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팬’
1981년 에드워드 비앙키가 똑같은 제목으로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세계적인 여배우 로렌 바콜이 할리우드 스타 바콜 캐릭터를 짝사랑하는 레코드 세일즈우먼으로 열연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도 팬은 스타에게 수없이 많은 편지를 보냈다가 비서가 보내는 뻔한 답장밖에 받지 못하자 그만 선을 넘어선다. 그 선이라는 것이 할리우드 스타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팬이란 사람들이 환상을 판매하면서 생긴 부산물이다. 처음엔 대부분 말없는 소비자들이었던 이들은 점점 자신의 수동적인 구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클럽을 결성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의 가치를 조작하려고 노력하고, 종종 자신의 삶과 희망 전체를 그 대상에게 바친다. 어디까지가 정상과 비정상의 한계일까? 그 대상이 정신적, 육체적 위협을 느낄 때가 아닐까?
영화에서는 팬이 스타를 숭배하다 못해 그 위치를 자신이 차지하는 경우도 등장한다. 1950년 미국 감독 맹키비츠가 만든 ‘이브의 모든 것’이 대표적인 작품. 주인공 이브는 자신이 좋아했던 연극배우 베티 데이비스의 자리를 차지하고 연극계의 스타로 떠오른다. 너무나도 위선적이고 뻔뻔스럽게.
‘더 팬’에서 광기어린 팬으로 열연한 로버트 드 니로는 ‘코미디의 왕’에서는 새로운 모습으로 분한다. 자신이 숭배했던 코미디 스타 제리 루이스를 납치해 몸값 대신 공중 코미디 토크쇼 출연을 보장받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코미디언으로 성공한다는 것.
조금은 비현실적이지만, 자신이 숭배하던 스타의 자리를 빼앗는 이 정도의 팬이라면 섬뜩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보다 한 수 위가 있다.
초능력을 가진 슈퍼 영웅들을 다룬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에서 그 절정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 숭배 대상이던 슈퍼 영웅 미스터 인크레더블에게 모욕당한 열성팬은 그 뒤 무시무시한 안티팬이 돼 인크레더블을 죽이고 전 세계를 정복할 계획을 세운다. 잘못 키운 팬이 세상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