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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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릿한 면발, 개운한 국물의 하모니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입력2007-05-16 18: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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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릿한 면발, 개운한 국물의 하모니
    벌써 초여름 날씨다. 이런 날에는, 특히 지난밤 술 한잔 ‘거하게’ 했을 때는 시원한 막국수가 간절해진다. 가까운 곳에 만족할 만한 막국숫집이 있으면 더없이 좋으련만, ‘막국수 전문’이란 간판만 보고 들어갔다가 실망한 것이 수십 번이다. 강원도에나 가야 그 시원한 맛을 볼 수 있으려나.

    국수 가락을 뽑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곡물 반죽을 양손으로 잡고 길게 늘어뜨리기를 반복해서 뽑는 방법. 중국집 자장면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둘째, 반죽을 둥근 막대로 얇게 밀어 칼로 써는 방법. 칼국수 가락이 그렇다. 셋째, 반죽을 작은 구멍이 촘촘히 난 틀에 넣고 눌러 뽑아내는 방법. 칼국수를 제외한 우리나라 국수 대부분이 이 방식으로 뽑는다.

    강원도 닮은 시원한 맛 … 속풀이에 제격

    막국수는 메밀반죽을 틀에 넣고 눌러 뽑는 국수다. 이렇게 뽑는 이유는 자장면처럼 양손으로 잡고 늘리거나 칼국수처럼 홍두깨로 밀 수 있을 만큼 메밀반죽이 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메밀로 뽑은 막국수는 면이 약간 거친 듯하고 입에서 뚝뚝 끊어질 만큼 차지지 않다. 그런데 막국숫집 열에 아홉은 이런 면이 아니다. 미끌미끌하고 끈끈한 면발에 쫄면처럼 질기기까지 하다.

    막국수 면은 메밀로 만드는 것이 상식이지만 실제 식당에서는 그렇지 않다. 메밀은 10% 정도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밀가루와 녹말로 만들어진다. 포장 판매되는 막국수 성분표에 메밀가루라고만 적고 그 함량조차 표기하지 않은 것도 있다.



    메밀이 비싸 그런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더 큰 원인은 우리의 편향된 입맛 때문인 듯싶다. 메밀이 30% 이상 들어가면 약간 까끌까끌한 감촉이 나고 면발에 찰기가 없어진다. 메밀 100%짜리 면은 입에서 뚝뚝 끊어질 정도로 찰기가 없다. 사람들 대부분이 이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쫄깃한 면발의 포로가 됐다. 인스턴트 면제품 광고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라면 칼국수 가락국수 등 어떤 면이든 쫄깃쫄깃한 면발을 강조한다. 옛날 중국집 자장면이나 가락국수 면발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요즘 면이 얼마나 질겨졌는지 잘 알 것이다.

    한때 고속도로 휴게소 가락국수가 쫄면 면발처럼 질길 때가 있었다. 구수한 밀 향기는 나지 않고 이상야릇한 면발강화제 냄새만 풀풀 풍겼는데, 그놈의 첨가제가 어찌나 강한지 국숫발을 국물에 한 시간 둬도 불지 않았다. 휴게소에서 가락국수를 먹을 때마다 이 가락국수 공급업체가 망하기를 빌었는데, 정말 망했는지 요즘은 면발이 다소 좋아졌다.

    면발 이야기가 길어졌다. 하여간 막국수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쫄깃한 면발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먼저 까끌까끌한 감촉이 혀를 자극하다가 구수하면서 아릿한 메밀 향이 은은히 퍼지는 그 맛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막국수 맛의 포인트는 국물이다. 사골육수 닭육수 다시마멸치육수 등 다양한 국물을 시도하지만 막국수 국물의 기본은 동치미다. 동치미의 개운한 뒷맛을 따를 것이 없다. 동치미도 장난을 치지 말아야 한다. 단맛에 길들어진 요즘 세대를 의식해 설탕이나 사카린을 넣기도 하는데 이런 국물은 첫맛은 맛있게 느껴질지 몰라도 먹을수록 단맛이 목을 턱턱 막아 뒷맛을 버린다. 심심한 맛의 동치미가 없는 막국수는 ‘눈물 없는 여자’와 같다.

    이러한 조건으로 내 입맛을 만족시켰던 막국숫집은 강원도 고성군의 백촌막국수, 속초의 실로암막국수, 봉평의 진미막국수, 홍천 장원막국수 정도다. 일산에 주문진의 동해막국수 분점이 들어왔는데 이상하게도 주문진에서 먹던 그 맛이 안 나 실망했다.

    막국수 만드는 노하우를 배워왔다고 해도 물이 달라 그런 건지, 막국수는 역시 강원도에 가서 먹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막국수가 먹고픈 건지 동해 바다가 보고픈 건지 영 모르겠다. 어쨌든 막국수 한 그릇 들이켜면 속이 시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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