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설을 주장한 맹자.
“인간은 선한 존재야. 과거에 살았던 부처나 예수를 제외하고라도, 테레사 수녀나 달라이 라마처럼 우리 시대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어.”
“그렇지 않아.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거의 없고, 그때마다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출현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증명해.”
그러나 이런 유의 논쟁은 결론이 없으며, 있다 해도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대화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앞서 두 친구의 대화에서 결론이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는 인간의 감각적 경험을 넘어선 영역, 즉 선험적(transcendental) 영역이기 때문이다. 경험되지 않은 영역에 대해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지고 논리를 구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 이런 보편적인 논리는 통상 경험의 영역에서 나온 결론을 유추해 얻어낸 것이기에 더욱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현실적인 것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파악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인간 본성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인간 본성은 어떻게 이용되었고, 요청되었는가?’로 바꿔 질문해야 할 것이다.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결론 없는 논쟁거리
동양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것은 매우 오래전의 일이다. 그중 맹자와 순자, 고자의 논의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맹자는 어린아이(孺子)가 우물로 기어가려 할 때 아이를 구해주려는 마음이 사람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생긴다(惻隱之心)는 점을 들어 인간의 본성이 선(善)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순자는 경험에 따라 현실적 인간이 이기적이고 악하다는 데 착안해 인간의 본성이 악(惡)하다고 주장했다. 고자(告子)는 어린아이가 어떻게 교육받느냐에 따라 선하게 될 수도 악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인간의 본성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性無善惡說)’는 이론을 전개했다.
이 밖에도 인간의 본성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다는 설, 날 때부터 서로 다른 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성삼품설(性三品說) 등 인성론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문제는 당시의 시대적 현실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이중 맹자와 순자를 살펴보자.
두 사상가가 활동하던 시대는 중국의 전국시대였다. 전국시대는 전쟁으로 점철된 시기였으므로 제자백가는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는 것을 중요한 문제로 여겼다. 제자백가는 백성이 배고픔과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았다. 현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체계를 완성해야 했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인성론이다.
맹자처럼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본다면, 인간이 현실에서 악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마음이 악을 유발하는 욕망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욕망을 자제하고 본심(赤子之心, 良知良能)을 회복하는 것이 난세를 헤쳐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반면 순자처럼 인간의 본성이 악이라고 본다면, 인간 본성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더 강력한 규범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시각의 차이 때문에 두 사람이 제시한 대안은 아주 달랐다. 맹자는 도덕 위주의 정치체제 수립을 난세의 대안으로 내세웠지만, 순자는 느슨한 규범인 도덕보다 통제력이 강한 예법(禮法)을 강조함으로써 난세를 타개하려 했다. 따라서 맹자의 학통이 후대에 성선설을 기반으로 하는 성리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나 순자의 제자 가운데 이사(李斯)처럼 예법보다 훨씬 강력한 법 규범을 마련하려고 했던 법가(法家)가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런 논리는 루소나 홉스의 경우와도 같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본 루소는 자유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고 했으나,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본 홉스는 리바이어던과 같은 강력한 군주의 통치 아래 있을 때에만 이기심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선으로 회복’되는 것이냐, ‘선으로 전향’하는 것이냐에 따라 구체적 사회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