교수·통계학

    입력2007-12-12 1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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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심 족집게이거나 여론 왜곡하거나

    한 여론조사기관 조사원들이 전화를 통해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

    12월19일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우리 모두 이번 선거가 어떠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투표 일주일 전까지 수많은 언론이 끊임없이 조사하고 발표했던 여론조사 결과가 과연 실제 여론을 얼마나 반영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번 대선 기간의 여론조사는 역대 어느 선거 때보다 위력을 발휘했다. 여론조사 수치에서 밀린 여러 대선후보가 경선과정에서 꿈을 접어야 했고, 본선에 진출한 후보들은 투표함이 열리는 순간까지 여론조사의 추이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론조사 결과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이 각 언론사의 의뢰를 받아 시행하는 여론조사는 대부분 전화면접 조사방식으로 이뤄진다. 조사대상 전화번호 표본은 전화번호부에서 추출하며, 조사는 낮에 시작해 당일 저녁 9시 정도에 종료된다. 이 같은 조사방법은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20% 응답률 관측된 표본은 빙산의 일각

    첫 번째는 전화번호부에 모든 가구가 등재돼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유선전화가 없는 가구나 휴대전화만 있는 가구는 물론,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전화번호부에 등재하지 않은 가구도 있다. 이런 가구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의 40%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은 원천적으로 조사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현재 같은 전화면접 조사방식으로는 표본을 모두 조사(전수조사)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국민 60% 정도의 의견만 모으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조사시간이 낮에 집중되면서 그 시간에 직장이나 업소 등 집 밖에 있는 회사원과 자영업자가 조사대상에서 배제된다는 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이들이 우리 사회의 적극적인 여론 주도층이라는 점이다.

    조사기관들이 성별과 연령대에 할당을 줘 표본을 뽑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 덕에 결과가 특정 성별과 연령대에 치우치진 않는다. 이런 경우 같은 성별과 동일한 연령대 사람들이 직업에 상관없이 똑같은 의견을 갖는다면 지금의 여론조사 방식에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정치적 성향이 직업과 무관하다는 가설이 검증된 적은 없다. 따라서 직업에 상관없이 성별과 연령대에 맞춰 조사된 여론조사 결과를 무작정 발표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위험이 크다.

    조사 내용의 질도 문제다. 전문가들이 조사의 질을 따질 때 최우선적으로 보는 것이 응답률이다. 응답률은 유효한 표본번호 가운데 실제 응답을 얻어낸 표본 수의 비율로 정의된다. 따라서 집이 비어 통화가 안 된 가구가 많거나 통화가 됐다 해도 통화자의 거절이 빈번한 경우에는 응답률이 낮아진다.

    현재 대다수 전화면접 조사의 응답률은 20%를 넘지 못한다. 응답률이 20%라면, 5000명을 목표로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현실적 이유로 4000명은 조사되지 않았고 1000명만 조사됐음을 의미한다. 관측된 표본은 빙산의 일각인 것이다.

    물론 조사되지 않은 사람들이 조사에 응한 사람들과 의견이 같다면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것도 아무런 검증 없이 믿기에는 위험한 가설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화면접 조사에서는 면접에 응한 사람과 거절한 사람의 수가 엇비슷하다. 조사를 거절하는 이유는 개인주의적 성향에서부터 최근 정치 판도에 대한 못마땅한 심리까지 다양한데, 이에 대해 여론조사는 속수무책이다.

    합당한 활용, 과학화와 사회적 성숙 필요

    한 예로 이른바 ‘탄핵’ 정국에서 치러진 2004년 총선의 경우 여론조사에서는 참패가 예상되던 한나라당이 선전(善戰)한 점을 들 수 있다. 그 원인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보수층이 조사에서 침묵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현재 우리가 접하는 여론조사에는 작지 않은 구멍들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주요 정당의 경선과정에서 당원들이 응당 해야 할 책무의 한 몫을 여론조사에 넘겼고, 하루 만에 전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읽어 숫자로 나타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요구한다. 여론조사를 혹사하고 있는 것이다. 과일 깎는 칼로 연필도 깎고 대들보도 다듬으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여론조사를 사회적 도구로 잘 키워나가려면 여론조사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이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을 꼽으라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실상 투표라고 할 수 있는 정당 경선에 여론조사를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여론조사를 오용하는 것이다. 둘째, 조사를 2~3일간 좀더 충실히 해야 한다. 당일조사에는 재택자 편향이 불가피하게 개입된다. 서두르지 말자. 셋째, 조사 자료의 질을 따져 양질의 자료에는 그에 상응하는 값으로 보상해야 한다. 품질로 경쟁해야 하는데 현재는 저가 경쟁뿐이다.

    여론조사의 진정한 과학화를 위해서는 개인들이 해야 할 일도 있다. 첫째, 주요 언론사가 후원하고 조사 전문기관이 수행하는 조사라면 성실히 협조해주길 부탁한다. 모든 개인이 ‘나 하나쯤이야’라며 조사를 기피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여론조사 결과는 모두가 공유해야 할 중요한 사회 정보다.

    둘째, 조사 결과를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 조사 결과가 소수점 아래 한 자리까지 정확한 것은 아니다. 확률적으로 예상되는 오차범위가 있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오차도 숨어 있다. 공표된 오차범위에 더 여유를 두면서 조사수치를 읽을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 보도기사를 쓰는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다음 두 가지를 취재해보길 권한다. 조사기관에 오후 6~7시 이전과 이후 조사된 응답자 수를 물어보라. 평일에 수행한 조사에서 낮시간대 응답자 수가 전체 표본의 50%를 넘는다면 이는 편향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조사된 응답자 수를 얻기까지 조사를 거부한 사람이 몇 명인지를 물어보라. 만일 그 수가 상당하다면 거부자의 사회적 심리가 무엇인지 숙고해 기사를 써야 한다.

    “오용과 남용을 막자”는 말은 약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마법처럼 떠오른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여론조사의 과학화와 사회적 성숙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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