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패션잡지 ‘보그’의 한국판 6월호 표지 인물로 송혜교가 등장했다. 한국판이기는 하지만 ‘보그’에서 한국인을 표지에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표지 사진은 조금 의외다. 일본의 게이샤도, 한국의 전통적 기생도 아닌 이상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외국의 사진작가들이 촬영하면서 서양인이 바라보는 동양의 전통 기생 모습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한 ‘보그’의 표지 사진은 실망스럽다. 옛 조선기생의 모습은 얼마나 패셔너블하고 화려한가.
영화 ‘황진이’의 개봉이 6월6일로 잡히면서 타이틀롤을 맡은 송혜교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5월28일에는 북한 금강산문화회관에서 ‘황진이’의 시사회가 열렸다. 군사, 관광 분야의 북한 측 주요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한국 영화 최초의 북한 시사회였다. 이날 송혜교와 유지태, 장윤현 감독 등이 무대인사에 참석했다.
‘황진이’의 주인공으로 송혜교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미스 캐스팅까지는 아니지만 환상의 궁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황진이’ 제작팀이 북한의 박연폭포와 금강산 촬영을 위해 북측 인사들과 접촉했을 때도 그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남한 여배우 중에서는 신애가 더 적합하지 않겠느냐고 북측 관계자들이 의견을 밝혔다는 것이다.
제작진이 송혜교를 선택한 것은 제작비가 100억원 가까이 들어가는 이 영화의 시장을 한국에 국한하지 않고 동남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냐는 쑥덕공론도 있었다. 그만큼 기존의 송혜교에게서 황진이의 이미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가을동화’ ‘올인’ ‘풀하우스’ 등 그녀가 출연해 성공한 TV 드라마를 봐도 그렇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황진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긍하 감독의 ‘황진이’(1957년)에서 도금봉이 타이틀롤을 맡은 뒤 ‘황진이의 일생’(1961년)에서 강숙희가, 정진우 감독의 ‘황진이의 첫사랑’(1969년)에서 김지미가 황진이로 출연했다. 배창호 감독의 ‘황진이’(1986년)에서는 장미희가, MBC 드라마 ‘여인열전’에서는 이미숙이 연기했다. 최근에는 KBS 드라마 ‘황진이’에서 하지원이 황진이 역을 맡았다.
양반들 농락하는 모습·기생의 섹시미 함께 보여줬더라면
이렇게 각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이 황진이를 연기했지만 색깔은 모두 다르다. 황진이는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큰 인물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15세기 조선 유교사회에서는 이질적인 인물이었던 황진이. 그녀는 양반집 딸로 태어나 시 서화 가무에 능했으나 기생의 길을 선택해 당대를 휘어잡았다. 지족선사를 유혹해 파계시키고 왕실 인척인 벽계수를 농락했으며 당대 최고 선비 서경덕과 교류한 일화 등 야사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만 해도 눈부시다.
도금봉은 당대 글래머 스타답게 사내들을 농락하는 요부로서의 황진이를 보여줬고 서구형 미인 김지미는 청초한 모습을, 하지원은 예인 황진이를 보여줬다. 송혜교가 그리는 황진이는 어떤 색깔일까? 처음으로 영화 ‘황진이’가 공개되는 기자시사회에서 송혜교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무대인사를 했다. 자신이 연기한 황진이에 대해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TV 드라마를 통해 보여진 황진이의 이미지가 아직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송혜교의 자신감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긴장했다. 드라마가 방영될 때가 영화 촬영 중이었기 때문에 자주는 못 보고 가끔씩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드라마가 기생 황진이, 예인 황진이를 보여줬다면 우리는 인간 황진이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송혜교의 ‘황진이’는 15세 이상 등급을 받았다. 노출이나 선정적 장면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유지태와의 베드신에서 앉아 있는 뒷모습이 슬쩍 보인 게 전부다. 송혜교의 황진이는 철저하게 신분과 계급사회에 저항하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원작이 북한 작가 홍석중(그는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손자로 현재 북한문학의 거두다)의 ‘황진이’인 것도 이유가 있지만, 시 서화 가무에 능했던 예인으로서 황진이는 거의 사라지고 사대부 남성들을 농락한 요부 이미지는 축소됐으며, 강조된 것은 양반가 서녀의 출생신분을 알게 된 뒤 스스로 기생이 돼 계급사회에 저항하는 모습이다.
캐스팅 제의를 받은 송혜교는 장 감독에게 “왜 많은 여배우 가운데 저를 선택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감독은 “송혜교에게서는 뭔가 터질 듯 말 듯한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터뜨려주고 싶다”고 답했고, 그 말에 ‘넘어가’ 캐스팅에 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 속에서 너무 진지하다. 장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계급사회에서 갈등하는 황진이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좀더 탄력적인 해석으로 양반계급을 조롱하고 농락하는 모습이나 기생으로서 화려한 모습도 보여주며 주제를 전달했다면 훨씬 풍부한 황진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송혜교의 황진이는 반쪽 모습만 그리는 데 그쳤다.
장윤현 감독의 ‘황진이’는 홍석중의 소설을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한 것이기에 소설이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인 계급적 갈등을 부각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황진이의 소꿉동무이자 노비였고 첫 남자이기도 한 놈이(유지태 분)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명한 지족선사 파계 일화는 아예 등장 안 해
영화 ‘황진이’는 계급갈등을 부각한 원작의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고 오락가락한다. 놈이를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이 강조되면 명월의 순정적 분위기가 짙어진다. 지배계급의 위선을 폭로하고 체제에 도전하는 것과 한 남자를 향한 순정적 마음이 양립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황진이의 캐릭터 구축이 좀더 탄력적이어야 했다.
비단 세 필이면 품을 수 있는 기생 신분인 명월이의 위치는 지나치게 엄숙하게 그려진다. 베드신도 약해 기생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 또한 영화에서 황진이가 파계시킨 것으로 유명한 지족선사는 등장하지도 않고, 서화담과의 일화도 짧게 처리된다. 그저 지배계급의 위선을 폭로한 벽계수와의 일화가 강조될 뿐이다.
이렇듯 우리가 알고 있던 에피소드들을 잊어버리기에는 그것들의 잔향이 강하다. 영화가 기존 에피소드를 재현하면서도 캐릭터를 탄력적으로 구축해 시대에 저항하는 황진이의 모습을 드러냈더라면 인물을 한층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아트디렉터 정구호가 만든 무채색 의상이나 인테리어, 소품이 품격을 빚어내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들도 황진이 캐릭터의 무거움에 일조한다는 생각이 든다.
‘황진이’는 송혜교의 두 번째 영화다. 그녀의 첫 번째 영화 ‘파랑주의보’는 흥행에 실패했다. 두 번째 영화에서는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할까? 다른 어느 때보다 거센 올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서 ‘황진이’가 한국 영화의 버팀목으로서 제구실을 다하게 될까?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송혜교는 이제 스물다섯이다. 그가 지금까지 이룬 것보다는 앞으로 만들어나갈 것이 훨씬 많다. ‘황진이’ 연기는 그가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는 하나의 확인이다.
영화 ‘황진이’의 개봉이 6월6일로 잡히면서 타이틀롤을 맡은 송혜교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5월28일에는 북한 금강산문화회관에서 ‘황진이’의 시사회가 열렸다. 군사, 관광 분야의 북한 측 주요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한국 영화 최초의 북한 시사회였다. 이날 송혜교와 유지태, 장윤현 감독 등이 무대인사에 참석했다.
‘황진이’의 주인공으로 송혜교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미스 캐스팅까지는 아니지만 환상의 궁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황진이’ 제작팀이 북한의 박연폭포와 금강산 촬영을 위해 북측 인사들과 접촉했을 때도 그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남한 여배우 중에서는 신애가 더 적합하지 않겠느냐고 북측 관계자들이 의견을 밝혔다는 것이다.
제작진이 송혜교를 선택한 것은 제작비가 100억원 가까이 들어가는 이 영화의 시장을 한국에 국한하지 않고 동남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냐는 쑥덕공론도 있었다. 그만큼 기존의 송혜교에게서 황진이의 이미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가을동화’ ‘올인’ ‘풀하우스’ 등 그녀가 출연해 성공한 TV 드라마를 봐도 그렇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황진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긍하 감독의 ‘황진이’(1957년)에서 도금봉이 타이틀롤을 맡은 뒤 ‘황진이의 일생’(1961년)에서 강숙희가, 정진우 감독의 ‘황진이의 첫사랑’(1969년)에서 김지미가 황진이로 출연했다. 배창호 감독의 ‘황진이’(1986년)에서는 장미희가, MBC 드라마 ‘여인열전’에서는 이미숙이 연기했다. 최근에는 KBS 드라마 ‘황진이’에서 하지원이 황진이 역을 맡았다.
양반들 농락하는 모습·기생의 섹시미 함께 보여줬더라면
이렇게 각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이 황진이를 연기했지만 색깔은 모두 다르다. 황진이는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큰 인물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15세기 조선 유교사회에서는 이질적인 인물이었던 황진이. 그녀는 양반집 딸로 태어나 시 서화 가무에 능했으나 기생의 길을 선택해 당대를 휘어잡았다. 지족선사를 유혹해 파계시키고 왕실 인척인 벽계수를 농락했으며 당대 최고 선비 서경덕과 교류한 일화 등 야사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만 해도 눈부시다.
도금봉은 당대 글래머 스타답게 사내들을 농락하는 요부로서의 황진이를 보여줬고 서구형 미인 김지미는 청초한 모습을, 하지원은 예인 황진이를 보여줬다. 송혜교가 그리는 황진이는 어떤 색깔일까? 처음으로 영화 ‘황진이’가 공개되는 기자시사회에서 송혜교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무대인사를 했다. 자신이 연기한 황진이에 대해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TV 드라마를 통해 보여진 황진이의 이미지가 아직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면 송혜교의 자신감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긴장했다. 드라마가 방영될 때가 영화 촬영 중이었기 때문에 자주는 못 보고 가끔씩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드라마가 기생 황진이, 예인 황진이를 보여줬다면 우리는 인간 황진이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송혜교의 ‘황진이’는 15세 이상 등급을 받았다. 노출이나 선정적 장면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유지태와의 베드신에서 앉아 있는 뒷모습이 슬쩍 보인 게 전부다. 송혜교의 황진이는 철저하게 신분과 계급사회에 저항하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원작이 북한 작가 홍석중(그는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손자로 현재 북한문학의 거두다)의 ‘황진이’인 것도 이유가 있지만, 시 서화 가무에 능했던 예인으로서 황진이는 거의 사라지고 사대부 남성들을 농락한 요부 이미지는 축소됐으며, 강조된 것은 양반가 서녀의 출생신분을 알게 된 뒤 스스로 기생이 돼 계급사회에 저항하는 모습이다.
캐스팅 제의를 받은 송혜교는 장 감독에게 “왜 많은 여배우 가운데 저를 선택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감독은 “송혜교에게서는 뭔가 터질 듯 말 듯한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터뜨려주고 싶다”고 답했고, 그 말에 ‘넘어가’ 캐스팅에 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영화 속에서 너무 진지하다. 장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계급사회에서 갈등하는 황진이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좀더 탄력적인 해석으로 양반계급을 조롱하고 농락하는 모습이나 기생으로서 화려한 모습도 보여주며 주제를 전달했다면 훨씬 풍부한 황진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송혜교의 황진이는 반쪽 모습만 그리는 데 그쳤다.
장윤현 감독의 ‘황진이’는 홍석중의 소설을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한 것이기에 소설이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인 계급적 갈등을 부각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황진이의 소꿉동무이자 노비였고 첫 남자이기도 한 놈이(유지태 분)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명한 지족선사 파계 일화는 아예 등장 안 해
영화 ‘황진이’는 계급갈등을 부각한 원작의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고 오락가락한다. 놈이를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이 강조되면 명월의 순정적 분위기가 짙어진다. 지배계급의 위선을 폭로하고 체제에 도전하는 것과 한 남자를 향한 순정적 마음이 양립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황진이의 캐릭터 구축이 좀더 탄력적이어야 했다.
비단 세 필이면 품을 수 있는 기생 신분인 명월이의 위치는 지나치게 엄숙하게 그려진다. 베드신도 약해 기생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 또한 영화에서 황진이가 파계시킨 것으로 유명한 지족선사는 등장하지도 않고, 서화담과의 일화도 짧게 처리된다. 그저 지배계급의 위선을 폭로한 벽계수와의 일화가 강조될 뿐이다.
이렇듯 우리가 알고 있던 에피소드들을 잊어버리기에는 그것들의 잔향이 강하다. 영화가 기존 에피소드를 재현하면서도 캐릭터를 탄력적으로 구축해 시대에 저항하는 황진이의 모습을 드러냈더라면 인물을 한층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아트디렉터 정구호가 만든 무채색 의상이나 인테리어, 소품이 품격을 빚어내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들도 황진이 캐릭터의 무거움에 일조한다는 생각이 든다.
‘황진이’는 송혜교의 두 번째 영화다. 그녀의 첫 번째 영화 ‘파랑주의보’는 흥행에 실패했다. 두 번째 영화에서는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할까? 다른 어느 때보다 거센 올 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서 ‘황진이’가 한국 영화의 버팀목으로서 제구실을 다하게 될까?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송혜교는 이제 스물다섯이다. 그가 지금까지 이룬 것보다는 앞으로 만들어나갈 것이 훨씬 많다. ‘황진이’ 연기는 그가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는 하나의 확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