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졸레 누보가 도착했다. 본격적으로 가을 와인의 맛을 음미하기 좋은 때다.
보졸레 누보는 프랑스 중동부 마콩에서 리옹 북쪽 근교까지 남북으로 90km에 걸친 보졸레 포도주 산지에서 나오는 햇포도주를 말한다. 보졸레 지역에서 나는 햇포도주에는 보졸레 누보와 보졸레 빌라주 누보 두 종류가 있다. 이중에서 보졸레 누보가 우리에게 더 알려진 것은 이 햇포도주의 생산량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물론 코트 뒤 론 같은 지역에서도 햇포도주를 생산하는데, 생산량이 적고 산지가 다르기 때문에 보졸레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해마다 일기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보졸레 지역의 포도 수확은 9월 중순부터 시작해 10월 초에 마무리된다. 이렇게 수확된 포도는 보졸레 전통의 독특한 양조방식에 따라 포도주로 바뀐다. 일반적으로 적포도주는 포도를 수확해서 포도를 으깨고 줄기를 제거한 뒤 발효시킨다. 그러나 보졸레는 포도를 기계가 아닌 손으로 수확해서 포도 알갱이를 압착하지 않고 그대로 양조통에 담아 봉인한다. 그러면 차곡히 쌓인 포도의 중압에 의해 아래에 있는 포도들이 으깨지면서 양조통에 고인 포도즙이 발효되며 이로 인해 탄산가스가 통 속에 가득 찬다. 이 탄산가스는 마치 방부제 같은 구실을 해 발효 과정이 안정되게 진행되도록 한다. 때로는 양조통에 미리 탄산가스를 채워넣기도 하는데, 이러한 발효를 탄화침융 방식이라고 한다.
이러한 1차 발효과정을 거친 뒤, 이를 압착해 얻은 포도즙에 효모를 넣어 2차 발효를 하고 이를 여과해 단기숙성시킨다. 일반 적포도주는 10~20일의 발효기간을 거쳐 6개월 넘게 숙성시킨 뒤 출하되거나 더 숙성시킨다. 이와 달리 햇포도주는 4~5일간의 발효 과정을 거친 뒤 4~5주 숙성시켜 바로 그 해에 출하한다. 이러한 독특한 발효 과정과 단기 숙성에 의해 거의 탄닌 성분이 없는, 과일 향이 강한 햇포도주 보졸레 누보가 탄생한다. 신선한 햇포도주를 얻는 데는 포도 품종 또한 중요하다. 가메종은 과일 향이 풍부하고 즙이 많아 보졸레 누보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
포도를 으깨지 않고 발효시켜 투명한 보랏빛을 띠며 체리 맛이 입안 가득 감도는 보졸레 누보 햇포도주는 포도주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도 상큼하게 느껴진다. 입안에 퍼지는 과일 향의 신선함이 풍성한 가을의 결실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해마다 보졸레 누보 주요 산지에서 벌어지는 축제에서는 프랑스 각 지역과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늦가을 밤의 정취와 함께 바쿠스 축제를 즐긴다. 몇 해 전부터 우리에게도 보졸레 누보가 도착하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보졸레 누보 축제에 동참할 수 있다.
포도주 애호가들에게는 보졸레 누보 햇포도주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오랜 숙성 과정을 거쳐 풍부한 향과 맛을 내는 포도주가 훨씬 더 매력적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게다가 보졸레 누보가 프랑스 대형 포도주 업자들의 월드 와이드 마케팅 전략에 의해 가치가 과장되어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졸레 누보는 투명한 보랏빛에 상큼한 체리 맛이 나고, 와인 중에서도 특히 라벨이 화려하다.
그럼에도 보졸레 누보의 매력은 인류 모두가 이국적 정취 속에서 한 해 노력의 결실에 대한 환희를 술잔 속에서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놓쳐버린 이 기쁨을 상큼한 햇포도주 한 모금으로 되찾아보시길.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다.
보졸레 누보와 가을의 포도주를 맛볼 수 있는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통 한옥을 개조해 정감 있는 공간을 연출한 로마네꽁띠(02-722-4776), 편안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의 비나모르(02-324-5152), 포도주에 곁들일 메뉴가 다양한 엘 비노(02-541-4261),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와인을 갖춘 ReB(02-518-3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