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4

..

‘거래 횟수’만으론 ‘과당’ 판단 힘들어

  • 입력2005-05-03 18:4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거래 횟수’만으론 ‘과당’  판단 힘들어

    증권사에 ‘일임매매’를 했다면 투자금의 안전을 위해 주식거래 내용을 정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투자자 A 씨는 친분관계가 있는 투자상담사를 믿고 “잘 굴려달라”며 퇴직금을 맡겼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 처음 한두 번만 증시 시황과 잔고 현황 등을 확인하고는 이후 증권 거래와 관련한 모든 결정을 투자상담사에게 맡겼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A 씨는 증권회사로부터 주식거래 내용 등을 통보받고 깜짝 놀랐다.

    애초 2억원에 가까운 거금을 맡겼는데 단 1년 만에 통장에는 평가액 3000만원을 밑도는 주식과 수십만원의 예탁금만 남아 있었던 것. 거래 내용을 확인해보니 1년 사이에 700여 회의 매수·매도가 반복됐고 그간 증권회사에 부담한 수수료만 7000여만원, 증권거래세만 1500여만원에 이르렀다. 여생의 밑천이 속 빈 강정이 되자 A 씨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친분만 믿고 거액을 맡긴 자신의 책임도 큰 것으로 생각돼 고민하다 법원 문을 두드렸다.

    이와 같이 증권회사의 지나치게 잦은 매매(과당매매)로 인한 피해는 증시 관련 소송의 대표적인 경우다. 이제는 과당매매가 증권회사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지만, 그 책임 범위와 과연 어떤 절차를 통해 증권회사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먼저 A 씨처럼 유가증권의 종류, 종목, 매매의 구분 및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증권회사의 판단에 일임하는 것을 ‘포괄적 일임매매’라 부른다. 그러나 아무리 투자상담사가 고객에게서 포괄적 일임을 받았다 하더라도 주식거래를 할 때 고객의 이익을 충실히 보호할 의무가 있다. 때문에 대법원은 증권회사의 책임에 대한 판례를 남기기도 했다(수익성 없는 주식거래의 반복이 충실의무의 위배를 뜻하지는 않지만, 고객의 이익을 무시하고 회사의 영업 실적만을 위한 무리한 매매로 고객에게 해를 입혔다면, 이는 과당매매 행위로서 불법행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

    결국 이 문제는 과당매매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과당매매와 관련된 소송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판단하기 어려운 점은 과연 당해 매매가 ‘과도한 거래’였는가 하는 것. 특히 인터넷 거래의 일반화로 일반 투자자들 역시 일중매매(day-trading)가 보편화되는 등 거래 횟수가 증가했기 때문에, 단순히 거래 횟수만으로 과도한 거래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려워진 현실이다.



    과당매매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당해 투자자의 투자 목적 및 자금의 성격, 재정상태 등이다. 여유자금을 가지고 단기간에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자의 계좌를 운용하는 경우에는 퇴직연금을 자금으로 하는 고령자의 계좌보다 다소 빈번한 거래가 있었다 하더라도 과당매매로 인정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밖에도 법원은 매매주식 중 단기매매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지, 동일 주식의 매도와 매수를 반복했는지를 고려하기도 한다. 만일 당일 또는 2~3일 내의 단기매매를 반복했는데, 매매거래가 고객에게 별다른 수익성을 주지 않았다면 과당매매로 인정될 수 있다. 또한 운용액과 운용기간에 비추어 거래수수료가 과다한지 여부도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그렇다면 과당매매로 인한 손해배상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법원은 과당매매가 인정되는 경우 고객예탁금과 과당매매 종료시의 예탁금 잔고의 차액을 손해배상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렇다고 A 씨가 1억7000만원의 차액을 모두 배상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증권거래법상 증권회사는 매매거래가 성립된 때에는 종목, 수량, 가격, 기타 거래내용을 고객에게 통지하도록 돼 있는데, 만약 A 씨가 주식거래 내용과 잔고 현황 등을 통보받고도 투자상담사에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시정 조치를 요구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손해 발생에 대해 A 씨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법률용어로 이를 과실상계라고 하는데, 법원은 과실의 경중에 따라 최대 50%까지 그 배상액을 삭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A 씨가 증권회사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겠지만, 시간과 비용에 여유가 없을 경우 한국증권업협회, 증권거래소 또는 금융감독원에서 운영하는 분쟁조정 절차를 이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러한 분쟁조정 절차는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조정 내용에 불만이 있으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투자상담사와 증권회사가 책임을 인정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위 절차를 이용하기에 앞서 내용증명우편, 방문 등을 통해 증권회사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좋다.

    ‘거래 횟수’만으론 ‘과당’  판단 힘들어

    황 승 화,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

    때문에 A 씨 같은 낭패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자신의 거래내용을 확인하고, 의사를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