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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은 와이어 연기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합성작업으로 전투 신을 거의 찍지 않았다. 당연히 스턴트맨과 무술 연기자들의 고생이 심했다. 웬만큼 내공이 쌓인 스턴트맨이나 무술 연기자들도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신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이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시청자들은 이들을 터지는 폭탄과 한 덩어리로 기억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드라마서 고난도 스턴트 연기
그 찰나의 위험 속에 무술 연기자 이선도(39) 씨도 포함됐다. 올 한 해 그는 ‘불멸의 이순신’과 함께 살았건만, 그를 알아본 사람은 거의 없다. 가슴에 박힌 불화살을 부여잡고 바다로 떨어진 일본 수군이 그였으며, 조총을 맞고 10m 높이의 성곽 위에서 추락한 조선 병사도 바로 그였다. 무술 유단자인 그에겐 늘 고난도의 스턴트만 맡겨졌다.
무술 연기자 이선도 씨는 늘 ‘깡패 1’ ‘조폭 2’ ‘행인 3’을 전전한다. 영화 ‘신라의 달밤’에선 주인공 차승원에게 멋지게 맞고 넘어진 조폭이었고, ‘주유소 습격사건’ 때는 철가방을 들고 이성재에게 마구 얻어맞은 ‘짱께 배달부’였다. ‘장길산’에선 눈 덮인 산에서 얼어 죽을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제법 긴 대사와 무술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장길산’을 가장 고생한 드라마이자, 가장 사랑하는 드라마로 기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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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 현장.
영화 ‘옹박’에서 주인공 토니 자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까지 17년 동안 무에타이를 연마했고, 5년 동안 세트장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그렇다면 이선도 씨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까?
그에게는 토니 자보다 더한 영광과 아픔의 세월이 있었다. 그와 토니 자와는 까무잡잡한 생김새 말고도 비슷한 점이 많다. 리얼 액션 무비, 즉 진짜 무술영화를 만들기 위해 무술 고수의 자리를 버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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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홍콩에서 열린 세계 킥복싱대회에서 챔피언으로 등극한 이선도 씨.
한때 세계 킥복싱 평정 … ‘토니 자’ 같은 명성 꿈꿔
91년 제대한 그는 곧바로 킥복싱 한국챔피언전 자리를 탈환하고 세계 최강이었던 일본 챔피언과 맞붙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벌어진 이 경기에서 그는 니킥(무릎치기) 한 방으로 일본 챔피언을 링 밖으로 나가떨어지게 했다. 붕대도 없어 현수막을 찢어 손에 감고 한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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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나에게 대적이 되는 사람이 없었고, 세계협회에서도 재미가 없다며 제가 킥복싱계를 떠나기를 원하는 눈치였지요.”
1994년 초 킥복싱계를 은퇴한 이 씨는 무술 연기자 공채를 통해 액션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경찰청 사람들’ ‘사건 25시’ ‘명성왕후’ ‘무인시대’ ‘신라의 달밤’ ‘주유소 습격사건’ ‘장길산’ 등등 무수히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의 무술은 빛났지만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세계를 호령하던 그의 격투기 실력은 영화와 드라마의 한 장면 속에 묻혀버렸다.
“23년 동안 우슈·태권도·킥복싱을 연마했고, 11년 동안 무술 연기자로 일했으니 이제 제 영화를 만들어야죠. 고수들만을 모아 진정한 액션 영화를 만들어보는 게 제 꿈입니다. 먼저 무술감독이 되려고 마음먹은 만큼 사람들부터 모아야겠죠.”
이종격투기 K1의 최홍만 선수를 보고 “귀엽다”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이 씨. 그는 과연 ‘옹박’ 같은 진정한 무술영화를 만드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무술로서는 단역에 그쳤지만 무술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 그는 화려히 등극할 수 있다. 90년대 초반 세계 킥복싱계를 평정했다는 명성과 함께.
사라진 무림의 고수 이선도는 언제 영화를 몰고 등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