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마인드 웨딩. 하고는 싶은데 막상 하자니 마음뿐. 쑥스러움이 의욕을 압도한다. 비용은 어느 정도 드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 ‘주간동아’는 리마인드 웨딩으로 고민하는 부부들에게 실용 정보를 주기 위해 한 40대 부부의 실제 리마인드 웨딩 촬영 현장에 동행했다. <편집자>
“지난해엔 기대가 무척 컸어요. 앙코르와트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남편 일이 바빠 길게 시간을 내기 힘들었죠. 아쉽지만 국내 여행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그런데 이것마저 남편과 서로 ‘알아서 일정을 챙기겠지’ 하고 미루다 보니 기념일이 그냥 지나가버렸어요. 사진 한 장 못 찍고.”
스튜디오 상담실로 들어서는 유씨의 어조엔 원망기가 섞여 있다.
“그래서 오늘 당신 말을 다 들어주려고 왔잖아.” 남편의 다독임에 이내 수그러지는 유씨. 이어지는 남편의 말. “아무렴, 노후를 편안히 보내려면 와야지. 안 그러면 두고두고 볶일걸.” 스튜디오 안에 웃음이 번진다.
“부인이 ‘(리마인드 웨딩을) 하고 싶다’고 해서 찾아오는 경우 남편분들은 멋쩍어하시죠. 사이가 화목하지 못한 부부들은 거의 안 와요. 처음엔 대부분 ‘창피하다’고 하지만, 사진촬영이 진행될수록 남편들이 더 좋아하세요.”
스튜디오의 조완주(41) 사장은 닷새 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유씨에게서 견적 의뢰를 받은 뒤 e메일로 주고받거나 전화로 상담한 내용을 확인했다.
“효(孝) 패키지를 선택하셨고요. 아드님과 따님은 한 시간 뒤에 와서 촬영준비를 한다고 하셨네요. 남편분은 키가 174cm, 기성복 상의 사이즈는 100-88-170, 허리 사이즈는 33.5인치라고 하셨죠? 부인께서는 키 164cm, 기성복 66사이즈, 허리는 갸름해서 28인치인데 히프가 큰 편이라 77사이즈가 맞다고 하셨고요. 대학교 2학년인 아드님은 키 174cm, 허리 사이즈 32인치, 고3 따님은 키 163cm, 상의는 44, 하의는 55사이즈라고 하셨군요.”
웨딩 스튜디오를 찾아 리마인드 웨딩 사진촬영 견적을 상담하는 유영자 씨 부부.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 턱시도를 입어보는 남편 조정상 씨(왼쪽부터).
“젊을 땐 여드름이 많아 걱정, 지금은 주름살 때문에 걱정이네요.”
메이크업실에 들어선 유씨의 고민 표출. 메이크업 아티스트 여용숙(29) 씨는 처진 눈꼬리와 눈꺼풀, 늘어진 턱 같은 세월의 흔적은 사진 리터치(retouch)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정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여씨는 “(유씨의) 얼굴이 작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색을 강조하면 인상이 강해 보일 수 있으므로 피부 톤에 중점을 두고 메이크업을 하겠다”고 했다. 또한 “사진을 찍으면 실제 보이는 것보다 색이 날아가기 때문에 일반 화장보다는 밝게, 조명보다는 한 톤 어둡게 피부 표현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T존과 U존에 하이라이트를 주고 다크핑크 톤으로 볼터치를 한 뒤 핑크색으로 입술을 칠했는데, 안쪽엔 약간 붉은색을 더해 혈색을 주는 선으로 마무리했다. 눈썹꼬리는 길면 얼굴형이 처져 보이므로 약간 다듬었고, 볼륨감을 주기 위해 속눈썹을 붙였다.
헤어 디자이너 김미경(40) 씨는 “(유씨의) 얼굴이 작으니 옆을 없애주고 앞머리를 너무 띄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해서 왕관을 쓰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드레스는 중년 여성의 우아함을 강조하기 위해 상체 부분이 레이스와 비즈로 장식된 아이보리 톤의 옷을 택했다. 면사포는 얼굴이 가려지므로 리마인드 웨딩 촬영에선 거의 채택되지 않는다.
1시간30분 촬영 어느 때보다 진한 가족애 묻어나
남편 조씨도 파운데이션으로 피부 톤을 고른 뒤 아내의 드레스에 맞춰 검정 턱시도에 아이보리색 조끼로 의상을 코디했다.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 드레스 착용까지 40여 분에 걸쳐 공을 들인 유씨가 치장을 마쳤다.
“어, 당신 맞아? 정말 애 둘 낳은 아줌마 맞아?”
놀라는 조씨의 첫마디. 이어 조씨는 재치 있는 멘트를 날렸다. “역시 예쁜 사람은 뭘 입어도 예뻐.”
의도가 다분한 발언. 하지만 기쁜 기색이 역력한 유씨. 21년간 한 이불을 덮고 살며 내 몸처럼 익숙한 남편이건만 그의 칭찬에 20대 신부 같은 홍조가 묻어난다. 곁에 있던 딸도 “엄마, 10년은 젊어 보여요. 만날 밥하는 것만 보다 이런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 같아요”라며 맞장구를 쳤다.
드디어 부부의 리마인드 웨딩 사진촬영 시작. 두 사람이 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다정하게 웃는 포즈다.
“두 분 좀더 가까이 다가가세요. 어머님 고개 숙이시고, 아버님 고개 모아주시고….” 사진작가 김효종(34) 씨가 열심히 주문해도 부부의 자세는 어색하기만 하다. “그렇게 웃으시면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아요. 활짝 좌우로 입을 더 벌리고 웃으세요.” 다시 주문이 이어지고 컷 수는 늘어간다. 부부의 자세는 실타래 풀리듯 조금씩 풀려간다.
조씨는 결혼생활 21년 동안 정면으로 아내 얼굴을 보며 웃어본 적이 없다면서 무척 어색해했다. 처음엔 어정쩡한 미소.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조개 입 벌리듯 미소가 자연스러워졌다. 유씨 역시 남편의 턱시도를 매만지는 포즈에서 사진작가의 특별한 주문 없이도 결혼생활의 연륜이 묻어나는 편안한 손길을 취했다.
“그대로, 포즈 좋습니다.” 부부만의 사진을 어느 정도 찍은 뒤 역시 드레스와 턱시도로 성장한 딸과 아들이 가세해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연출한다. 정장에서 자유복까지 1시간30분에 걸친 촬영에 임하면서 가족들은 어느 때보다 진한 공동체의식을 느끼는 듯하다.
촬영이 끝나고 이젠 모니터를 보며 잘된 사진을 선택하는 시간. 가족들은 사진을 하나씩 확대해 보면서 “평상시에도 이렇게 손잡고 마주 보고 껴안고 수시로 사랑을 전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한층 두터워진 가족애를 확인하면서 스튜디오를 나서는 순간, 유씨는 그래도 팔뚝과 아랫배의 살이 걱정되었던지 “리터치 작업할 때 라인 좀 살려주세요”라는 부탁을 남긴다. 나이가 들어도 여심은 여심.
‘스튜디오 예감’에서는 주말에 3팀, 주중엔 한 팀가량 리마인드 웨딩 사진촬영을 한다. 결혼 5년, 10년, 15년 등을 기념하는 가족사진형이 많다. 인터넷 홈페이지나 전화로 견적을 의논하고, 직접 방문이나 전화상담을 통해 구체적인 일정과 비용을 정한 뒤 촬영에 들어간다. 촬영이 끝나면 사진을 선택하고 깔끔하게 리터치 작업을 해서 3주 후 액자와 앨범을 찾는 것으로 일정은 마무리된다.
사진 촬영(왼쪽). 찍은 사진을 모니터로 확인하며 고르는 모습(아래 왼쪽).
서울 강남권에만 30여 개소의 리마인드 웨딩 스튜디오가 있는데, 비용은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유씨 부부가 선택한 스튜디오 예감(www.yeagam.com)의 ‘효 패키지’는 50만원대. 스튜디오에서 원스톱으로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 드레스 대여, 사진촬영이 가능해 시간이 부족하고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중년 부부들이 선호한다. 일련의 절차를 따로따로 준비할 경우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 비용으로 30여 만원, 드레스와 턱시도 대여에
30만~100만원이 든다. 효 패키지의 경우 4인 가족까지 드레스와 턱시도 대여, 머리 손질 및 메이크업이 제공되고 원목 액자(캔버스 코팅된 60×70cm 사진) 1개, 액자(35×45cm) 1개, 포켓 사진(가족 수별)이 주어진다. 이때 자녀가 중학생 이하이면 무료지만, 고등학생 이상은 1명당 머리 손질 및 메이크업, 의상 대여비가 5만원씩 추가된다.
여기에 더해 앨범 제작을 원하면 별도 비용이 추가된다. 8×10인치 앨범(10장)은 30만원, 4×5인치 앨범(10장)은 15만원이 든다. 조완주 사장은 “주말보다 평일에 촬영이 좀더 여유롭게 진행되고, 할인혜택과 서비스 품목이 늘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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