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의 로렌스’
로렌스가 뒤처진 동료를 찾아 사막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올 때 화면 가득 펼쳐진 사막에서 로렌스의 모습은 처음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다 겨우 한 점이 되고, 그 점이 점점 커지면서야 인간의 형체를 드러내는 장면은 사막이라는 압도적인 공간 속의 인간의 상대적인 왜소함을 대비시켰다.
그렇게 광대할 뿐 아니라 척박한 땅. 이 저주의 땅에서 인간의 삶은 극한의 지경으로 내몰린다. 그래서 인간은 이곳에서 신을 찾게 되는 걸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사막에서 태어났다. 성경이 ‘광대하고 무서운 광야’라고 한 것처럼 사막은 공포와 외경의 대상이었기에 종교적 신앙을 낳은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이 사막에서 수행했던 것도 신앙의 본향에 대한 귀향이나 다름없다.
만약 그런 사막에 속세의 낙원이 있다면 그 같은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그러나 그 아이러니에 마력이 숨어 있다는 것을 라스베이거스가 보여줬다. 고립되고 혹독한 환경의 사막에 세워진 환락의 오아시스이기에 더욱 사람들을 끌어당긴다는 것을.
라스베이거스의 출생기랄 수 있는 영화 ‘벅시’에서 주인공 벅시는 애초 도박장을 하나 세우려는 생각 정도였다. 억수 같은 비로 엉망이 된 호텔의 개막식 날 비참하게 죽어갈 때 벅시는 지금과 같은 거대한 도시가 세워지리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 중동 사막 속 작은 도시 두바이의 성공스토리가 세계적으로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그것은 실용성 이전에 사막이라는 공간에 대해 갖는 두려움과 외경심이라는 상징 코드를 공략했기에 가능했던 건 아닐까.
두바이의 성공에는 단순한 토건적 발상 이상의 미학적 상상력과 인문적 안목이 엿보인다. 그것이 오일달러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