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2

..

하야시, 황장군, 군화평 … 검을 든 순수 청년

  • 입력2005-11-28 09: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하야시, 황장군, 군화평 …     검을 든 순수 청년

    중국 현지 로케로 찍은 무협 영화 ‘무영검’에서 신현준이 맡은 역은 군화평이다.

    우선, 그는 키가 크다. 그보다 더 큰 배우들도 많이 있지만, 유독 그의 키는 커 보인다. 그렇다고 마른 몸매는 아니다. 어깨도 벌어지고 근육도 있다. 그런데 신현준은 마치 갈대처럼, 훌쩍 큰 키로 흔들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184cm면 아주 큰 키는 아니다. 공식적으로 그의 키는 188cm인 차승원보다 작지만 느낌으로는 그에 못지않게 커 보인다.

    1990년에 공개된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은 많은 신인 배우들을 충무로에 쏟아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신인 배우들을 대부분 기용해서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다. 타이틀 롤인 장군의 아들 김두한 역의 박상민을 비롯해서 신현준, 송채환도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신현준은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의 숙적인 일본 검객 하야시를 맡았다. 이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해서 오랫동안 신현준의 별명은 하야시였는데, 6년이 지나자 별명이 황장군으로 바뀌었다.

    1996년 개봉된 강제규 감독의 데뷔작 ‘은행나무 침대’는 신현준을 스타로 올려놓은 결정적 작품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은행나무 침대’가 없었다면 오늘의 신현준도 없다. 물론 그동안 ‘장군의 아들’ 2, 3을 찍었고 특히 ‘장군의 아들’ 2로는 대종상 신인남우상도 받았다. 그리고 ‘젊은 날의 초상’(1990년)이라든가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1993년)에서 지호 역을,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1994년)에서 정하섭 역을 맡았지만, 한석규 진희경 심혜진과 공연한 ‘은행나무 침대’의 황장군 역이야말로 신현준을 만인의 연인으로 만들어놓았다.

    선 굵은 연기부터 코믹까지 두루 섭렵

    사랑하는 여인 미단공주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밤새 내리는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온몸으로 눈을 받아 하얀 머리, 하얀 눈썹으로 얼음조각이 된 황장군의 모습은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배우에게는 기억할 만한 대표작이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족쇄가 되기도 한다.



    신현준은 1997년에는 ‘마리아와 여인숙’ ‘지상만가’를, 1998년에는 ‘남자 이야기’ ‘퇴마록’ 등을 찍었지만 배우로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데는 실패한다. 2000년에는 소방관 임준우로 등장한 ‘싸이렌’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똑같은 화재영화 ‘리베라메’에 밀렸다. 그해 김희선과 공연한 ‘비천무’는 완성도에 대한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더구나 신현준 자신이 너무나 재미있게 본 김혜린의 원작만화를 영화사에 추천해 영화화를 기획했고,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김영준 감독을 데뷔시킨 작품이었지만 배우로서는 인상적이지 못했다.

    차라리 2001년 개봉한 장진 감독의 ‘킬러들의 수다’가 배우 신현준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었다. 신현준은 지금까지 남성적이고 선 굵은 배역에서 벗어나, 혹은 엉망으로 망가지는 코믹한 캐릭터에서 벗어나, 극과 극에 있는 자신의 다른 이미지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획득하며 연기에 깊이를 주었다.

    하야시, 황장군, 군화평 …     검을 든 순수 청년
    그러나 아쉽게도, 그때 그 유명한 삼각 스캔들이 터졌다. 연예인들끼리의 삼각관계라는 점에서 대중의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킨 그 스캔들은, 이후 신현준을 배우로만 보게 하지 않고 바람둥이 이미지가 겹쳐지게 한 결정적 원인이 됐다. 2002년부터 해마다 ‘블루’ ‘페이스’ ‘달마야, 서울 가자’ 등 신현준이 주연을 맡은 영화들이 개봉했지만 흥행은 계속 참패했다. 올 추석 시즌 최강자가 된 ‘가문의 위기’가 대박을 터뜨림으로써 신현준은 비로소 스캔들의 사정권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신현준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다. 5년 전 중국 현지 로케로 고생스럽게 ‘비천무’를 찍었던 경험을 그대로 버리기 아쉬웠던 김영준 감독은 그때의 노하우를 충분히 살린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비슷한 무협 장르 ‘무영검’을 중국 현지 로케로 찍으면서 친구인 신현준을 주인공으로 낙점했다.

    “5년 전 ‘비천무’를 찍으면서 김영준 감독이 너무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의 노하우가 ‘무영검’을 완성시키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김 감독 스스로 4년 만에 영화가 들어와서 월드컵 감독이라고 그러는데, ‘무영검’이 좋은 평가를 받아서 1년에 한 편씩 영화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보다 친구인 김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할 정도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다. 삼각 스캔들의 시련 뒤에도 또 다른 스캔들이 터지면서 천성적으로 여성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의 성격도 조금 변했다. 그가 겪었던 마음고생은 얼마나 컸을까.

    무영검에서 악역임에도 단연 돋보여

    “옛날에는 좋은 작품이 남는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영화를 찍으면서 함께 하는 동료들과의 좋은 추억들이 더 오래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무영검’은 나에게는 굉장히 좋은 추억이 된 작품이다.”

    ‘무영검’에서 신현준이 맡은 군화평 역은 악역이다. 조국 발해를 배신하고 거란에 붙어서 발해의 잔당들을 처치하는 암살단 척살단주 역은 결코 좋은 이미지를 대중에게 남길 수 없다. 하지만 ‘무영검’은, 발해의 마지막 왕자인 대정현(이서진 분)과 왕자를 남몰래 사랑하면서 그를 호위하는 여자 무사 연소하(윤소이 분)의 메인 커플보다 오히려 그들과 대비되는 척살단주 군화평 역의 신현준과 그의 심복인 매영옥 역의 이기용이 더 빛난다.

    “내가 와이어를 탈 때는 굉장히 추웠다. 뇌가 아플 정도로 추웠다. 매달려서 공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정말 힘들고 지루했다. 그러나 액션신 찍을 때는 혹시 내가 연기에 몰입해 힘을 주어서 후배들을 다치게 할까 봐 더 힘들었다. 촬영 끝나면 제일 먼저 내가 달려가서 안전에 이상이 없었는지를 확인했다. 날씨가 너무 추울 것 같아서 내복 5벌을 준비해 갔는데 의상을 맡은 분들은 내복 입는 것을 싫어한다. 옷태가 안 난다고 해서 결국 내복을 입지 않고 촬영했다.”

    하야시, 황장군, 군화평 …     검을 든 순수 청년

    ‘킬러들의 수다’, ‘장군의 아들’,‘가문의 위기’(시계 반대 방향으로).`

    신현준은 11월26일 일본을 방문, ‘한류, 너무 좋아’라는 행사에 참여한다. 일본에서 ‘비천무’, ‘은행나무 침대’ 그리고 TV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방영되면서 일본 팬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한류스타 자격으로 일본을 찾는 것이다.

    “얼마 전, 일본의 노인 한 분에게서 검을 선물 받았다. 자기 집안의 가보라고 했다. 검은 쉽게 받지 못하는 법이다. 검에는세월이 있고 추억이 있고 사랑과 미움, 원망이 있다. 검은 무사들에게는 자기와 함께 오래 세월을 같이 보낸 친구일 것이다. ‘비천무’와 ‘무영검’ 찍으면서 무사복을 입고 검을 들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영화를 찍는 동안 검술이 늘었다.”

    신현준의 다음 영화는 TV 인간극장에 나온 실화를 영화화하는 ‘맨발의 기봉씨’다. 여기서 신현준은 정신지체 장애인 역을 맡아 순수한 영혼을 보여줄 예정이다. 신현준이 연기하는 순수한 청년의 모습이 어떨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