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의 어느 인적 없는 숲 속, 어두침침한 방 안에 처박혀 사는 뾰족 콧날에 검은 모자와 옷을 입고 빗자루를 든 할망구. ‘마녀’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런 마녀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면 믿겠는가? 물론 겉모습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영국 마녀협회 ‘코벤(Coven)’ 회원인 곽세라 씨는 자칭 ‘사설 독립 마녀’다. 세계적 휴양리조트 체인인 ‘클럽 메드’의 요가 마스터스로 일하면서 전 세계 120여 개국을 돌아다니는 그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사랑의 마법’을 전하고 있다.
전 세계 돌아다니는 ‘사설 독립 마녀’
“마법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 항상 존재해요. 보고 싶은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든가, 기다리던 일이 이뤄지는 것처럼 간절히 소망하는 일이 이뤄지는 게 바로 마법이죠.”
곽씨가 마법의 세계를 접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1995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잘나가던 그는 99년 회사를 그만두고 홀연히 인도로 떠났다. 인도 정부장학생으로 델리대학에 입학했지만 그의 관심사는 다른 데 있었다. 수업은 듣지 않고 인도 곳곳에 퍼져 있는 ‘아쉬람(도제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인도 요가학교)’을 전전하며 명상과 요가, 인도 전통춤 등을 배운 것. 그가 요가를 전수받은 곳은 인도 남부에 있는 도시인 ‘폰디체리’의 한 아쉬람이었다.
그 와중에 2000년 초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잠시 태극권과 요가강습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일이다. 한 할머니에게서 “몸이 불편해 나갈 수 없으니 집으로 출장요가를 와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은 것. 원칙적으로 출장은 안 나가지만 그는 뭔가에 홀린 듯 할머니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집으로 찾아가 만난 할머니는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젊고 멀쩡했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양 갈래로 따서 리본으로 묶은 모습은 마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케 했다. 그런 할머니가 출장을 요청한 사연인즉, 아들을 스키장에서 사고로 잃은 뒤 광장공포증을 앓아 집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던 것. 그런데 그 할머니가 바로 영국의 한 대학교 화학과 교수이자 영국 마녀협회 회원이었다. 이름은 ‘앤 마리’.
“할머니 집에 갔을 때, 할머니가 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더라고요. 그런데 아주 자연스럽고 편했어요.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요. 요가는 첫날만 가르쳤고 그 다음부터는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나눴죠.”
곽씨는 얼마 후 할머니 집 안에 숨겨진 비밀의 방을 볼 수 있었다. 햇빛이 차단된 밀폐된 방 안에는 크리스털이 가득했다. 세상의 모든 모양과 크기의 크리스털 조각이 다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할머니에게서 마녀협회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 모으는 화학방정식’ ‘여러 가지 카드 읽는 법’ ‘크리스털로 사람의 심리와 가까운 미래를 점치는 법’ 등을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그는 그렇게 서서히 마법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그가 가입한 영국 마녀협회 ‘코벤’은 과거보다 한 단계 진화한 마녀조직이다. 현재 전 세계에 수십 개의 코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과거에는 비밀스런 조직이었는데 지금은 공개적으로 활동한다. 영국 마녀협회의 경우엔 인터넷 웹사이트까지 운영하고 있다. 회원 수는 현재 200명 정도.
회원들은 과학자나 작가, 모델, 요리사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1년에 여섯 번 정도 절기별로 모인다. 모임에는 마녀의 상징물처럼 돼버린 빗자루를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설마 영화에서처럼 타고 날거나 마법을 부리기 위해서일까? 그건 아니다. 협회 사무실이 있는 영국 링컨의 윌링엄가 일대나 모임이 있는 마을을 청소하기 위해서다.
“가장 좋은 마법은 깨끗하게 비우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영국 마법협회의 상징이 빗자루가 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해요. 회원들은 모이면 서로 덕담을 나누고 정보도 교환해요. 그러다 도와줄 일이 있으면 십시일반 힘을 모으죠.”
사실 수십 세기 전 중세 때의 마녀도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마녀는 자신의 천재성으로 개발 또는 발견한 놀라운 현상들을 당시 과학으로 증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불운한 과학자들이었다’는 것이 곽씨의 이야기다.
‘마녀사냥’의 광풍이 전 유럽을 휩쓸던 무렵, 책을 많이 읽거나 약초를 많이 알아서 조제만 해도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다고 한다. 감히 신 이외의 능력을 갖고 있거나 신의 능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춰졌던 것. 마녀들은 오늘날로 치면 의사나 점성술사, 무속인, 세라피스트에 해당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세월이 흘러 과학과 학문이 발달하면서 마녀들의 연구 분야도 달라졌다. 요즘 마녀들의 주요 관심사는 ‘에소테릭(Esoteric)’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다. 현대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지구와 우주, 사람, 물질 등의 에너지에 대해 연구하고 회원 간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는 것. 점성술, 연금술, 풍수지리학, 제3의학, 기 치료, 행동의학, 마음의학 등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학문은 이미 현실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일본에서는 마음의학을 인정해 의과대학에 정신과 외에 ‘심료과’라는 분야를 따로 개설했다. 또 미국의 대통령 주치의에 ‘아유로베다’ 의사가 포함돼 있는 것도 흥미롭다. 아유로베다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신체의 자연치유 능력을 극대화하는 인도의 전통의술이다. 일본인에 의해 20세기 초부터 시작한 ‘레이키’라는 명상치유법도 마녀협회 회원들이 연구하는 마법의 일종.
곽씨는 “마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와 사람의 연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마녀들이 흔히 사용했던 ‘주문’도 현대에 와서 시대에 맞게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했다. 요즘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자기암시’에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그 옛날 주문과 같다는 것. 따라서 주문은 특별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단어를 반복해서 읊조리면 그것이 바로 주문이 된다는 게 곽씨의 이야기다.
“마녀(witch)의 어원은 ‘the wise craft’로, 지혜로운 도구라는 뜻이에요. 마법사와 마녀는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에 동화되며 세계를 여행하면서 살아가는 평화로운 종족이죠. 근대에 들어와서 히피들이 그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보면 돼요. 무소유와 거주지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비슷하잖아요. 이름만 마법사나 마녀가 아니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요.”
생활 깊숙이 들어온 마법 유행 선도
마녀는 이제 사회의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콘’처럼 등장했다. 어느 순간부터 무서운 마법을 사용하는 끔찍한 존재가 아니라 매력적이고 깜찍한 존재로 변신한 것. 요즘 일본에선 ‘서쪽의 착한 마녀’라는 책이 인기를 끌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룹 체리필터의 신곡 ‘유쾌한 마녀’가 인기다. 마술이 유행하고 타로카드를 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그만큼 마법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온 셈이다. 그렇다면 곽씨가 생각하는 가장 특별한 마법은 무엇일까.
“마법이 따로 있나요. 동그란 지구 위를 사람들이 똑바로 서서 걸어다니는 것이 바로 마법이고 기적이죠. 마녀라고 특별하지는 않아요. 다만 다른 사람보다 마법에 주파수를 더 맞추고 살아갈 뿐이죠. 마녀들은 어떻게든 삶이 좀더 신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에요. 가장 특별한 마법은 바로 좋은 생각을 갖는 것이랍니다.”
영국 마녀협회 ‘코벤(Coven)’ 회원인 곽세라 씨는 자칭 ‘사설 독립 마녀’다. 세계적 휴양리조트 체인인 ‘클럽 메드’의 요가 마스터스로 일하면서 전 세계 120여 개국을 돌아다니는 그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사랑의 마법’을 전하고 있다.
전 세계 돌아다니는 ‘사설 독립 마녀’
“마법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 항상 존재해요. 보고 싶은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든가, 기다리던 일이 이뤄지는 것처럼 간절히 소망하는 일이 이뤄지는 게 바로 마법이죠.”
곽씨가 마법의 세계를 접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1995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잘나가던 그는 99년 회사를 그만두고 홀연히 인도로 떠났다. 인도 정부장학생으로 델리대학에 입학했지만 그의 관심사는 다른 데 있었다. 수업은 듣지 않고 인도 곳곳에 퍼져 있는 ‘아쉬람(도제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인도 요가학교)’을 전전하며 명상과 요가, 인도 전통춤 등을 배운 것. 그가 요가를 전수받은 곳은 인도 남부에 있는 도시인 ‘폰디체리’의 한 아쉬람이었다.
그 와중에 2000년 초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잠시 태극권과 요가강습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일이다. 한 할머니에게서 “몸이 불편해 나갈 수 없으니 집으로 출장요가를 와줄 수 있느냐”는 전화를 받은 것. 원칙적으로 출장은 안 나가지만 그는 뭔가에 홀린 듯 할머니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집으로 찾아가 만난 할머니는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젊고 멀쩡했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양 갈래로 따서 리본으로 묶은 모습은 마치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케 했다. 그런 할머니가 출장을 요청한 사연인즉, 아들을 스키장에서 사고로 잃은 뒤 광장공포증을 앓아 집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던 것. 그런데 그 할머니가 바로 영국의 한 대학교 화학과 교수이자 영국 마녀협회 회원이었다. 이름은 ‘앤 마리’.
“할머니 집에 갔을 때, 할머니가 말하는 대로 몸이 움직이더라고요. 그런데 아주 자연스럽고 편했어요.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요. 요가는 첫날만 가르쳤고 그 다음부터는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나눴죠.”
곽씨는 얼마 후 할머니 집 안에 숨겨진 비밀의 방을 볼 수 있었다. 햇빛이 차단된 밀폐된 방 안에는 크리스털이 가득했다. 세상의 모든 모양과 크기의 크리스털 조각이 다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할머니에게서 마녀협회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 모으는 화학방정식’ ‘여러 가지 카드 읽는 법’ ‘크리스털로 사람의 심리와 가까운 미래를 점치는 법’ 등을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그는 그렇게 서서히 마법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그가 가입한 영국 마녀협회 ‘코벤’은 과거보다 한 단계 진화한 마녀조직이다. 현재 전 세계에 수십 개의 코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과거에는 비밀스런 조직이었는데 지금은 공개적으로 활동한다. 영국 마녀협회의 경우엔 인터넷 웹사이트까지 운영하고 있다. 회원 수는 현재 200명 정도.
회원들은 과학자나 작가, 모델, 요리사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1년에 여섯 번 정도 절기별로 모인다. 모임에는 마녀의 상징물처럼 돼버린 빗자루를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설마 영화에서처럼 타고 날거나 마법을 부리기 위해서일까? 그건 아니다. 협회 사무실이 있는 영국 링컨의 윌링엄가 일대나 모임이 있는 마을을 청소하기 위해서다.
“가장 좋은 마법은 깨끗하게 비우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영국 마법협회의 상징이 빗자루가 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해요. 회원들은 모이면 서로 덕담을 나누고 정보도 교환해요. 그러다 도와줄 일이 있으면 십시일반 힘을 모으죠.”
사실 수십 세기 전 중세 때의 마녀도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마녀는 자신의 천재성으로 개발 또는 발견한 놀라운 현상들을 당시 과학으로 증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불운한 과학자들이었다’는 것이 곽씨의 이야기다.
‘마녀사냥’의 광풍이 전 유럽을 휩쓸던 무렵, 책을 많이 읽거나 약초를 많이 알아서 조제만 해도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다고 한다. 감히 신 이외의 능력을 갖고 있거나 신의 능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춰졌던 것. 마녀들은 오늘날로 치면 의사나 점성술사, 무속인, 세라피스트에 해당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영국 마녀협회 웹사이트.
이런 학문은 이미 현실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일본에서는 마음의학을 인정해 의과대학에 정신과 외에 ‘심료과’라는 분야를 따로 개설했다. 또 미국의 대통령 주치의에 ‘아유로베다’ 의사가 포함돼 있는 것도 흥미롭다. 아유로베다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신체의 자연치유 능력을 극대화하는 인도의 전통의술이다. 일본인에 의해 20세기 초부터 시작한 ‘레이키’라는 명상치유법도 마녀협회 회원들이 연구하는 마법의 일종.
곽씨는 “마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와 사람의 연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마녀들이 흔히 사용했던 ‘주문’도 현대에 와서 시대에 맞게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했다. 요즘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에 등장하는 ‘자기암시’에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그 옛날 주문과 같다는 것. 따라서 주문은 특별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단어를 반복해서 읊조리면 그것이 바로 주문이 된다는 게 곽씨의 이야기다.
“마녀(witch)의 어원은 ‘the wise craft’로, 지혜로운 도구라는 뜻이에요. 마법사와 마녀는 평화를 사랑하고 자연에 동화되며 세계를 여행하면서 살아가는 평화로운 종족이죠. 근대에 들어와서 히피들이 그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보면 돼요. 무소유와 거주지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비슷하잖아요. 이름만 마법사나 마녀가 아니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요.”
생활 깊숙이 들어온 마법 유행 선도
마녀는 이제 사회의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콘’처럼 등장했다. 어느 순간부터 무서운 마법을 사용하는 끔찍한 존재가 아니라 매력적이고 깜찍한 존재로 변신한 것. 요즘 일본에선 ‘서쪽의 착한 마녀’라는 책이 인기를 끌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룹 체리필터의 신곡 ‘유쾌한 마녀’가 인기다. 마술이 유행하고 타로카드를 하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그만큼 마법이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온 셈이다. 그렇다면 곽씨가 생각하는 가장 특별한 마법은 무엇일까.
“마법이 따로 있나요. 동그란 지구 위를 사람들이 똑바로 서서 걸어다니는 것이 바로 마법이고 기적이죠. 마녀라고 특별하지는 않아요. 다만 다른 사람보다 마법에 주파수를 더 맞추고 살아갈 뿐이죠. 마녀들은 어떻게든 삶이 좀더 신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에요. 가장 특별한 마법은 바로 좋은 생각을 갖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