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부도밭 부근 편백나무 숲에 무리진 ‘꽃무릇’.
꽃무릇은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그러나 꽃의 생김새는 수선화보다는 오히려 백합을 닮았다. 흔히들 ‘꽃무릇’ 또는 ‘상사화’라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돌 틈에서 돋는 달래(또는 무릇)’라는 뜻의 ‘석산(石蒜)’이다. 게다가 진짜 상사화는 따로 있다. 상사화, 개상사화, 위도상사화, 백양꽃 등의 상사화류는 대체로 음력 7월 칠석을 전후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반면 9월 초순 뿌리에서 꽃대가 올라온 꽃무릇은 백로(양력 9월8일경) 무렵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꽃이 진 뒤에 돋아난 잎은 모진 겨울을 이겨내지만 이듬해 봄이면 허망하게 시들어버린다. 이처럼 꽃무릇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진한 그리움만 삭이는 꽃이라 해서 ‘상사화(相思花)’로 잘못 알려졌다.
선운사의 꽃무릇은 대개 9월20일 전후로 절정의 개화상태를 보인다. 그러나 윤달이 낀 지난해에는 9월 말에 절정을 보였고, 늦더위와 가을장마가 기승을 부린 올해는 추석 연휴 무렵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선운산 골짜기에 촘촘히 뿌리내린 꽃무릇이 만발할 즈음이면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 고목이 있는 주차장 부근의 개울가부터 도솔암 마애불 주변에 이르기까지 수 킬로미터의 붉은 띠가 드리워진다. 특히 선운사 담장 앞쪽의 냇가와 부도밭 주변에 빽빽하게 들어찬 꽃무릇 군락은 현란하고 몽환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한꺼번에 핀 꽃무릇의 붉은 꽃은 아름답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하다.
꽃구경에 눈멀고 마음까지 빼앗긴 사람들은 대개 절 구경은 뒷전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천년고찰 선운사와 도솔암을 제대로 보지 않고 발길을 돌릴 수는 없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한때 3000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는 대가람이었다고 하나 오늘날에는 천왕문, 만세루, 대웅전, 영산전 등 10여 채의 건물과 4개 암자만 남을 정도로 위축됐다. 하지만 가람의 전체적인 규모가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추석 전후 선운사 ‘꽃무릇’ 장관 … 세계 최고 고인돌 꼭 들러볼 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고인돌 유적(위). 학원농장의 광활한 메밀밭.
이 코스는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길의 조망이 빼어나고, 낙조대에서는 장려한 서해의 일몰까지 감상할 수 있어 놓쳐서는 안 될 장소다. 게다가 신라 진흥왕의 수도처라는 진흥굴과 TV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였던 용문굴을 비롯해 민불,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 도솔암, 마애불(보물 제1200호), 낙조대, 천마봉 등의 다양한 절경과 역사 유적을 감상할 수 있다. 산행 소요시간도 3~4시간이면 충분하다.
선운사 골짜기에서 꽃무릇의 현란한 잔치가 연일 계속되는 동안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의 학원농장에서도 하얀 메밀꽃이 소금을 흩뿌린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면적이 무려 12만 평에 이른다는 학원농장의 메밀밭은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평창 봉평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봉평의 메밀밭은 대체로 평평한 들녘이나 비좁은 산비탈로 이뤄져 있지만, 학원농장 메밀밭은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구릉지대에 자리잡았다. 아래쪽에서 바라보면 하얀 메밀밭과 푸른 가을하늘이 맞닿은 것처럼 보인다. 또한 메밀꽃이 가장 흐드러지게 피는 9월15~30일에는 마치 흰 눈에 뒤덮인 설원 같은 진풍경이 연출된다. 2005년도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웰컴 투 동막골’의 메밀밭 장면도 바로 여기서 촬영됐다.
선운사와 학원농장을 모두 둘러본 뒤에도 시간여유가 있거든 무장읍성(사적 제346호)과 고인돌 유적을 둘러볼 만하다. 한적한 면소재지 시골마을인 무장읍 성내리에 자리한 무장읍성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봉기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도 읍성 안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의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고, 주변에는 석성이 둘러쳐져 있다. 늘 인적이 뜸한 무장읍성은 여유 있게 소요(逍遙)하며 고즈넉한 정취를 즐기기에 좋다.
고창군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고인돌 밀집지역이다. 특히 서로 이웃한 고창읍 매산리, 죽림리, 도산리와 아산면 상갑리 일대에만 약 450기의 고인돌이 있다. 이 일대 길가나 산비탈 솔숲에 나뒹구는 바위덩이는 대부분 고인돌로 봐도 좋을 만큼 고인돌이 많다. 게다가 지상석곽식, 남방식, 북방식 등 고인돌의 양식도 다양해서 ‘야외 고인돌박물관’이라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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