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울포위츠, 리처드 펄, 윌리엄 크리스톨, 프랜시스 후쿠야마, 제임스 울시, 더글러스 페이스. (윗줄 왼쪽부터)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싱크탱크인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 사무총장 개리 슈미트가 부시 2기 행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내각 개편에 대해 밝힌 촌평이다. 네오콘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사임하고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후임자로 지명되자, 미국 언론들은 ‘네오콘의 완승’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라이스가 네오콘이 아닌데도 미국 언론들이 이처럼 보도하고 있다는 점. 네오콘들은 아브 그라이브 교도소 포로학대 사건, 대량살상무기 부재, 알 자르카위 등 테러리스트들과 무장세력의 강력한 저항 등 이라크전쟁의 후유증으로 국내외 여론의 비판을 한 몸에 받아왔다. 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의 최대 이슈였던 이라크전쟁 때문에 부시가 낙선했다면 네오콘들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내각 개편은 이들의 신임 여부를 알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부시는 자신의 충실한 심복이자, 네오콘처럼 강경한 노선의 라이스를 국무장관 자리로 보냈다. 만약 라이스가 원래 희망했던 국방장관으로 발탁됐더라면 이는 이라크 침공을 기획하고 실행한 네오콘들에 대한 일종의 불신임이라고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네오콘들의 후원자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물러났더라면, 네오콘의 지도자인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비롯한 상당수 네오콘들은 옷을 벗었을 것이다. 대선 결과를 국민의 ‘위임’이라고 생각한 부시는 네오콘들을 재신임했다. 게다가 부시는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으로 네오콘의 핵심인물 중 한 사람인 스티븐 해들리 부보좌관을 지명했다.
네오콘들 대부분 유대인 출신으로 명문대 나온 엘리트
해들리는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부 국제안보정책담당 차관보를 지냈는데, 당시 장관은 체니였고 정책담당 차관은 울포위츠였다. 예일대학 법학박사 출신인 그는 미사일 방어체제와 전략무기 및 핵 확산 문제 등에 일가견이 있는 안보전문가. 그가 외교·안보 정책을 조율하는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은 네오콘들에겐 ‘값진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파월 장관과 동반 퇴진한 온건파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의 후임으로 역시 네오콘인 존 볼튼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이 지명된다면,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실무진은 모두 네오콘들이 장악하는 셈이다.
이처럼 네오콘들이 요직을 꿰찰 수 있게 된 것은 네오콘들의 정신적 지주인 딕 체니 부통령이 뒤에 있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가 라이스에게 비춰지고 있으나 진정한 승리자는 바로 체니라고 말할 수 있다. 아브 그라이브 사건이 터지자 체니는 럼즈펠드 장관에게 사임하지 말라는 전화를 하기도 했다. 이라크전쟁을 반대했던 파월을 비꼬며, 체니는 “파월이 항상 문제”라고 말해 좌중을 웃기곤 했다. 체니는 부시를 움직여 국무장관 재직기간이 남아 있던 파월의 사표를 당장 수리하게 한 장본인이자, 국방장관이 될 수도 있었던 라이스를 국무장관으로 낙착시킨 주인공이다.
네오콘들은 국익을 최우선하는 국가주의자인 체니의 비호 아래 그동안 1기 행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했고, 2기에서도 더욱 강력한 장악력을 보일 것으로 분석된다. ‘전쟁당(The War Party)’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 네오콘들은 대부분 유대인 출신이며 뉴욕 등 동부 지역 명문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서 군사, 외교, 학계, 언론 등의 분야에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는 일종의 클랜(clan·한 가족) 또는 커밸(cabal·떼를 지은 무리)이다.
네오콘의 사상적 기원은 유대인 출신의 독일 망명학자인 레오 스트라우스(1899~1973년) 시카고대학 교수의 정치철학에서 비롯한다. 스트라우스는, 평화는 인간을 타락시키기 때문에 영구 평화보다 영구 전쟁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덕적 가치와 절대선(善)을 강조했다. 그리고 미국의 민주주의는 인류의 번영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이며, 정권의 기본으로서 가치를 대체한다면 미국 민주주의밖에 없다고 주창했다. 그의 제자인 앨런 브룸 시카고대학 교수는 도덕적으로 우월한 미국식 민주주의만이 대량학살과 같은 국제적 비극을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사상을 추종한 네오콘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이 1983년 ‘한 신보수주의자의 회상들’이라는 책에서 최초로 ‘네오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네오콘들 스스로 ‘스트라우시언’이라고 말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도덕적 가치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오콘들이 말하는 선제공격의 원조는 앨버트 월스테터(1914~97년) 시카고대학 교수다. 이들은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이 보안관으로서 세계 질서와 평화를 무시하는‘악의 세력’들을 응징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의 가치를 유지하고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는 미국의 가치이자 인류의 보편적 이상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미국에 의한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중 상당수가 한때 진보적 민주당원이었다는 점. 이후 80년대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등 사상적으로 일관성을 보이진 않았지만 힘에 의한 질서를 신봉한다는 점에서는 철저하게 닮은꼴이다. 이들은 레이건 행정부와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클린턴 행정부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요직을 다시 맡게 된 이들은 9·11테러 사건을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우며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을 추진해왔다.
‘북한과 이란 정권교체’ 네오콘 체크리스트에
네오콘의 핵심 인물은 울포위츠를 비롯해 리처드 펄 국방정책 자문위원, 윌리엄 크리스톨 ‘더 위클리 스탠더드(The Weekly Standard)’ 발행인 겸 편집인 등 세 사람이며 리비, 해들리, 볼튼, 엘리엇 에이브럼스 NSC 중동담당 국장 등이 뒤를 받치고 있다. 또 로버트 게이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 연구원과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도 중요한 인물들이다. 네오콘의 대표적인 싱크탱크로는 PNAC를 비롯해 미국경제연구소(AEI), 안보정책센터(CSP), 유대국가안보연구소(JINSA) 등이 있다.
그러면 네오콘들이 상정하고 있는 부시 2기 행정부의 과제는 무엇일까. 대표적인 네오콘인 프랭크 개프니 미 안보정책센터(CSP) 대표는 11월6일자 ‘내셔널 리뷰 온라인’에 기고한 ‘세계적 가치(Worldwide Value)’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2기 행정부가 추진할 외교·안보 정책의 7가지 체크리스트를 제시했다.
“첫째, 팔루자 등 이라크 저항세력의 근거지들을 정벌하고 이라크에서 총선을 실시해 민주체제 구축을 위한 필수 기관들을 구성한다. 둘째, 핵무장 야심을 가진 남아 있는 ‘악의 축’인 북한과 이란 정권을 어떻게든 교체한다. 셋째, 군 개편과 정보 능력 향상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개프니 대표는 이 같은 체크리스트들이 네오콘의 ‘제국주의적’ 게임 플랜이 아니라고 밝혔다. 대신 그는 “부시 대통령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의지를 단호하게 보여줘야 하며 이는 부시 자신의 가치와 미국의 장기적인 전략적 이익, 국민이 선거를 통해 위임한 권한에 부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 같은 노선으로 차기 행정부가 노력을 배가한다면 부시 대통령은 세계를 덜 위험하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도덕적 가치에도 부합하고, 역사에도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아버지의 한을 푼 부시는 레이건처럼 미국 역사에 기록되는 뛰어난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 과연 네오콘들은 부시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