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8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1면 머릿기사로 ‘한국이 수출한 사린가스 원료가 태국을 거쳐 북한으로 가려다 회수됐다’고 보도해 관심을 끌었다. ‘주간동아’는 두 신문 보도 일주일 전 이 정보를 입수해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신문의 보도가 있기 전날 기사를 완성해 인쇄와 발매 시기(9월21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 두 신문도 정보를 입수해 보도해버렸다. 두 신문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국회 답변을 근거로 이 내용을 보도했으나, 주간동아는 훨씬 더 깊이 있는 취재를 벌였다.
사린은 1995년 일본의 옴진리교 세력이 도쿄 지하철에 살포해 12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호흡곤란에 빠짐으로써 유명해진 독가스다. 한국이 태국으로 수출했다고 한 것은 사린가스가 아니라 다른 독가스인 타분의 원료인 청화소다(Sodium Cyanide)다. 청화소다는 청산소다·시안화나트륨 또는 청화나트륨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시골에서 꿩이나 야생 오리 등을 잡을 때 쓰는 사이나, 맹독성 독극물인 청산가리가 바로 이 계열에 속한다.
사린 아닌 타분가스 원료
북한은 1억4000만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 2000~5000t 정도의 화학무기를 보유한 세계 3위의 화학무기 대국이다(1위 러시아, 2위 미국). 북한에 있을 때 정치범을 상대로 독가스 생체실험을 했다고 증언한 탈북 화학자 A씨는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북한은 청화소다를 이용해 독가스를 만들어왔다”고 말했다(주간동아 6월24일자 참조). 따라서 북한으로 청화소다가 유입되는 것은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84년 호주를 중심으로 한 주요 국가들은 청화소다처럼 화학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는 물질이 북한 같은 불량국가(Rogue State)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호주그룹(Australia Group)’이라는 생화학 무기 비확산체제를 만들었다. 한국은 호주그룹 회원국이다.
한국은 화학무기뿐 아니라 핵무기·생물무기·미사일·재래식무기의 무분별한 거래를 통제하는 모든 비확산체제에 가입해 있다. 때문에 정부는 이러한 물품을 ‘전략물자’로 지정해 수출을 엄격히 통제한다. 그런데 어떻게 국내 기업이 수출한 청화소다가 태국을 중계지로 해 북한으로 보내지려고 한 사건이 발생했는가. 비밀은 청화소다가 금·은의 제련과 도금뿐 아니라 살충제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물질이라는 데 있다.
호주그룹은 제련이나 도금, 그리고 살충제를 제조하는 데 쓰이는 청화소다의 수출은 허가하고 있다. 그러나 수입국에서 ‘흑심’을 품으면 한순간에 독가스용 원료로 전용될 수 있으므로 강력한 규제를 가할 것을 요구한다. 호주그룹 회원국인 한국 역시 청화소다를 ‘전략물자’로 지정해 수출에 규제를 가하고 있다.
청화소다를 수출하고자 하는 국내 기업은 청화소다를 최종 사용하는 외국 기업이나 기관으로부터 ‘대량살상무기(화학무기)를 개발하거나 제조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보장서와 ‘청화소다를 다른 나라에 제공하지 않는다. 만약 제공하려면 반드시 한국 측의 동의를 얻는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수입국 국가 기관이 증인이 돼 이를 확인했다는 ‘확인서’를 수령해 함께 산업자원부에 제출해야 수출을 허가받을 수 있다.
D화학 계열의 무역회사인 O상사는 이러한 절차를 거쳐 2003년 2월부터 올해 5월 사이 네 차례로 나눠 773t의 청화소다를 태국의 폰라왓(Phonlawat) 회사에 수출했다. 그러나 폰라왓은 한국산 청화소다의 최종 사용자가 아니었다. 폰라왓은 이를 위트(Wit Corp)사에 넘겼는데, 위트는 이 가운데 142t을 북한의 금강무역 회사에 되팔려다 5월 태국 수사당국에 적발되었다.
금강무역은 ‘우리는 광물과 금속을 전문으로 다루는 회사다’라며 제련과 도금을 목적으로 위트로부터 한국산 청화소다를 구매하려고 했다 한다. 일각에서는 태국 수사당국이 미국 측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북한의 금강무역과 위트 간의 청화소다 거래를 차단했다고 하나 이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위트의 청화소다 북한 판매 기도 사건은 즉시 한국과 태국 간의 외교문제로 번졌다. 그러자 태국-뉴질랜드-호주 순방에 나섰던 반기문 장관은 8월25일 수라키앗 태국 외무장관을 만나 ‘화학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화학물질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 두 나라가 협력하기로 한 것을 재차 확인’하는 데 합의하였다.
정부 뒤늦게 공개 말 못할 이유는
그러나 9월 초·중순 국회에 출석한 반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 사건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다 9월17일 반장관은 한나라당 박성범 의원이 관련 자료를 제시하자 “그런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정부는 ‘북한이 한국산 청화소다를 태국을 거쳐 수입하려고 했다’고 발표해도 될 사안인데, 왜 이를 공개하지 않으려 한 것일까.
이유는 남북 관계개선과 한국이 화학무기의 원료를 생산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은 남·북한과 동시 수교한 나라다. 때문에 한국은 태국을 무대로 북한과 여러 가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은 올해 세계무역기구(WTO)가 쌀 시장 자유화를 위해 한국에 요구한 최소시장 접근 물량의 쌀 20만5000t을 수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 쌀이 들어오면 국내 쌀 농가의 반발은 매우 거셀 수밖에 없다. 마침 정부는 올해 북한에 쌀 40만t을 차관 형태로 제공키로 약속했는데 이중 30만t을 태국(10만t)과 베트남에서 수입해 북한에 제공함으로써 최소시장 접근 물량을 소화하게 되었다.
정부는, 태국은 물론 북한과도 계속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이 사건을 공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한국원자력연구소의 농축 우라늄 0.2g 분리 사건이 끼친 영향이 거론된다. 이 사건은 한국이 자진 신고했으므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자진 신고하지 않은 것이 없는지’를 조사해 이상이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아무것도 아닌 사건이다. 그러나 때마침 국제원자력기구가 이란을 때리려고 하는 와중에 이 사건이 터져나옴으로써 한국은 ‘시범 케이스’로 망신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 한국이 사린 독가스의 원료를 태국에 수출했고(이것은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 그중 일부가 북한으로 재수출되려고 한 사실(이것은 태국 측의 약속 위반이다)이 밝혀지면, 국제사회는 한국을 핵무기 개발국에 이어 화학무기 개발국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이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제3국 회사를 내세워 필요한 전략물자를 수입하는 것은 북한의 고전적인 방법이다. 워싱턴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지난해 4월 북한이 싱가포르의 무역회사를 중계자로 해 독일에서 33t의 청화소다를 수입했다고 보도했다.
태국 기업의 청화소다 북한 재수출 사건에서 유의할 사항은 나머지 631t의 행방이다. 한국의 O상사는 t당 850달러에 청화소다를 수출했는데, 태국의 위트는 1t당 1000달러에 북한에 판매하려고 했다. 가격 조건이 좋은 만큼 위트는 적발되기 전에도 한국산 청화소다를 북한에 판매했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태국 측은 “631t의 청화소다는 제련과 도금, 살충제 제조 등에 이미 소비되었고 오직 142t이 북한으로 수출되려다 적발되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문제는 한국이 이러한 주장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 처지로서도 631t이 태국에서 완전 소비된 것이 유리하므로, 8월25일 반장관은 태국의 외교장관을 만나 ‘화학물질의 확산을 막는 데 두 나라가 노력한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끝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빈국(貧國)의 핵무기’라는 화학무기를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갖고 있는 나라다. 이러한 북한에 한국산 청화소다가 넘어가는 상황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정부가 청화소다 등 전략물자의 수출과 수출 이후의 유통에 더욱 철저한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사린은 1995년 일본의 옴진리교 세력이 도쿄 지하철에 살포해 12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호흡곤란에 빠짐으로써 유명해진 독가스다. 한국이 태국으로 수출했다고 한 것은 사린가스가 아니라 다른 독가스인 타분의 원료인 청화소다(Sodium Cyanide)다. 청화소다는 청산소다·시안화나트륨 또는 청화나트륨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시골에서 꿩이나 야생 오리 등을 잡을 때 쓰는 사이나, 맹독성 독극물인 청산가리가 바로 이 계열에 속한다.
사린 아닌 타분가스 원료
북한은 1억4000만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 2000~5000t 정도의 화학무기를 보유한 세계 3위의 화학무기 대국이다(1위 러시아, 2위 미국). 북한에 있을 때 정치범을 상대로 독가스 생체실험을 했다고 증언한 탈북 화학자 A씨는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북한은 청화소다를 이용해 독가스를 만들어왔다”고 말했다(주간동아 6월24일자 참조). 따라서 북한으로 청화소다가 유입되는 것은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84년 호주를 중심으로 한 주요 국가들은 청화소다처럼 화학무기의 원료가 될 수 있는 물질이 북한 같은 불량국가(Rogue State)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호주그룹(Australia Group)’이라는 생화학 무기 비확산체제를 만들었다. 한국은 호주그룹 회원국이다.
한국은 화학무기뿐 아니라 핵무기·생물무기·미사일·재래식무기의 무분별한 거래를 통제하는 모든 비확산체제에 가입해 있다. 때문에 정부는 이러한 물품을 ‘전략물자’로 지정해 수출을 엄격히 통제한다. 그런데 어떻게 국내 기업이 수출한 청화소다가 태국을 중계지로 해 북한으로 보내지려고 한 사건이 발생했는가. 비밀은 청화소다가 금·은의 제련과 도금뿐 아니라 살충제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물질이라는 데 있다.
호주그룹은 제련이나 도금, 그리고 살충제를 제조하는 데 쓰이는 청화소다의 수출은 허가하고 있다. 그러나 수입국에서 ‘흑심’을 품으면 한순간에 독가스용 원료로 전용될 수 있으므로 강력한 규제를 가할 것을 요구한다. 호주그룹 회원국인 한국 역시 청화소다를 ‘전략물자’로 지정해 수출에 규제를 가하고 있다.
청화소다를 수출하고자 하는 국내 기업은 청화소다를 최종 사용하는 외국 기업이나 기관으로부터 ‘대량살상무기(화학무기)를 개발하거나 제조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보장서와 ‘청화소다를 다른 나라에 제공하지 않는다. 만약 제공하려면 반드시 한국 측의 동의를 얻는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수입국 국가 기관이 증인이 돼 이를 확인했다는 ‘확인서’를 수령해 함께 산업자원부에 제출해야 수출을 허가받을 수 있다.
D화학 계열의 무역회사인 O상사는 이러한 절차를 거쳐 2003년 2월부터 올해 5월 사이 네 차례로 나눠 773t의 청화소다를 태국의 폰라왓(Phonlawat) 회사에 수출했다. 그러나 폰라왓은 한국산 청화소다의 최종 사용자가 아니었다. 폰라왓은 이를 위트(Wit Corp)사에 넘겼는데, 위트는 이 가운데 142t을 북한의 금강무역 회사에 되팔려다 5월 태국 수사당국에 적발되었다.
금강무역은 ‘우리는 광물과 금속을 전문으로 다루는 회사다’라며 제련과 도금을 목적으로 위트로부터 한국산 청화소다를 구매하려고 했다 한다. 일각에서는 태국 수사당국이 미국 측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북한의 금강무역과 위트 간의 청화소다 거래를 차단했다고 하나 이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위트의 청화소다 북한 판매 기도 사건은 즉시 한국과 태국 간의 외교문제로 번졌다. 그러자 태국-뉴질랜드-호주 순방에 나섰던 반기문 장관은 8월25일 수라키앗 태국 외무장관을 만나 ‘화학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화학물질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 두 나라가 협력하기로 한 것을 재차 확인’하는 데 합의하였다.
정부 뒤늦게 공개 말 못할 이유는
그러나 9월 초·중순 국회에 출석한 반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 사건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다 9월17일 반장관은 한나라당 박성범 의원이 관련 자료를 제시하자 “그런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정부는 ‘북한이 한국산 청화소다를 태국을 거쳐 수입하려고 했다’고 발표해도 될 사안인데, 왜 이를 공개하지 않으려 한 것일까.
이유는 남북 관계개선과 한국이 화학무기의 원료를 생산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은 남·북한과 동시 수교한 나라다. 때문에 한국은 태국을 무대로 북한과 여러 가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은 올해 세계무역기구(WTO)가 쌀 시장 자유화를 위해 한국에 요구한 최소시장 접근 물량의 쌀 20만5000t을 수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 쌀이 들어오면 국내 쌀 농가의 반발은 매우 거셀 수밖에 없다. 마침 정부는 올해 북한에 쌀 40만t을 차관 형태로 제공키로 약속했는데 이중 30만t을 태국(10만t)과 베트남에서 수입해 북한에 제공함으로써 최소시장 접근 물량을 소화하게 되었다.
정부는, 태국은 물론 북한과도 계속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이 사건을 공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한국원자력연구소의 농축 우라늄 0.2g 분리 사건이 끼친 영향이 거론된다. 이 사건은 한국이 자진 신고했으므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자진 신고하지 않은 것이 없는지’를 조사해 이상이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아무것도 아닌 사건이다. 그러나 때마침 국제원자력기구가 이란을 때리려고 하는 와중에 이 사건이 터져나옴으로써 한국은 ‘시범 케이스’로 망신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 한국이 사린 독가스의 원료를 태국에 수출했고(이것은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 그중 일부가 북한으로 재수출되려고 한 사실(이것은 태국 측의 약속 위반이다)이 밝혀지면, 국제사회는 한국을 핵무기 개발국에 이어 화학무기 개발국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는 이 사건을 덮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제3국 회사를 내세워 필요한 전략물자를 수입하는 것은 북한의 고전적인 방법이다. 워싱턴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지난해 4월 북한이 싱가포르의 무역회사를 중계자로 해 독일에서 33t의 청화소다를 수입했다고 보도했다.
태국 기업의 청화소다 북한 재수출 사건에서 유의할 사항은 나머지 631t의 행방이다. 한국의 O상사는 t당 850달러에 청화소다를 수출했는데, 태국의 위트는 1t당 1000달러에 북한에 판매하려고 했다. 가격 조건이 좋은 만큼 위트는 적발되기 전에도 한국산 청화소다를 북한에 판매했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태국 측은 “631t의 청화소다는 제련과 도금, 살충제 제조 등에 이미 소비되었고 오직 142t이 북한으로 수출되려다 적발되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문제는 한국이 이러한 주장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 처지로서도 631t이 태국에서 완전 소비된 것이 유리하므로, 8월25일 반장관은 태국의 외교장관을 만나 ‘화학물질의 확산을 막는 데 두 나라가 노력한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는 선에서 이 사건을 끝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빈국(貧國)의 핵무기’라는 화학무기를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갖고 있는 나라다. 이러한 북한에 한국산 청화소다가 넘어가는 상황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정부가 청화소다 등 전략물자의 수출과 수출 이후의 유통에 더욱 철저한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