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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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의 내시

  • 한지엽 한지엽비뇨기과 원장

    입력2007-11-07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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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과 나’의 내시
    퇴근 후 TV 리모컨을 누르면 여기도 사극, 저기도 사극이다. 심지어 광고도 사극을 패러디한다. 그 많은 사극 가운데 ‘왕과 나’는 기존 사극의 아웃사이더였던 내시(內侍)를 전면에 내세워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시는 권력자였다. 권력 최상층 옆에서 손바닥을 비비며 굽실대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왕의 숨겨진 조언자이자 보디가드로서 국정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존재였다. 그 때문에 가난한 서민에게 내시는 신분 상승과 가난 탈출의 매력적인 통로였다. 내시는 우리나라와 중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서양에서도 왕과 귀족들이 자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침실을 지키는 자’를 두었다고 한다.

    내시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가 있었으니, 자신의 양물(陽物)을 스스로 포기해 고자(鼓子)가 되는 것이었다. 왕의 여자를 범접하거나 궁녀와 놀아나는 일이 없도록 그 싹을 없애는 방법이었다. 이를 ‘거세한다’고 한다.

    사실 ‘거세’는 음경을 제외하고 고환만 절제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 환관과 달리 우리나라 내시는 고환만 없을 뿐 음경은 있었기에 성관계가 가능했다고 한다. 고환은 없을지언정 음경은 남아 있어 이론적으론 발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단지 사춘기 이전부터 고환이 없었다면 남성호르몬 기능이 약화돼 음경 발육이 부족하고 자연 발기 횟수가 줄어들 뿐이다.

    내시가 이 땅에서 공식적으로 없어진 것은 한일병합이 있기 두 해 전인 1908년이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모든 관부를 없애면서 내시부를 폐지했기 때문에 내시들은 모두 궁궐을 떠나야 했다. 아울러 지구상에서 내시가 사라지자, 아이러니하게도 남성들은 권력을 위해 양물을 자르는 게 아니라 키우는 데 전력투구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양물이 클수록 성적 쾌감은 물론, 강한 마찰력으로 임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여겼다. 그래서 양물이 작은 남성은 목욕탕에 가기 싫어할 만큼 콤플렉스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현대 첨단의학은 남성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준다. 누구나 간단한 수술로 자신의 양물을 원하는 만큼 대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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